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슨 종교를 믿든지 무슨 상관일까? - 종교무차별론의 허구성(1) | 카테고리 | 천주교 | ||
---|---|---|---|---|
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2-11 | 조회수633 | 추천수1 | 신고 |
- 무슨 종교를 믿든지 무슨 상관일까? -
흔히 있는 생각
현대에 유행되고 있는 종교관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격언처럼 돌아 다니는 소 문에 잠깐만 귀를 기울이면 된다. 독자 여러분은 이미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 을 것이다. "성실하기만 하면 무엇을 믿든 그리 문제될 것 없다.", "종교는 믿 을 교리가 아니고 삶의 길이다.", "종교는 무엇이나 다 좋다. 결국은 같은 목 적지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이다.", "교리가 다르다는 것은 크게 상관할 것 없 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 황금률(黃金律)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 은 믿는 교리로 판단할 것이 아니고 생활 태도로 판단받을 것이다." 등등.
이런 말들이 많은데 말투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감정이 흐르는 말들이 다. 말하자면 종교 교리를 믿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 일치한다. 실상 ’교리’라는 말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저 교리라는 소리만 들 어도 오만상을 찌푸리는 정도이다.
지성과 상식으로 따져 보기 전에 이런 생각이 시작된 동기가 무엇인지 한번 고 려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이런 생각의 기원과 발전에 이바지한 요인(要因) 을 잠깐 훑어본다는 것은, 16세기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관념이 인류 의 종교 사상 속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그 이상의 과정을 속속들이 파내 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주의; 여기서 말하는 16세기의 역사적 상황은 아래 필자가 올린 글 - 루터 는 진정 어떠한 인물이었나? - 에서 이미 언급된 부분이지만 다시 중간 생략 하고서 글을 진행시키면 이 글을 처음 읽는 독자들 중에는 오해하는 이도 있 을 지 몰라 중복되더라도 다시 언급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완 전히 중복되는 내용은 아니므로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본다면 반드시 독자 여러분이 얻을 것이 있을 것이다.)
악의 없이 말하는 진리
종교 무차별론(無差別論)의 기원과 성질과 이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 는 데 있어, 나는 이 문제를 아주 솔직하고 가장 공평한 과학적 태도로 다루고 자 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겠다. 때로는 논리의 법칙에 따라 무차별론의 원리 를 마구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때라도 무차별론에 솔깃 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인격적인 면에 관해 조금도 악의(惡意)가 있을 리 없고 오직 선의(善意)와 우정만으로 이 말을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철학과 종교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모두 종교관이 명백히 상치(相馳)되는 논쟁을 할때라도 조금도 악의가 없는 공평한 태도로 토론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철학관 또는 종교관이 다르다고 해서 이를 개인 관계나 사회 관계에까지 대립 을 연장한다는 것은 지각 있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내가 무차별론의 원리를 반대한다 하더라도 무차별론을 주장하 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직 우정만을 갖고 있음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토론의 목적은 악의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종교 사상계에 현존하고 있는 혼란을 밝히고 모모한 종교관들을 논리적으로 따짐으로써 악의를 줄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적 자유 해석주의의 기원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모든 성인의 날에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의 반 항 성명을 붙임으로써 스스로의 인조(人造) 종교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그 자 신이나 그 동료 혁명가들이 예기치 못했던 여러 가지결과를 초래한 하나의 원리 를 주창했으니 이것이 바로 성서 해석과 종교 생활에 있어 사실은 모든 윤리 생 활까지도 사적(私的)자유 해석이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루터나 칼뱅이나 츠빙글리나 그밖의 이른바 혁명가들은 이것이 장차 어떤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든지 새로운 교파를 세우는 자는 이 원리를 내세우게 된 사실이다. 실은 루터는 그 자신의 해석만이 옳고 다른 이의 해석은 다 그릇되다고 믿었고, 칼뱅도 츠빙글리도 멜란히톤도 그러했다.
