제목 | 삼위일체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성자 하느님)은 강생하시기 전인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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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8-11-28 | 조회수630 | 추천수1 | 신고 | ||||||||||||||
삼위일체의 신비와 관련하여 다소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시작되므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문자적인 이해로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천주성(하느님의 신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며, 천주성이 지닌 초월성 때문에 우리는 성경 안에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만 삼위일체를 이해해야 하며 하느님의 은혜가 있을 때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예수님(성자 하느님)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요한복음과 니체아 신경(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설명드리겠습니다.
1.요한복음 1장.
위 성경말씀에서 보시듯이 예수님께서는 한 처음(시공간이 시작되기도 전의 영원전을 의미함)에 계시던 말씀이시며 바로 하느님이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이시자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만물)이 창조되었다고 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시자 하느님이신데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사람의 몸으로 오시기 전부터 영원으로 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신앙고백에서도 성모님이 능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하느님)을 낳았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우리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위의 신앙고백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강생의 신비는 하느님(성령)으로 인하여 하느님(성자)께서 능동적으로 육신을 취하신 것, 즉 육화하신 것이지, 성모님이 갑자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듯이 낳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모 우상숭배자들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가 잘못 해석되어 큰 문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도 피앗으로 수태고지에 순명하신 성모님은 공경 받으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이 교리서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만 성모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교리서 503 : 그리스도는 그 신성으로는 성부의 아들이며, 그 인성으로는 어머니(성모님)의 아들이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에베소 공의회의 선포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피조물인 성모님이 하느님을 생산해낸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위 교리서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신성(천주성)으로는 오직 성부께서만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고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서만 어머니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시는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면서 참사람이십니다. 맘대로 믿거나 남들 믿는 대로 따라서 믿지 말고 성경과 교리서를 통해 공부하면서 성령의 인도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흠숭(경배)과 공경은 말 그대로 하늘(하느님)과 땅(피조물)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은총의 근원(하느님)과 은총의 수혜자(피조물)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성모교도들은 은총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흠숭지례를 바쳐야 함에도 피조물에게 하느님께만 합당한 호칭(공동 구속자, 주성모님, 모든 은총의 중개자, 주님)을 사용함으로써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우상숭배의 대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교리서에서 말하듯이 대죄이며 알고도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은총지위를 상실한 채 지옥에 떨어지는 대죄인 것입니다. 소죄는 설령 회개하지 않고 죽어도 연옥에서 정화를 거친 후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우상숭배는 대죄이어서 지옥에 가게 되는 무시무시한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여 혹시라도 우상숭배의 대죄를 짓고 있지 않나 살펴보고 만일 그렇다면 고백성사를 통해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창조의 섭리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하느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심에 비추어 볼 때, 성모님이 하느님을 낳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인 성모님을 존재하도록 섭리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관자임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가 채택되었는데, 이러한 교의의 실제적인 의미는 성모님이 하느님을 낳았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바로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느님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느님의 신성을 낳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와 정반대로, 신앙고백에서 밝히고 있듯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마리아라는 피조물도 포함됨)하신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피조물에 의해 생산되는 천주성(하느님의 신성)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천주성(신성의 하느님)에 의해 우리 피조물들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느님을 만들어내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성모님이라는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꺼꾸로 이해하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2.니체아 신앙고백.
제가 속한 본당에서는 니체아 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합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성자하느님(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부하느님에게서 창조되지 않고 나신 하느님이시며 성부와 함께 만물을 창조하시었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하느님(예수 그리스도)께 그러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 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예수님이 사람으로 나시어 나중에 하느님이 되었다 라고 생각하거나 예수님은 그냥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예수님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 모두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본래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교리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신적위격만 지니신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몸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몸을 취하시었는데 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고 하느님이실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우리의 신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계시되어 있듯이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신적위격(성자하느님의 제 2위격)만 지니시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하느님이 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사람의 몸으로 내려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인양성이시고 신인양의(하느님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를 모두 가지셨다는 말임)를 모두 가지고 계시며 하느님이시자 사람이신데,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몸은 사람이고 영만 하느님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지니신 채 부활하시어 지금도 변형된(부활하신) 육신을 지니시고 승천하시었고 그와 같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적인 뜻도 지니고 계셨으나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분이심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3.삼위일체.
삼위일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세 분 하느님으로 믿는다면 하느님이 세 분이라고 믿게 됨으로 다신교 신자가 됩니다.
따라서 유일신교인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다신교인이 됨으로써 가톨릭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이교도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모교도들이 이와 같은 다신교 신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성당에 발품 팔며 왓다 갔다 하더라도 주님의 몸인 교회 소속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구속주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심을 고백해야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이러한 거듭난 생명(새생명)에 의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체적인 몸(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공동구속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신교 신자가 되므로 여러 잡령들로부터 오는 나쁜 영향을 받아 사람이 이상해지고 자꾸만 기복적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구속(redemption)이라는 말은 오직 하느님께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구속은 죄의 용서, 즉 속량을 의미하는데 하느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만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구속자이신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피동적으로 구속을 입는 사람, 즉 피구속자가 되는 것이지 공동구속자가 되는 피조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적계시로 지속적으로 공동구속자를 주장하고 있고 성모발현파들이 그와 같이 주장하고 있지만 속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성모발현파(성모교도)들은 무당공수 수준의 사적계시를 믿는 사람들이며 다신교(잡신교) 신자이므로 유일신교인 가톨릭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며 교우로 간주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유일신교와 다신교는 같은 종교가 아니므로 교우가 될 수 없는 것임.).
