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의 벗들 예수회의 창설자 성 이냐시오의 영성
모든 수도 공동체는 고유한 은혜를 지닌다. 교회의 신비에 보편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수회에 보다 더 본질적으로 고유한 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도적 봉사를 위해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동지애'' 혹은 ''동반자의 삶''이고, ''주님 안의 벗들''이 되는 체험이 예수회 창립의 기초를 이룬다. ''예수회''(Compa a de Jes s, 직역하면 ''예수의 동반자'')라는 명칭이 지시하듯 동반자로서의 삶이 예수회의 근원적 특은이다. 그러므로 이 "동반자"의 은혜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할 때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을 파악하게 된다. 우리는 성인의 첫 동료들이 지녔던 내적 태도와 영적 여정을 따라가면서, 성 이냐시오 영성의 두 결정적 지표들, 즉 라 스또르따의 체험과 까르도네르 강가의 체험을 중심으로 예수회에 전수된 특은을 살펴보겠다.
이냐시오는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바르셀로나, 알카라, 살라망카에서 공부하면서 이미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때 만난 동지들과의 관계는 끝까지 계속되지 않았지만, 후에 파리에서 그의 고유한 인품, 즉 친절함, 영성지도자로서의 탁월함,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열정, 앞을 내다보는 식견 등에 감명 받는 여섯 명의 20대 젊은이들이 모였다: 삐에르 파브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시몬 로드리게즈, 디에고 라이네즈, 알퐁소 살메론, 니꼴라스 보바디야. 1534년 8월 15일 성모승천 축일에 몽 마르뜨르의 한 작은 경당에서 그 당시 이미 사제였던 파브르가 미사를 집전하고, 미사 중에 일곱 명의 동지들은 청빈과 정결의 개별적 서원을 발하고 예루살렘을 순례하기로 서약한다. 그 이듬해에 이냐시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동지들을 파브르에게 맡기고 휴양을 위해 고향을 방문한다. 그 동안 파브르는 세 명의 동지들을 더 받아들인다: 끌로드 제이, 파샤스 브뢰트, 쟝 꼬뒤르. 이들 열 명이 예수회를 창립한 장본인들이다.
그러므로 동반자로서의 은혜는 이들이 파리에서 머물던 시절에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네즈 신부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일주에 한번씩 동지들의 하숙방에서 돌아가면서 만났는데 이 모임은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였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주 만나면서 이들은 서로 "주님 안의 벗들"이 된 것이다. 이때 이들은 결코 어떤 수도회를 창립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 안에서 친구들로서의 정을 나누며 지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동반자''의 은혜가 예수회에 특은으로 전수된다.
이들은 1537년 1월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베네치아에서 함께 만났고, 그 후 로마에 가서 2년 동안 여러 사도적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대단한 열정으로 사도적 활동을 전개했는데 길거리에서 설교하고 성사를 집행하며 여러 곳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병원 등의 사회복지 시설에서 봉사하면서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추위 등의 어려움 속에서 가난하고 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활동을 펴나갔다. 이러한 사도적 활동은 그들 서로 간에 공감대를 더 깊이 형성해주었고 형제적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면서, 그리스도교의 영성사에서 아주 독특하고 눈부신 우정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바로 주님 안에서 서로 벗들이 된 것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한데 엮어져 사도적 활동에 헌신하기 위해 교황의 권위와 이냐시오의 고유한 영도력 아래 뭉쳐진 우정 어린 사제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교황께서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를 위해 세상 어디에나 파견하실 수 있도록 그분의 권위에 자신들의 의지를 내 맡겼고, 교황께서는 그들과 함께 활동하시는 성령의 힘을 보시고, 또 유럽의 각지에서 오는 요청에 따라 이들을 여기저기에 파견하셨다. 이렇게 서로 흩어지는 상황에서 이들 사이에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주님 안의 벗들''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공동으로 식별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모으시고 일치시킨 것을 우리가 갈라서는 안된다."는 자각과 더불어 1539년 3월 중순부터 6월 24일까지 함께 모여 소위 말해 ''사도적 공동식별''의 기초를 이루는 [첫 사부들의 식별](Deliberatio primorum Patrum)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도적 활동에 투신하는 수도회를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이제 특별히 라 스또르따의 체험과 까르도네르 강가에서의 이냐시오의 체험을 자세히 살펴보자.