이들 종교 혁명가들은 종교 무차별론자들이 아니라 광신자들이었다. 이들은 자 기의 것만 옳다고 고집한 나머지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면 여지없이 죽여버렸다. 자유 해석이기는커녕 그야말로 독선이요, 잔인한 독재자요, 일찍이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잔인무도한 광신자들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사에 있어 최고의 판관으로 자처하며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 는 모든 이를 이단자로 처벌하고 저속한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한 예를 들면
"내가 가르치는 것과 달리 가르치는 자는 누구든지 하느님의 처벌을 받을 것이며 또한 지옥의 자식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내 가르침을 어기는 것은 무엇이든지 용서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혁명가들의 외고집
농민들이 성서 자유 해석의 본을 따라 제멋대로 해석하려 하고, 이리하여 농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루터는 귀족들을 충동하여 이 ’마귀의 자식들’을 사정없이 개돼지처럼 학살하게 했다. 귀족들은 이 반가운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이리하 여 무수한 농민들이 잔인한 살육을 면치 못했다. 에라스무스의 편지에는 그 당 시 1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쓰여 있다.
루터는 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개탄하기는 고사하고 큰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나 마르틴 루터는 죽이라고 명령한 그대로 모든 반란 농민을 모조리 학살 했다. 그들의 피는 모두 내 머리 위에 뿌려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 피를 신에게 던진다. 그분이 나에게 이것을 명했기 때문에."
루터는 늙어감에 따라 너그러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모질게 되어갔다. 그는 죽 기 조금 전에 몸서리치는 욕설로 가득찬 팜플렛 두 권을 썼다. 하나는 ’마귀가 로마에 세운 교황청을 욕한다’이고 또 하나는 유다인을 욕하는 글이다. 전자는 겉장에 그 내용을 묘사한 소름이 끼치도록 야비한 그림을 직접 그려넣었다. 정 말 과거 신부였던 사람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 그림의 내용 은 이미 앞의 글에서 말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독일의 개신교 역사가 될링거(Dollinger)는 이를 평하여 "루터가 이 글을 썼을 때 독한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글 이다" 라고까지 말했다.
유다인의 박해
그는 개신교의 그 오랜 전통 - 유다인에 대한 박해 - 을 수립하는 데도 일조를 담당한 바가 크다. 그는 유다인에 대해서도 ’저주받은 지옥의 새끼 마귀들’ 이라 는 듣기에도 망측한 욕을 퍼부었다. 그는 독일에 있는 동지를 규합하여 "유다인 의 학교와 회당을 불지르고 그 불꽃 속에 기름과 유황을 던져 넣어라. 그래도 안 되면 국외로 추방하라" 고 외쳤다.
루터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이와 같이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신학 사상 을 지닌 사람을 마구 욕했다.
공정한 개신교 역사가 스토다드 (John L. Stoddard)는 이 혁명가의 생애와 저서 를 고심하여 연구한 끝에 양심의 자유에 관한 루터의 태도를 이렇게 결론지었다.
"흔히 루터가 연구의 자유권을 창시했다고들 말하지만 이보다 틀린 생각은 없 다. 그는 이것을 교회의 전통을 배척하는 핑계로 내세웠지만 실은 성서를 자기 가 해석하는 대로만 믿으라고 고집 부리는 데 죽을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는 살과 피를 지닌 교황 대신 종이로 된 교황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권 위 있는 성서 해석자로 자처함으로써 실제로 스스로의 무류성(無謬性)을 주장했 다. 루터와 같은 시대에 살던 세바스찬 프랭크(Sebastian Frank)는 ’교황 밑에서 도 지금보다는 자유로웠다’고 한탄했다."