다시 삼위일체로 돌아가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홀로는 아니신데, 세 위격으로 성경에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람들이 상상해서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그와 같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계시진리인 성경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신비인 이유는 천주성(하느님의 신성)은 시공간의 언어문자로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본인의 묵상이나 상상,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우리는 다만 성경의 진리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하느님은 본성에 있어서 한 분이시지만,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우리는 계시되어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세가지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 합니다.
1)본질(본체, 본성) : 천주성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 계시는 것임.
2)위격 : 구원의 경륜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성경에 나타나시는 것으로써 세 위격이 계시는 것임.
3)관계 : 세 위격 안에서 서로 간의 관계로만 위격이 구별되는데, 성부는 낳으시는 분이시고 성자는 낳음(성부로 부터)을 입은 분이시며 성령은 발출되시는(성부와 성자로 부터) 분이심.
삼위일체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미 말씀 드린 대로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위격은 셋으로 나타나시지만 세 위격 안에는 동일한 본질인 천주성(하느님의 신성)이 계시므로 서로 간에 충돌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므로 분리되지 아니 하신다는 것입니다. 분리되지 아니 하심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속성에 무소부재하심이 있는데, 이러한 무소부재하심에는 장소에 있어서의 무소부재하심과 시간에 있어서의 무소부재하심(통시성)이 있으십니다. 따라서 성부 안에는 성자와 성령이 계신 것이고 성자 안에는 성부와 성령이 계신 것이며 성령 안에는 성부와 성자가 계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을 보면, 성부가 예수님(성자)안에 계시고 또한 예수님(성자)는 성부 안에 계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떨어져 계시는 것이 아니고 분리되지 않는 상태(분리되지 않지만 구별되심)로 계심을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비 중에 세 위격으로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세 위격임에도 불구하고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한 분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분리되지 아니하심에 대해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바오로 사도께서 서간문의 여러 대목에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오로 사도 안에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승천하시어 하늘에 있는 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동시에 바오로 사도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안에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분리되지 않으시므로 주님(그리스도)께서 믿는 이 안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하시어 어좌 우편에서 중재기도하시므로 우리의 심령 안에 살아계시지 않는다 라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아직 성령체험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피상적으로 문자적 지식으로 읽기 때문에 일어 나는 것입니다.
해당되는 성경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1) 요한복음 14장 23절
위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약속하시며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가" 라는 표현을 하시며 성부 성자께서 성령과 함께 믿는 이의 심령에 살게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로마서 8장 10절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세례(견진)성사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위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삼위일체의 분리되지 아니하시는 원칙에 의해 성령으로 충만되면 성부와 성자도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3) 코린토 2서 13장 5절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 안에 살아계심을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면(성령충만 하지 않다면) 우리는 실격자라는 것입니다.
4) 갈라티아서 2장 20절
이와 같이 바오로 사도께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바오로 사도 안에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심으로서 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함께 생명으로 믿는 이 안에 살아계셔야만 비로소 믿는 이는 하느님의 성전이 된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4.삼위일체와 관련된 이단들.