라 스또르따에서의 체험 (1537년)
이냐시오의 [자서전](#96)에는 이 체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사제가 된 후에도 그는 자신을 준비하고 성모께서 자기를 성자와 한 자리에 있게 해 주시기를 빌면서 일년간 미사를 지내지 않고 보내기로 결심한 바 있었다. 로마를 몇 마일 남겨두고 하루는 어느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그는 자기 영혼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성부께서 자기를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자리에 있게 해 주시는 환시를 선명히 보았으며 성부께서 자기를 성자와 함께 있게 해 주셨음을 추호도 의심할 바 없었다." 첫 동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체험을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냐시오가 파브르, 라이네즈와 함께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오고 있었다. 로마에서 얼마 멀지 않은 라 스또르따라는 마을의 한 경당에서 기도 중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천주 성부께서 이냐시오를 그의 봉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놓아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하셨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가 없어 이냐시오는 동료에게 말하기를 "로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지도 모르겠소." 했다. 이냐시오는 또 말하시기를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뵌 것 같은데 그 가까이 계신 영원하신 성부께서 그리스도께 "이 사람을 네 종으로 거두기를 바란다." 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냐시오를 실제로 거두시며 "너희가 우리에게 봉사하기를 원한다." 하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 때문에 이냐시오는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큰 신심을 지니시고 "예수회" (Compa a de Jes s)라는 이름을 동료들의 모임에 사용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초기의 예수회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예수의 동반자로 선택하셨다고 이해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예수회에 부여하신 특수한 은혜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죽지 않으시지만 그분께서는 아직도 계속 당신의 지체 안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계신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동지들을 부르시는 것이고 예수회원들은 이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들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해 함께 고통을 나눈다. 십자가를 통해 그분의 동반자가 되었기에, 예수회원 각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구원된 후에도 비참하게 멸망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기를 원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회원은 예수의 동반자로서 그분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가슴으로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그리스도를 가깝게 본받고, 가난하기를 원하며 정결하기를 원하고 순명하기를 원하면서 그리스도를 섬기기를 원하는 것이다. 비난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며 당신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이 예수회원들이 선택하는 삶이다.
까르도네르 강가에서 체험 (1522년 8월)
[자서전](#30)에 기록된 성인의 체험을 살펴보자: "길을 가다가 신심이 솟구쳐 그는 강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강은 저 아래로 흐르고 있었고, 거기 앉아 있을 동안 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비록 환시를 보지는 않았으나 영신사정과 신앙 및 학식에 관한 여러 가지를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 만사가 그에게는 새로와 보일 만큼 강렬한 조명이 비쳐왔던 것이다. 비록 깨달은 바는 많았지만 오성에 더없이 선명한 무엇을 체험했다는 것 외에는 자세한 설명을 못했다. 그는 예순 두 해의 전 생애를 두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많은 은혜와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사실들을 모은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그가 받은 것만큼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냐시오의 측근이었던 까마라 신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체험은 하나의 통합적인 영적 조명의 체험으로서, 이냐시오는 모든 것이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지를 깊이 통찰했다고 한다. 초기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냐시오는 이 은혜를 항상 최고로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 체험을 통해서 깊은 겸손과 온유함을 얻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냐시오는 언제나 예수회의 생활양식에 관한 어떤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늘 이 체험을 언급하곤 하였는데 마치 바로 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의 내적 원인과 근본을 꿰뚫어 보았던 것 같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회의 이상과 정신은 이냐시오의 라 스또르따 체험과 까르도네르 강가에서의 체험을 그 원천으로 한다. 이 체험과 은혜는 이냐시오의 첫 동료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통해 나누어졌고, 지금도 예수회원들에게 [영신수련]과 [예수회 회헌]을 바탕으로 하는 사도적 공동생활을 통해 전수된다.
예수회의 [회헌](#655)에서는 예수회의 사도적 사명 안에 서린 이 동반자의 특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회원들이 세계 곳곳의 신자와 비신자들 간에 흩어져 있어 그들의 최고 장상과 또한 그들 서로 간에 결합되는 것이 어려울수록 더욱 이를 위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에 힘써야 한다. 회원들이 서로, 그리고 최고 책임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예수회의 유지와 운용이 어렵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예수회의 중요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회에 결성된 공동체는 우리를 한데 모으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서 기원하는 것이며, 모든 성원들이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겠다는 능동적이고 인격적인 염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것이며, 다양한 사도직 생활을 위하여 성신께 충동받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순종함으로써 유지된다.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생활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어 자신과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성업을 수행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것이 예수회 공동생활의 바탕이며 목적이다."
하느님께서 성 이냐시오 로욜라와 그 동료들에게 베푸신 특은을 모든 예수회원들이 친밀하게 나눌 수 있도록 이끄신다. 예수의 동반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삶 모든 것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하며, 교회 안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직을 수행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고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예수회 소명의 핵심이다. 즉 교회 안에서 특수한 사명에로 부름 받았고 십자가의 깃발 아래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특출하게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예수회원은 참다운 내적 자유를 지니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활동 속의 관상가), 사랑의 정신으로 정당한 권위의 인도 아래 공동으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도적 열정(분별된 사랑)을 갖고 주님께 봉사하기를 원해야 한다. 그래서 한마디로 예수회원들은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에 의해서 양성된 "주님 안의 벗들"이며 동시에 "주님의 벗들"이다. 그러므로 [영신수련]에 대한 깊은 내적 인식, 예수회에 대한 철저한 사랑, 교회와 그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아낌없는 헌신과 봉사를 다할 자세를 회원들에게 요구한다.
(심종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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