양심에 관해서 이러한 폭군의 태도를 고집한 자는 루터만이 아니었다. 그 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혁명가가 다 그랬다. 이것은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혁명가들이 자기의 발판을 튼튼히 하려면 불가 불 자기의 성서 해석이 최고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우김으로써 이를 따르 는 자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체 가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머리 수효만큼 교파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
칼뱅은 이점에 있어 소위 루터를 따르는 모든 혁명가들의 본보기라고 볼 수 있기에 여기서는 그를 예로 들겠다. 그는 오베레렛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가 하느님의 대변자로서 무류성을 주장하며 "하느님은 내게 선(善)과 악(惡)을 선언할 권리를 주었다"라고 폭언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이에게 화형 또는 참수형을 선언했다. 그는 신학상의 논적(論敵)인 셀베토를 오 랫동안 감금한 끝에 불에 태워 죽였다. 이것이 혁명가들이 세상에 가져온 소위 종교적 자유라는 찬란한 빛이라는 것이다.
미국에 처음 이주한 사람들도 이러했었다. 대양(大洋)의 위험과 용감히 싸워 이겨 새 세계에서 옛 세계에게 구박받은 종교의 자유를 찾은 청교도(淸敎徒)들 은 즉시 자기들의 ’하느님’과는 다르게 하느님을 흠숭하려는 모든 이를 과격 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바닷길이 하늘은 바꿔 주었지만 마 음은 바꿔 주지 않았다. 청교도들은 다른 혁명가들처럼 그들의 종교적 자유만은 보물로 여겼지만 이를 찬동하지 않는 이에게는 불행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열 교도들은 이 초기의 이민들로부터 옛 세계에서와 똑같은 학대를 면치 못했다. 미 국의 초기 식민사(植民史)는 두각을 나타내는 종교단체가 그 밖의 단체를 박해하 는 귀에 익은 박해사(迫害史)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오락가락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유럽에서 1800년 동안, 그리고 미국 역사에서도 여러 해 동안 지배해 온 종교관과는 정반대가 되는 종교 사상이 요즈음 대다수의 현 대인들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 "종교는 무엇이든 다 똑같이 좋다." "교리는 상관없고 생활이 문제다." 등등 그럴듯한 말에 귀를 솔 깃하는 사람이 거의 전부라는 사실은 어찌 된 영문인가? 그 조상들은 세기를 이어 온 정통 신앙을 고수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지 않 았던가? 어찌하여 종파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져 믿는다는 사람조차 오늘은 이 교파로 내일은 저 교파로 들락날락하게 되었는가?
최근 저명한 침례교 목사인 포스딕(Harry E. Fosdick) 박사가 워싱턴에서 장로교의 정식 설교사로 임명되었다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그다 지 놀라운 일이 못 되었겠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장로교의 목사 회의에서 이 침례교 목사의 정통성을 장로교의 교리에 비추어 따졌다는 맹랑한 사실이다. 신문 사설들의 대체로 일치된 의견은 침례교 목사의 가르침과 장로교의 교리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우기는 장로교 목사들의 행동은 대중이 보기에는 ’부질 없는 법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리의 정통성에 대해서 목숨을 내걸 고 싸운 그러한 태도로부터 이렇게 교리의 차이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 는 태도로 변한 변덕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사사로운 해석
미지근한 생각, 알쏭달쏭한 모순, 닥치는 대로 하는 흥분, 논리나 상식의 첫 원칙까지 무시한 논쟁, 참과 거짓에 대한 객관적 표준의 가치를 무시한 태도, 이런 것을 내포하는 종교 무차별론이 어찌해서 두드러진 현대 종교 철학의 자리 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마르틴 루터가 종교계에 넣은 원리를 회상 할 필요가 있다.
곧 성서 해석과 종교 생활에 있어 개인의 자유 해석이 교회의 권위 있는 해석 보다 우월하다는 원리이다. 루터는 애초에는 누구든지 자유해석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자기에게만 이 원리가 독점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그의 행동의 본보기는 그의 말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 쉽사리 사람들은 그런 물이 들었다.
그는 확실히 장차 21개나 되는 괴상 망측한 머리를 가진 히드라(그리스 신화의 머리가 아홉 개인 뱀)를 마련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이것은 지금도 쉴 새 없이 분열되어 그의 시대 전후에 있었던 모든 이단파보다 더 많은 분파를 그리스도교계에 가져왔다.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 뱀이 머리가 아홉 개나 있어서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새로 나오듯, 이 원리도 한 교파의 두 사람이 의견이 일 치하지 않기만 하면 두 개의 교파가 생기고, 그 교파마다 제각기 최고의 절대적 해석을 주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6백개가 넘는 개신교 교파들은 모두 이 루터의 원리가 낳은 자식들이었다.