삼위일체의 신비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천주성(하느님의 신성)을 우리의
언어문자로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표현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언어문자로 표현하며
성경에서 벗어난 논리를 주장하면 이단이 되기가 쉽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있는데,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이 다른 데에서 시작됩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갈라지는 것도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신앙하는 삼위일체로 인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여호와의 천사라고 주장하므로 이단이 됩니다. 참고로 몰몬교는 삼신론(다신론)과 유사한 종교입니다.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크게 보면 두가지 이단이 있는데, 첫째는 삼신론으로 세분의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의 하느님을 믿게되면 유일신 신앙에서 벗어나는 다신교 신앙이 되기때문에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자비로우신 것 같은데, 구약의 야훼 하느님은 잔인한 복수의 하느님 같다 라고 만일 느끼신다면 아직까지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면 구약의 성부하느님, 신약의 예수님. 오순절의 성령님이 한 본체를 이루시는 한 분 하느님이시며, 세 위격으로 나타나시지만 똑 같이 자비하신 사랑의 하느님이신 것을 알게 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깨달음은 오직 성령충만할 때 성경봉독을 통해, 세 위격으로 나타나시는 하느님이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한 가운데 구약성경으 봉독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우상숭배자들을 벌하시는 이유가 사랑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태론이라는 이단이 있읍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구약에는 성부만 계셨고 육화강생하셨을 때엔 성자만 계셨고 오늘날에는 성령만 계신다 라는 주장으로써, 한 분이 역할만 달리 하신다는 이단입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고 직장에서는 회사원이고 교회에서는 신자이지만 사실은 홍길동 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바로 양태론이며 이단임). 양태론이 이단인 이유는 성경에 계시된 내용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간에 관계(파견하시는 분과 파견되시는 분, 낳으시는 분과 낳음을 입으시는 분)가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만 홀로이시지는 않는데, 세 위격으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양태론보다는 삼신론이 훨씬 위험한 이단이라고 하겠읍니다. 그 이유는 양태론은 이단임에도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유일신 신앙 안에 있으므로 하느님의 섭리 아래에서 결국 바른 길로 인도될 수 있지만, 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인 관계로 이것 저것 잡신들의 영향을 받게되어 결국 기복적인 우상숭배로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신론자들이 위험한 이유는 여러 신을 섬기려면 신들의 특성이 달라서 서로 다른 방식의 경배를 해야하므로, 인간성이 다중인격을 형성하게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시면 주님께서 가장 미워한 것이 이중성(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아니오 라고 생각하면서 예 하고, 예 라고 생각하면서 아니오 하는 것, 즉 꾸며 내면서 가식적인 인생을 사는 것) 이었기 때문에 바리사이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태도를 심지어 저주까지 하시면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에 대한 상경지례를 넘어서 마치 하느님을 숭배하듯이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우상숭배 수준의 성모과공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삼위일체와 관련해서 삼신론 쪽인 것 같읍니다. 제가 이와 같이 판단하게 된 것은 그동안 게시판에 성모님에 대한 과공을 넘어선 흠숭의 단계에서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의 글을 살펴보고 내리게 된 결론입니다.
성모님의 순명(fiat)으로 주님께서 육화강생하시어 오늘날 믿는 이에게 구원이 임하므로 성모님의 순명은 마땅히 공경해야 하지만 복달라고 성모님께 대놓고 기도한다면, 그리고 하느님보다 성모님에 대해 의지하는 마음이 더 크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내면을 성찰해보면 하느님 외에 뭔가다른 것에도 의지하는 다신교적 성향이 발견되는데 대부분 삼위일체와 관련해서는 삼신론적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어떤 때에는 하느님께 기도하다가 어떤 때에는 피조물인 성모님에게 직접 기도(전구 요청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기도)하기도 하면서 한 마디로 말하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게 좋은가 에 대해 혼돈된 상태에 있게 됩니다. 다신교인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과거 시골에 할머니들이 정한수 떠놓고 손을 비벼대면서 이쪽 저쪽으로 손을 움직이면서 기도한 이유는 여러 잡신을 대상으로 기도하기 때문인데 성모교도도 그와 유사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나주 성모동산, 상주, 베이사이드와 같은 성모발현파들은 이상한 잡신(마귀)를 섬기며 천주교라고 주장하며 선량하고 순박한 교우들을 유혹해내어 물장사 기적장사 기도장사 해먹고 있는데 무당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종교사업을 통한 영리추구이므로 속아서는 안되겠습니다.
5.삼위일체의 본원적 순서와 체험적 순서는 정반대이다.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살펴보면,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심으로 성자가 계시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출됨으로 성령이 계십니다. 따라서 본원적인 순서를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적 순서는 이천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에게 먼저 성령이 임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진리를 깨닫게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써 그리스도(성자)를 구세주로 믿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상태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구약의 성부(야훼)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어 성경이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 연결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삼 하느님에 대한 체험적 순서는 성령. 성자, 성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도대체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는 설령 하느님이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대다수가 생각합니다.(믿기 전의 상태)
2.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어렴풋이나마 믿게 됩니다.
3.이러한 상태가 되면, 있는 지 없는 지 알 수 없던 하느님이 드디어 나를 구원해주신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며,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막연한 관계가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고마우신 하느님으로 발전하게 됩니다.(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구원자와 구원은혜를 입은 자로 일대일의 관계가 됨)
4.그렇지만도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고 어떤 때는 믿어지다가 어떤 때는 믿을 수 없고, 과연 이천년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기고 예수님에 대한 느낌도
이천년 전에 죽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고 어좌 우편에 계시면서 믿는 이를 위해 중재기도하신다는 데,
어쩐지 막연하고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초기 단계의 이름 뿐인 명목적인 신앙)
5.어느 날, 성령께서 은혜로 충만하게 임하시어 심령에 생명강수가 솟게 하시면 기쁨과 평화가 넘쳐 흐르며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어, 우리는 삼위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살아계심을 알게 됩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게 되며 내면에 살아계신 주님을 생명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됨)
6.이러한 상태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구약의 하느님의 섭리가 잔인한 게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섭리임을
깨달아 알게되고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제물과 화목제물이 되어주심으로 하느님과의 완전한 화목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순서가 전반부는 하느님 사랑이고 후반부는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으로는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부어주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심령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날 때, 우리는 사심없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도 한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은 나눔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인데, 만일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기술한 내용이 틀린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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