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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마르코 복음 관련해서 궁금합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병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3 조회수554 추천수0 신고

계명 준수와 자선’- 연중 제28주일(마르코 10 17~30)

 

 
구원의 문제는 하느님의 일 「어둠 속의 불꽃」이란 인터넷 카페에 있는 글입니다. 「베풀면 오래 산다」란 제목의 글로서 미사간대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대한 글입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친구나 친척 이웃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나 배우자를 정성껏 돌본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사회적 지원을 받은 노인은 지원을 받지 못한 노인과 사망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지는 중요성과 나눔이 건강을 위해서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입니다.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부자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부와 구원의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명과 부에 대한 유다인들의 사고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계명의 준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상과제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준수가 구원을 자동적으로 가져온다고 생각하여 구원의 문제를 율법의 준수 여부에서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부」 자체를 인간의 경건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 혹은 하느님 축복의 상징으로 보았기에 부자는 이미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 즉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였습니다

25절에 보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란 예수님의 말씀에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며 수군거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이유도 부와 구원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자마저 구원받지 못한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유다인들의 사고에서 나오는 반응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계명의 준수자요 부자인 주인공은 한 개인을 상징하기 보다는 이러한 유다 정신을 상징한다고 보면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영생에 대한 오늘 복음의 질문은 단순한 영생의 방법에 대한 탐구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파를 위시한 당시 유다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율법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재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 보면 부자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데 이러한 행동은 30대라는 예수님 나이를 고려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점 그리고 부의 유무로 인간을 판단하는 당시에 그 사람이 부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선하신 선생님」이란 호칭과 더불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가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데 이는 부와 율법이라는 가시적인 방법을 통해 영생을 보장 받고자 하는 인간이 가지는 그릇된 욕망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한 문학적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다릅니다. 계명의 준수를 언급합니다만 거기에서 멈추지는 않습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율법을 넘어서는 사랑과 나눔의 실천 완전한 가난을 택하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부」와 「구원」과는 관계없음을 보여주면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에 구원의 문제는 하느님께 맡겨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대답은 구원을 보증하는 확실하고 가시적인 무엇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면서 계명과 자선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선의 실천과 신앙의 영원한 이상인 예수님을 따름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고 구원의 문제는 하느님의 일로 남겨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의 모습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무나 자주 우리 삶에서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뉘우침과 의탁이 먼저가 아니라 선행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고 보상을 찾는 마음 결과를 맡기기 보다는 인간적인 판단을 우선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 앞에서 반항하는 모습들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지름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 가시적인 업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찾고 나와 이웃을 판단하는 모습들은 외양만 달리한 어쩌면 이 세상 마지막까지 인간과 함께 가야할 또 하나의 부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교훈으로는 가시적인 「업적과 행위」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지어 구원의 문제마저 재단하려는 인간의 교만에 대한 끝없는 경계가 그 첫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홍금표 신부〈원주교구 삼척종합복지관장〉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0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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