이 원리가 지닌 여러 가지 뜻을 분석해 보자. 여기에 진리에 대한 객관적 표준이 없음은 뚜렷하다. 표준은 순전히 주관적이 되어 버렸다. 즉 루터가 내세운 원리를 따르면 뜻에 맞으면 믿을 것이요, 맞지 않으면 배척해야 한다. 이래서 그가 행동 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말씀이 실려 있는 야고보서를 읽고 즉시 ’검 불 성서’ 라 하여 태워 버렸다. 왜냐하면 이것은 ’믿음만으로’ 구원된다는 자기의 교리만큼 그의 마음을 당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의 연옥 교리의 가장 분명하고도 힘찬 증거인 마카베오서를 보고는 루터는 그의 주특기인 위작과 개작을 통해 몇구절을 바꾸어서는 도저히 그 명백 한 뜻을 흐려버릴 수 없음을 알고서 외람되게도 마카베오서 모두를 성서에서 없 애 버렸다. 음험한 자가 반대편의 증인을 암살하듯이. 예수의 기적으로 부활한 라자로를 살해하여 예수의 전능의 증거를 없애려던 유다인의 심술과도 같다. 그들은 마카베오서를 감히 위경(僞經)이라 주장한다. 과연 말도 안 될 짓이다. 마카베오서는 다른 모든 성서와 같이 정경(正經)이다. 원래 정경(正經), 위경 (僞經)은 오로지 가톨릭 교회의 권위로서만 판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바오로 서간의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 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 28)에서 믿음이라는 말 다음에 일부러 ’뿐’이라는 글자를 보태서 자기 뜻에 맞는 교리로 삼았다. 루터는 이에 대해서 비난을 받았을 때 그 자신의 뜻과 원의(願意)가 그 렇게 했다는 말로써 끝까지 버티었다. 루터가 하지않은 말을 한다고 여러분이 오해할까봐 여기에서 루터 자신의 글을 소개한다.
"그대들은 ’뿐’이라는 말이 바오로의 서간에 없다고 해서 교황주의자들이 법석을 떨고 있다고 말한다. 그대들이 알고 있는 교황주의자들이 그 ’뿐’ 때문에 반대하거든 이렇게 말하라. ’마르틴 루터 박사가 그렇게 원한다’ 또 ’교황주의자란 밥통이라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원한다. 그러니까 그래야 된 다고 내가 명령한다. 이 내 뜻이 충분한 이유다." (J. L. Stoddard, Rebuilding a Lost Faith, p. 101-102).
루터의 이같은 생각은 요즈음의 종교 무차별론자들의 생각 - 종교란 다 좋고 아무 차이도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들 - 과는 정반대 였다. 올바르기만 하면 무엇을 믿든지 상관없다가 아니라, 믿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말이다.
루터는 종교의 진리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 표준은 모두 걷어차버리고 개인 이 주관적 반동으로써 세우는 교리를 원리로 삼았다. 그러나 주관주의를 종교의 원리로 삼는다면 무엇으로 오류를 밝히고 제멋대로 펼치는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막겠는가? 제각기 자기 주관적 반동을 자기 종교의 충분한 이유로 내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최고의 틀릴 수 없는 최후의 판단이 될 것이니 어디에 공소(控 訴)할 것인가? 여기에는 취미(趣味)와 기호(嗜好)가 뒤범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따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다.
루터는 자기가 종교계에 끌어 넣은 이 원리가 본래 분열을 내포하고 있음을 똑 똑히 깨닫지 못한 듯하다. 그런데 원리라는 것은 - 특히 적용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 그 배후에 숨어 있던 눈에 띄지않는 여러 가지 의미가 차차 밝혀지게 마련이다.
