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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성탄 대축일의 유래에 대해서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오성훈 쪽지 캡슐 작성일1999-01-16 조회수970 추천수3 신고

 

- 성탄 대축일의 유래에 대해서 -

 

 

 

 

 질문 : 예수님의 탄생일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생일로 지

내는 12월 25일도 실제 탄생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 성탄 축일의 유래를 알고

싶습니다.

 

 

 

 대답 : 예수님께서 사시던 시대에는 소위 ’율리오력’이라는 연호(年號)를 썼습

니다. 이는 로마 황제 율리우스 체사르(Julius Caesar)가 기원전 46년에 쓰기 시

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력에 따른 윤년의 계산이 조금씩 밀려나, 서기 325년

에는 춘분이 3월 21일이어야 하는데, 3월 25일로 잘못 잡히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동안 그리스도 신앙이 서구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기원을 구세주 강생

으로부터 헤아리게 되었습니다(A.D. = Anno Domini). 이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에 정통한 ’난쟁이 디오니시오(Dionysius Exiguus 5세기 말-525년경)라는 한 수

사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구세주 탄생과 관련한 동방 가톨릭과 서방 가

톨릭의 서로 다른 전통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구세주 강생 기원 원년을 서기 1년

3월 25일부터 헤아리기 시작하였고, 양력 설날은 1월 1일로 정했습니다. 그가 서

기의 시작을 3월 25일(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영보축일>)로 잡은 것은 당시

에 이미 고정된 예수 탄생일, 즉 12월 25일로부터 태아의 잉태 기간인 아홉 달

을 거슬러 계산한 결과입니다.

 

 성탄을 12월 25일로 잡은 것은 디오니시오보다 훨씬 이전으로 올라갑니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는 태양이 남쪽 하늘 끝에 가 있다가 북쪽 하늘로 돌아오

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율리오력에 따르면 동지는 12월 25일이었습니다. 페르시

아의 빛과 진리의 신인 미트라 신을 숭배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이날을 ’무적의

태양 탄일’(dies natalis Solici Invicti)로 경축하였습니다.

 

서기 274년 12월 25일,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태양신을 로마 제국의 주요

수호신으로 선포하고 ’마르시우스 뜰’(Campus Martius)에 태양신의 신전을 지

어 봉헌하면서 이날이 제국의 큰 축제일로 자리잡혔습니다. 이런 로마의 이교

도 풍습에 맞서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3세기 초에 벌써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지

를 대비시키면서, 그리스도께 ’정의의 태양’ 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였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태양신의 축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로 바뀌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미 4세기 말에는 12월 25일이 예수 성탄으로 자리잡혀 있었습

니다. 암브로시오 성인(397년 사망)의 증언과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 활약하

던 밀레바의 옵타투스의 성탄 설교가 이를 입증합니다.

 

 동방 가톨릭에서는 4세기 말까지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6일을 예수 성탄 축

일로 지내왔습니다. 우리가 ’주님 공현 대축일’ 이라고 부르는 이 축일을 두고,

오늘날 서방교회에서는 ’동방 세 박사의 아기 예수 예배’를, 동방 교회에서는

’예수 세례’를 기념합니다. 그러나 본디 이 축일 역시 동지와 관련된 이교도 축

제에서 유래합니다. 고대 이집트력으로 동지는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6일이었

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바로 그 전날밤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여

기는 태양신 ’에온’의 탄생을 경축하였습니다.

 

 4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이집트 태양신 축제는 동방가톨릭에서 예수 성탄뿐 아

니라, 예수 세례와 심지어 가나의 기적까지도 기념하는 축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위에서 밝힌대로 4세기 말에 와서 서방가톨릭의 영향으로 12월 25일

을 예수 성탄 축일로 지내게 되고, 1월 6일은 예수 세례만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동방가톨릭의 대표적 교부인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380년 성탄절 설교에서

자신을 12월 25일 성탄절의 창시자로 주장하였고,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안티오

키아에서 이 축일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386-388년).

 

 팔레스티나에서는 7세기 중엽까지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고 아르메니아인들

은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을 계속 성탄절로 고집해 왔습니다.

 

날짜의 논쟁은 이런 식으로 정리되었지만, 예수님의 실제 탄생 연도는 아직도

논란중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대략 의견 수렴을 보이는 것은 적어도 그분의

탄생이 기원 원년보다 4년 앞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서로 다른 전

승에 따라 쓰여진 마태오와 루가 두 복음서 모두 그분의 탄생을, 기원전  4년에

사망한 것으로 고대 문헌들이 증언하는(요세푸스 등) 헤로데 대왕의 통치기간

안에 설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마태 2,1.19; 루가 1,5). 이 두 복음서의 기록

이 실제와 맞아떨어진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1998년(올해를 1998년으로 정했을

때)이전이 아니라 적어도 헤로데가 살아 있었을 2000년 이전이 될 것입니다.

 더 정확한 탄생 연도를 밝히기 위해서 당시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시리아 총

독 퀴리노의 인구 조사(루가 2,2), 혜성의 출현 등을 근거로 삼지만 역사적 신

빙성은 거의 없습니다.

 

 퀴리노의 인구 조사는 아르켈라오가 페위될 때인 서기 6-7년에 실시되었습니다.

기원전 6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혜성의 출현을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

과 일치시키려는 시도 역시 고대인들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불확

실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달력은 그레고리오 13세가 제정한 그레고리오력입니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예수 성탄 이외에도 부활과 성령강림 등 이동 대축일 산정

문제로 오랫동안 동·서방 교회 간에 일어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1582년에

연력 개편을 실시하였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나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사건에서 언제나 자신들과 인류

모두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의미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기록

에서 역사적 사실(fact)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역사적 진실(truth)을 놓치

는 잘못에 빠지게 됩니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성서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기

록이 아니라 기록 뒤에 보전되는 말씀의 진실인 것입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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