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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St. Dominic Savio ....Died:9 March 1857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이수근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4 조회수327 추천수0 신고

+찬미 예수님.

 

 





축일:3월9일(3월6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St. Dominic Savio

San Domenico Savio Adolescente


Born:2 April 1842 at Riva di Chieri, Italy

Died:9 March 1857 at Mondonio, Italy

Beatified:1950 by Venerable Pope Pius XII

Canonized:12 June 1954 by Venerable Pope Pius XII

Name Meaning:belonging to God (= Dominic) wise; learned (= Savio)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에 피에드몬트의 리바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 주도록 의뢰하였는데,

도미니코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가 12세 때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학생이 되었다.









* 성 요한 보스코(돈보스코) 사제 축일:1월31일.인창동성당게시판1595번.

* 성 프란치스코 드 살(프란치스코살레시오)주교 학자 축일:1월24일.게시판1584번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수도회

(이) Societa’ di san Francisco Salesio

(영) 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개성과는 달리, 도미니코는 자신이 그곳에서 조직한 ’무염 성모회’때문에 길이 기억된다.

이 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돈보스코를 여러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 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무염 성모회’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양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세 던져라.’



나이어린 이 소년의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과 못지 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코는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는 얇은 시트 한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는냐, 폐렴에 걸리려구?’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하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때부터 몇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증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 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께 알렸고, 교황은 이어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하게 되었다.



그의 건강은 날로 나빠져서, 1857년에는 고향집이 있는 몬도니오로 보내졌고, 3월 9일 저녁에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에야 이루어졌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Be Still My Soul-The St Philips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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