성공회 학자였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뉴먼(John Henry Newman)추기경이 깊이 통찰해서 지적했듯이 "원리는 여러분이 즐기는 제멋대로의 한계를 넘어서 석방된 죄수처럼 발전한다."
자유 해석의 결과
지난 4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밑바탕에 누룩처럼 작용한 것, 그리고 개신교를 수백 개의 교파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 또 여기에 비겨 볼셰비키 소련을 질서 잡힌 정권(政權)의 본보기처럼 부러워하게 만든 것,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주 관주의 곧 사사로운 자유 해석이 우월하다는 원리이다. 그리스도교계에 혼란과 난 립을 야기시키고 무수한 교파가 서로 으르렁거려 외교인의 웃음거리가 되고, 따라 서 외교인이 선교사들을 비웃게 되는 그것은 바로 이 원리의 덕분이다.
"당신들끼리 싸우지나 마시오. 당신들은 제각기 자기의 종교가 참종교랍시고 아귀다툼하면서 무슨 진리를 우리에게 전한단 말이오?"
명백히 정의된 교리를 걷어차 버리고, 교파의 차이점을 흐리멍텅하게 하고 종교 를 한낱 감정이나 기분의 문제로 만들어버린 그것은 바로 이 주관주의다.
지성(知性)의 해도(海圖)와 나침반과 하느님이 정해 준 틀릴 수 없는 교도권(敎 道權)이라는 북극성을 내동댕이친 이 원리는 종교라는 배를 칠흑 같은 밤중에 파 도 치는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어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요동하는 주관적 감정과 욕 정이라는 파도에 까불리게 만들었다. 감정의 날씬한 옷차림을 산뜻하게 차린 애매 한 반진리(半眞理)나 뚜렷한 모순을 묻지도 않고 덥석 삼키는 현대 종교 무차별론 의 ’자식 많은 어미’가 바로 이 원리이다.
이사악이 그의 큰 아들 에사오에게 축복과 장자권(長子權)을 주고자 했을 때, 이사악의 아내 리브가는 이를 작은 아들 야곱에게 뺏어 주고자, 야곱에게 염 소의 가죽을 입혀 장님인 아버지의 촉감(觸感)을 속여 에사오의 거친 피부처럼 느끼게 했다. 이사악은 야곱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에사오의 거친 피부로 당황 했다. "말소리는 야곱의 소린데 손은 에사오의 손이라!"
이와 같이 이성과 객관적 진리의 빛을 지키는 사람이면 ’모든 종교는 다 좋고 다 참되다’고 말하는 종교 무차별론자들의 말을 들을 때 이사악처럼 한 문제의 두 가지 성질에 부딪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 "지성으로 따지면 분명히 틀린 소리인데 감정에는 그럴듯하게 마음에 든다. 정말 야곱의 목소리에 에사오의 손 이로구나."
이치에는 어긋나지만 마음에 든다
오늘날 유행되고 있는 종교 무차별의 철학은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가면 하나도 견디지 못할 것들이다. 이 뿌리를 캐내려면 루터가 개인의 자유판단을 최고의 판 단으로 삼아 종교에 끌어들인 주관주의의 원리까지 소급해야 한다. 이 원리를 따 르면 감각과 감정이 뒤범벅이 된 개인의 주관적 반동이 종교적 진리와 오류를 분 간하는 유일한 표준이 된다. 따라서 만일 모든 신조(信條)에서 똑같은 반작용과 감정을 느낀다면 그 때에 그 사람은 -그 기본적 가정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응당 ’모든 종교는 다 같고 다 좋다’고 결론 지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종교 무차별 철학은 주관주의 원리의 논리적 결론에 지나지 않는 다. 곧 16세기에 뿌린 씨를 20세기에 추수한 것이다.
