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하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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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손성호 | 작성일2008-07-06 | 조회수404 | 추천수0 | 신고 |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高) 우르술라,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 신부의 경우 장례마저 막아
참수된 자리에 묻고 파수를 두어 지켰다. 하지만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신자들은 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인 이민식(1829-1921년)은 파수의 눈을 피해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후 김 신부의 시신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등에 지고 험한 산길을 틈타 1백50리 길을 밤에만 걸어 일주일이 되는 날 자신의 고향인 미리내에 도착했다.
자신의 선산에 김대건 신부의 묘를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던 그는 그로부터 7년 후 페레올 주교가 선종함에 따라 주교의 유언대로 그를 김 신부의 옆자리에 안장했다. 그 무렵 김 신부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도 비극적인 처지에서 숨을 거둔다. 이민식은 고 우르술라도 김대건 신부의 묘 옆에 나란히 모셔 생전에 함께 있지 못한 한을 위로한다. 그리고 미리내의 오늘을 있게 한 당사자인 이민식 자신도 92세까지 장수하다가 죽어서 김 신부 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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