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 궁극적인 대답 - 하느님께 다가가게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오성훈 쪽지 캡슐 작성일1999-11-24 조회수529 추천수2 신고

 

 

                    ♣ 궁극적인 대답

 

 

 

   “그러나 실지로 그들이 갈망한 곳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자기들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

    치로 여기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한 도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히브 11,16]

 

 

 

 

 

    우주선 ‘파이오니어’호의 선장 울프렉스는 모든 일에 철저하게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울프렉스는 과학의 힘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자신에게조차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후 울프렉스는 우주 비행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나 들개처럼 탐욕스럽게 명성에 집착하는 동료 과학자들에게서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침내 핵전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존

   자들이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 외계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가 열 대 남짓의 우주선으로 이루어진 지구 탈출 함대 가운데

   하나인 파이오니어호의 선장이 된 것도 그때의 일이었음), 정말로

   자신의 신, 즉 과학에 대하여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울프렉스는 과학 이외의 다른 종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물리학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부 머칸에게 당혹감을 털어놓으면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머칸 신부는 최근 들어 성직자로

   서 임무, 즉 사목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울프렉스는 뛰어난 학문과

   불타는 신심의 소유자인 머칸 신부에게 자신의 남모를 고민을 털어

   놓곤 했다. 그렇다고 신부에게서 무슨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의 견해 차이가 너무나 컸다. 그러나

   머칸 신부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바로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줄 아는 능력 말이다. 더욱 더 신기한

   것은, 입으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머칸 신부였다.

 

   ‘파이오니어’호가 은하계의 허공 속을 날아가고 있던 어느 날 밤,

   울프렉스는 문득 지구를 통째로 삼켜 버린 비극적인 파국이 유난히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우주선에 승선할 수 있

   었던 일,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행 등을 생각하면 우울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우주선의 거대한 모니터를 통하여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외경스러운 우주의 광경을 지켜보던 그는, 또다시

   머칸 신부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마침 선장실에는 그들 두

   사람말고 아무도 없었다.

 

   “참 이상하지요, 신부님! 이 우주선의 조용한 엔진 소리를 듣고 있

   으면, 또 이 우주선의 반응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내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 계기판의 복잡한 게이지와 지시등 따위가 한치

   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과학이

   이룩한 많은 업적들에 대하여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무상함이나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나아가 결

   국 멸종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 따위를 생각하면, 오히려 과학

   때문에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머칸 신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해합니다. 과학은 이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설명하고 측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의미’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신부님. 과학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에만 초점을 맞출 뿐, 세상의 궁극적인 중요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과학은 생물학적 개념에서 인간의 기원과 육체적 구성요소,

   그리고 유전적 가능성 따위를 밝혀 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말입니

   다. 아무리 중요하고 가치 있는 성과를 올렸다 할지라도 과학이 스스

   로를 규정하고 있는 위상하에서는 이러한 자기 부정적인 모순에 봉착

   할 뿐입니다. 과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대답도 내놓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대답한다 해도, 마지막 하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합니다.”

 

    과학자의 독백이 잠시 끊어졌다. 머칸 신부는 친구의 고민을 들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만족스러운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프렉스가 다시 머칸 신부를 향하여 자조적으로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따라서 우리 같은 과학자들은 인생의 수수께끼에는 마지막 해답이

   없다는 결론으로 빠져 들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 공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미지의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 여행이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집약한 상징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처음에 우리는

   더없이 연약한 원형질로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

   서 생각할 줄 아는 뇌를 가지게 되었지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철저한 미스터리일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

   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요?  무엇을 향

   해 가고 있는 겁니까?”  

 

    울프렉스는 처절한 표정으로 다시 머칸 신부를 돌아보았다.

 

   “나도 신부님이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종교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오늘 밤, 나는 아무리 단순하게 들리는 대답이라 해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거지가 찬밥 더운 밥 가릴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머칸 신부도 웃었다. 친구의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수사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며,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평소처럼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머칸 신부가 울프렉스를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장황한 신학적 설교를 늘어놓지는 않으

   렵니다. 그런 설교를 들을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니까 말입니다.

   당신이 방금 얘기한 주제와 관련해서, 내가 평생 동안의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았는지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대신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관련된 기본적인 공식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당신도 간단한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가장 무지한

   신자들조차도 교리문답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런 다음, 머칸 신부는 우주선의 내부 통신 체제에서 스위치를 하나

   눌렀다. 상대편에서 누군가 응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머칸 신부요. 교리반에 참여하고 있는 소년 하나를 선장실로

   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나 괜찮습니다.”

 

 

    잠시 후 여덟 살짜리 꼬마 하나가 나타났다. 눈에 아직도 졸음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니, 잠자다 말고 불려 온 모양이었다. 그 소년이

   선장과 신부 사이에 서서 왜 하필이면 이런 늦은 시간에 자신을 불

   렀는지 의아해하며 눈을 끔벅이자, 머칸 신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소년은 교리문답 시간에 가장 처음으로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느님을 알고 즐기게 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지?”

 

   “우리는 천국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하느님의 모든 아들딸과 함께 계신

   하느님께 가고 있는 중이에요.”

 

   “잘 대답했다, 얘야. 이제 그만 가서 자거라.”

 

   소년이 나가고 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머칸 신부가 흐뭇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보셨습니까?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무척

   간단합니다. 우리는 ‘집’으로 가고 있는 거니까 말입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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