이러한 주관주의의 원리가 오늘날의 개신교에 있어서도 루터 시대나 마찬가지로 지배적이라는 것은, 현대 개신교 학자들이 표준으로 삼는 책인 헤스딩의 ’성서 사 전’을 한 번만 훑어 보아도 즉시 알 수 있다. 거기에 스튜어드(A. Steward)는 개인 의 지침(指針)으로서의 성서의 신감(神感)과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여기저기서 불신하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사실보다도 더욱 절박한 문 제는 권위를 찾는다는 것이다. 만일 성서가 국회의 법률처럼 ’글자의 최대 한도 까지’ 시행력이 있다면 저 웨스트민스터 고백이 이를 일체의 종교 논쟁의 최고 법원으로 삼은 자격이 어떻게 보존되는가? 신적(神的)이며 권위적인 요소와 인간 적이며 틀릴 수 있는 요소를 어떻게 분간하는가? 사실상 우리의 공동 지식으로 따져서 계시(啓示)가 어떻게 성서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데니(Denney)는 로버트손 스미스의 글을 긍정하여 성령을 현대식으로 증명 하였다. "누가 내게 어찌해서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또 신앙과 삶의 유 일한 규범으로 받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개신교의 모든 교부(敎父)들과 더불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곧 성서는 하느님의 구원사(救援史)의 유일한 기록이기 에, 또 성서에만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실 성의(聖意)가 있음을 선언하고 계심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그 리고 나는 이 기록이야말로 내 마음 속에 있는 성령의 증언이 참됨을 믿으며, 이로써 하느님이 아니면 내 영혼에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없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데니는 우리가 이미 위에서 지적한 대로 ’인간에게 보내는 하느님의 메시지의 교리’이지 ’성서에 실린 전문(典文)의 교리’가 아님을 똑똑히 깨달았 다. 그의 견해를 따르면 ’아무런 선재(先在) 조건 없이’ 또 ’성서가 신적 영감 (靈感)을 받았다는 아무런 선입 관념없이’ 성서를 읽어도, ’읽고 있는 우리가 권위를 느끼게 되고’ 또 ’그리스도교와 그 교리가 단지 일반적 진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임을 우리 마음속에 머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 이 영감(靈感)을 받은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 힘이야말로 ’우리가 영감이 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어드도, 데니도, 스미스도, 성서를 읽는 개개인이 성서 에 쓰여 있는 진리에 관해서 실제로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면 어째서 그렇 게 여러 가지 서로 상극이 되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진리의 성령이 성서를 읽는 개개인에게 성서를 읽을 때 틀릴 수 없 다고 우기는 바람에 성령을 거짓과 허위의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다.
만일 개개인이 ’하느님이 아니면 내 영혼에 그러한 말을 할 사람이 없다’고 확 신한다면, 각 개인은 스스로의 주관적 반작용을 최고 법원으로 자처하게 되느니 만큼, 여기에는 각 개인의 제멋대로의 생각을 막을 아무런 외적, 객관적 권위가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오늘날에도 루터 시대나 마찬가지로 ’자식 많 은 어미’임이 이상할 것이 없다. 그 가슴 속에는 지금도 주관주의의 원리, 분열 의 원리가 깃들여 있어 끊임없이 아우성치는 반란을 막을 객관적인 외적인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종교 무차별론의 본진(本陣)
이상에서 말한 현상이 현재 전세계에 광범위하지만 특히 미국에 현저하다는 것 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아마 어느 종교를 믿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이 나라처럼 유행되고 있는 나라는 없을 성 싶다. 그러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대다수 나라들에서 종교 무차별론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러한 종교 무차별론은 일종의 정신의 AIDS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번 일요일에는 이 예배당에, 다음에는 저 예배당에 왔다갔다 해 도 그리 신기롭지 않지만, 유럽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것은 유럽에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하기야 몇몇 유럽의 국가 에서는 다소 종교 무차별론이 스며들고는 있지만, 이는 미국 사람이 자주 드나 들었고 미국 문학을 무턱대고 받아들인 결과로써, 결국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이 사상의 고향이요, 이 사상이 가장 성한 나라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이런 사상의 못자리가 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다음 사정을 살펴보면 곧 이해된다. 첫째 이 나라의 국민은 옛 세계 의 사람들의 말에 따르자면 잡탕이니 만큼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도 모자이크 처럼 가지각색이다. 그러므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많은 교파가 있게 되 고, 또 옛 세계에서 믿어 온 교파를 각각 고집하는 까닭에 그만큼 더 새로운 종파가 생기고 미국의 고유한 교파가 탄생되고 있다.
