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53]번 '성직자의 독신 생활'에서 빠진 내용을 보충합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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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9-17 | 조회수680 | 추천수2 | 신고 |
아래 353번 글 ’성직자의 독신 생활’ 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개신교 측의 성서에만 ’아내’로 나와 있지 않고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공동 번역 성서에 도 ’아내’로 나와 있습니다.
가톨릭의 정확한 원문 성서인 라틴어 성서(불가타역)에는 ’자매인 여인’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함께 작업한 공동 번역 성서에까지 왜 ’아내’라는 말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어 다시 보충했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필자의 글의 의도를 오해할까봐 다시 한 번 노파심에서 말하거니와 아래의 글은 종교의 관점를 떠나 오직 진리의 이름 으로 사실만을 이야기할 따름임을 밝혀두며 명명백백한 진리를 거짓과 허위로 포장하려는 개신교의 행태에 대한 사실 고발임을 미리 말해둡니다. 따라서 개 신교의 오류를 지적하는 아래의 글은 개신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신자 개 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나 비난은 될 수 없음을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주의나 주장의 오류에 대한 비판은 그 주의와 주장을 신봉하는 각 개인의
인격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수정한 부분만 다시 올립니다.
- 중략 -
반대설에 대한 반박
어떤 사람들은 고린토 전서 9장 5절(공동 번역) - "우리라고 해서 다 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아 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 을 들어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무모하게도 반대하려 듭니다. 개신교 측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 에는 ’아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원문의 ’자매인 여인’이라는 단 어를 그들이 일부러 아내라는 말로 잘못 옮겨 적은 것입니다.
(주의:이 구절에 대해서는 독자들께서 지금 현재 가톨릭 측에서 사용하 는 공동번역 성서를 참조하더라도 원문의 ’자매인 여인’이 아닌 ’아내’ 가 그대로 나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 느냐고 의아해 하실 독자들에게 정확한 사연을 말씀드리면 가톨릭과 개신 교에서 공동 번역을 할때 라틴어 성서 원문에서 옮겨 정확하게 번역하기 로 합의한 원칙을 개신교측에서 깨고 자신들의 개신교에 절대적으로 유리 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아내’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러한 개신교측의 의도적인 오역과 위역이 가톨릭과 함께 만든 공동번역 성서 안에 상상외로 아주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 한 것들 모두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이것 이 바로 그들 개신교의 참모습입니다. 과거 그들의 신앙 개조 루터가 저 질렀던 만행을 가톨릭과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했던 성서에까지 가하는 것 이 바로 저들입니다. 걸핏하면 성서를 들먹이며 성서에 나와 있는 하느님 의 말씀이니 하면서 떠드는 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지는 못 할망정 도리어 무엄하게도 하느님의 말씀까지 개신교의 헛된 교리에 맞도 록 뜯어고치고 그리고도 모자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멋대로 해석하려 들 어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 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
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 버리
실 것입니다"(묵시 22,18-19)
라는 성서 말씀도 개의치 않는 태도에는 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내가 없는 독신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은 결혼을
허용하는 그들의 의도적인 곡해일 뿐 아니라 모순까지 범한 것입니다. 없는
아내를 어떻게 데리고 다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여인이란, 사도들이
전교하는 데 협력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따라 다니는 신앙이 열렬한 부인
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중략 -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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