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 현 교황은 몇 대인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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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8-29 | 조회수2,164 | 추천수1 | 신고 |
[4] 현 교황은 몇 대인가?
■ 현 교황은 몇 대(代)인가?
로마주교, 즉 교황이 베드로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간의 모든 교황들의 이름. 순서. 재위기간 등에 있어서까지 다 확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바티칸’시에서 매년 발행하는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는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는 264명의 교황의 이름과 순서와 치세(治世) 기간이 명기되어 있다. 이것은 물론 교황청의 발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또 가장 신빙할 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교황청 연감 자체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연감이 수정되고 증보(增補)되어 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두드러진 예로 비오 12세가 한때 262대 교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계산대로 하면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66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 교황청 연감에는 264대로 되어 있다.
이렇게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은 요한 23세 때문이었다.
요한 23세는 비오 12세에 이어 1958년에서 1963년까지 재직한 교황이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 교회사에서 아주 흔했으나 500여년 이래 사용되지 않은 요한이란 이름을 취하고 자신을 요한 23세로 명명했다. 그래서 과거의 교황 중에 이미 요한 23세가 있었기 때문에 요한 23세로 불리는 교황이 두 명이 되었다. 최초의 요한 23세세는 1410년부터 1415년까지 교황으로 있었는데 1415년 큰스탄츠 공의회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러나 그는 비오 12세 때까지 합법적 교황으로 공식 교황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칼리가 의식적으로 요한 23세를 다시 택한 것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오류라는 확신에서, 이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요한 23세는 1958년 11월 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가진 다음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1419년 11월 22일에 사망한 요한 23세의 무덤의 그림엽서를 친구들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않았다. 나는 그간 오래 또 널리 유포된 이 역사적 무지에 얼마나 당황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한 역대 교황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의 하나가 대립(對立)교황의 문제이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칭한 대립교황 중에서도 서구이교(西歐離敎, 1378-1417) 시대의 교황들이 가장 문제가 된다. 이때 3파의 교황이 난립했는데, 하나는 로마계(系)였고 하나는 피사계였고, 또 하나는 아비뇽계였다. 이중 아비뇽계 교황들만은 대랍교황으로 취급되었으나 피사계 교황들은 로마계 교황들과 피사 공의회에서 선출됐는데 역사가들은 피사공의회를 합법적 공의회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사계 교황은 두 명으로 알렉산델 5세와 요한 23세이다. 이 두 명의 교황을 종래처럼 정식교황으로 계산하면 현 교황이 266대가 되고 제거하면 264대가 된다.
그런데 교황청 연감은 론칼리 요한 23세의 의견을 따라 피사계 2명의 교황을 대립교황으로 취급함으로써 현 교황이 264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피사계 교황을 창설적 교황으로 보는 역사가들이 적지 않다. 뿐더러 로마의 성바울로 대성전의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에도 두 명의 요한 23세가 들어 있고 그래서 둘째인 요한 23세가 ’소’(小) 요한 23세’로 기록되어 있다. 바울로 대성전의 교황의 그림들은 둥근 메달 모양의 초상화인데 그것은 이미 5세기에 시작되어 오늘까지 계속됨으로서 로마주교들의 중단없는 계승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물의 하나이다.
물론 교황청 연감도 뚜렷한 증거없이 수정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1983년도 연감을 보면 "로마주교 명단은 역대 교황표와 그 사료의 연대기에 의거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것이다"고 증거를 뚜렷이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연감의 근거는 ’역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이다. 이 교황표는 전기 형식으로 된 역대교황의 역사이다. 이것이 처음으로 작성된 것은 6세기인데 이것을 작성한 로마의 한 성직자는 그때 전해지던 로마주교 명단들을 참고했고, 무엇보다 354년에 작성된 ’리베리아누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를 그 기초로 삼았다.
이 리베리아누스 교황표보다 약간 먼저 작성된 것이 최초의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수록된 28명의 로마주교의 명단이었다. 이때부터 역사가들이 교황명단 작성에 관여하였고, 그래서 교황명단에 재위(在位)기간이 명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는 역사적 관심에서보다 신앙적 관심, 즉 로마교회의 신앙의 정통성과 사도적 기원을 중시했기 때문에 연대가 첨가되지 않았었다. 이런 유의 로마주교 명단 중에 가장 오랜 것이 180년경에 ’리용’의 이레네오 주교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최초의 로마주교 명단들이 연대를 소홀히 한 관계로 우리는 초기 교황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베드로 다음의 교황이 리노인지, 클레토인지, 아나클레토였는지조차 확언할 수 없다. 초기 교황들의 재위기간은 더욱 불확실하다.
또 역대 교황표시는 계산을 잘못한 곳도 있다. 예컨대 요한 19세 다음에 20세가 빠지고 21세가 나오는가 하면, 마리노 1세(882-884)와 마리노 2세(942-946)가 어떤 리스트에는 마르티노 2세와 3세로 나온다.
끝으로 교황 중에는 전설에 불과한 교황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여자교황 요한나이다. 요한나는 레오 4세가 사망하자 855년에 교황이 되어 2년간 재직했다고 한다. 그러나 855년에 레오 4세가 사망하자 이어 베네딕토 3세가 858년까지 3년간 교황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여교황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여교황 요한나에 관한 전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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