6백이 넘는 교파들이 서로 다른 신조(信條)를 내세우고 서로 자기 교파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점을 고집하는 꼴이란 어지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 많 은 교파가 옳은지 그른지를 일일이 따져 볼 겨를이 있겠는가? 이런 일은 생각 만 해도 현기증이 날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교파들이 서로 짓밟고 으르 렁대고 욕설을 하고 있는 꼴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이를 어 떤 눈으로 볼 것인가? 대답은 뻔하다. 결국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무엇을 믿 든 상관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골치 아프게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를테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종교상의 주관주의의 원리와 한데 어울려져 있다.
가장 쉬운 길
미국인이 무차별론을 가장 유력한 종교 철학으로 삼은 둘째 요인(要因)은, 이 철학의 밑받침이 행위 뒤에 숨은 사상에 있다기보다는 행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과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사변적(思辨的)이라기보다는 실천적(實踐的)인 미국민의 성미에 딱 들어맞는다. 이들은 행동 양식(樣式)을 가장 중시하며 능률 주의(能率主義), 곧 일을 해치운다는 것이 가장 인기있는 사업 철학이다. 성공했 느냐 안 했느냐를 이것으로 따진다. 이들은 특히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이것이 미국민에게만 통하는 암호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는 데는 무차별론이 옳다. 종교 무차별론의 관점 (觀點)이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허무 맹랑한 거짓말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솔깃할 리가 만무하다. 이것은 절반 정도는 참되며 그렇게 여러 사 람이 믿을 만한 진리의 싹이 있기는 하다. 행위를 강조하는 점은 옳지만 신앙의 바탕으로서 객관적으로 건전하고 참된 신조(信條)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는 점 은 잘못이다. 이는 행위가 사상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이 다. 만일 생각이 틀렸다면 그의 행위도 다 옳을 수는 없으며, 그 생각의 결점 을 어느 모로든지 꼭 드러내고 만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행위뿐 아니라 사상까지도 포함한다는 사 실을 모르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당신을 섬기기 를 원한다. 그런데 무차별론자들은 ’마음이 고와야 얼굴도 곱다’는 격언을 그다 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다. 사실 이 격언은 심리학의 진리를 심각하게 표현한 말이다.
종교 교육의 결핍
셋째 요인(要因)은 미국에서는 모든 교파가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는 사실이다. 모든 교파는 법률 앞에 평등하다. 그런데 모든 교파가 평등하다 는 개념을 법률의 분야에서부터 지성과 양심의 영역에까지 연장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 경향은 공립 학교의 종교 교육의 전폐로 더 심해졌다. 이래서 미국민은 대다수가 종교 교리에 대해서 거의 ’일자무식(一字無識)’이 되어 버 렸다. 그 결과 이들은 종교 무차별론자들의 입버릇인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 또는 "모든 종교는 똑같이 좋다" 는 등의 말을 곧이 듣는다. 이들의 눈에는 이런 말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엄숙한 진리처럼 빛날 것이다.
이상에 말한 것으로 똑똑히 드러났음같이, 수백만 명의 미국민과 그 외의 전 세계의 현대인들 중 상당수가 이다지도 모순투성이인 종교 무차별론을 옹호하 고 있다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주로 루터가 종교계에 끌어들 인 주관주의의 원리에 있다. 개개인의 자유 판단이 최고의 것이라고 우기는 이 원리는 무수한 교파의 어머니가 되어 버렸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무 수한 이 교파 중에서 어느 것이 참그리스도교인지 따진다는 것은 바랄 수 없 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위의 글은 존 A. 오브라이언 대주교님의 명저(名著) ’The Faith of Millions (억만인의 신앙)’에서 일부 발췌 인용했음을 말해둡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