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비유인지 몰라도 내가 어떤 사람하고 아주 심하게 다투어 거의 원수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정식으로 화해를 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너그러운 마음을 악용하여 나 혼자서만 마음 속으로 화해하고서는 상대방에게 다가가 상대방이 상처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방이 드러내놓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서 어떤 물건을 가져온다거나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편하게만 대한다면 상대방은 아마 더 큰 마음의 상처와 모욕을 느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죄를 지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느님과 원수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죄 중에 성체를 영한다면 앞서 말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주님을 받아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주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자격조차 없는 우리에게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우리 스스로 합당한 자격을 갖출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합당한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늘 죄중에서 성체를 영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라 할 지라도, 대죄 중에는 성체를 영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소죄중에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통회를 하고 성체를 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는 성체를 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크게 마음 아프게 하고 하느님과 원수지게 된 대죄 중에 있을 때에는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성체를 영하는 것은 성체를 모독하는 "모령성체"라고 하는 또 다른 대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대죄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또 다른 미묘하고 어려운 질문이기에 윤리신학을 전공하신 분이 대답을 해주셔야 하겠지만, 제 어설픈 설명으로 우선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 제가 잘못 설명한 것이 있다면 누군가 교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대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 행동이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는 잘못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0계명을 어긴 것 등이 되겠지요.
둘째로 그 행위가 죄라는 것을 본인이 자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박약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그 행위의 결과가 아무리 심각하다 할 지라도 처벌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로 그 행위를 강제적으로가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충족될 때, 비로소 대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천주교에서 인정을 안하는 이혼'이라고 하셨는데, 천주교가 인정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대하여 질문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음행한 까닭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19,8~9)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음행한 까닭 "이라는 말은 그저 바람을 피운 행위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 혼인의식을 치르지 않고 혼인외의 동거자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 한 것 자체로서 성체를 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현대사회 속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이혼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혼하고 나서 다른 상대방과 재혼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한 간음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함으로, 교회는 성사의 관리자로서 그러한 하느님의 분명한 뜻을 거슬리는 삶속에서 성체를 영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답변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