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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민수기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5,840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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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입문

 

 

칠십인역을 번역한 이들은 이 책의 첫머리에 이스라엘인들의 인구 또는 병적 조사가 나오기 때문에, 이 책에「수(數)들」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것을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는「민수기(民數記)」로 옮긴다.

 

 

1. 민수기의 구성

 

민수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1-10,10)에서는 주로,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서술된 제도들을 재론하여 그 설정을 완료한다. 곧, 인구 조사(1-4장), 성소의 봉헌과(7장) 레위인들의 봉헌(8장)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 부분(10,11-25,18)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을 떠나(10,11) 광야를 횡단하는데, 그들은 이 곳에서 사십년 동안 떠돌아다니게 된다(11-14장; 16-17장; 20장). 그들은 마침내 모압 땅 경계에 있는 요르단 강 동녘에 다다르게 된다(21장). 바로 여기에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이(22-24장) 일어나고, 이스라엘이 브올의 신 바알을 섬기는 배교가 벌어진다(25장). 새로운 인구 조사로 시작되는 민수기의 세 번째 부분(25,19-36,13)에는 무엇보다도 이미 정복한 땅(32장), 또는 앞으로 정복하게 될 땅을 분할하는 지침이 들어 있다(27장; 34-36장). 또한 이 단락에서는 미디안족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원정과(31장),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나와 요르단 강 가에까지 이른 그 여정의 요약도 볼 수 있다(33장). 

 

이렇게 볼 때, 민수기는 시나이 광야에서(1,1) 약속의 땅 문턱에까지 이르는(36,13)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가끔 복잡하고 세부적인 내용들로 가려진다. 그리고 이 책에는 법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은 이야기 속에 어우러져 있고(17,3-5; 31,21-47), 또 다른 것들은 후대의 편집자들에 의해서, 문맥과 관련 없는 듯이 보이는 여러 곳에 끼워져 있다(5장; 6장; 9장; 15장; 18장; 19장; 28-30장). 

 

오경 비평에 관한 학설들의 도움으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세부 내용을 해설할 수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그 본문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오경 입문 참조). 그러나 이 학설들은 이 책의 통일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 통일성의 원칙은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 책의 히브리 말 제목인 「광야에서」라는 말이 그것을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1)

 

 

2. 광야의 이스라엘

 

사실 민수기에 모아진 거의 모든 본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의 남쪽 및 남동쪽과 경계를 이루는 광야에서 지낸 기간과 관련이 있다. 역사가들이 이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알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바는, 반유목민 생활을 하는 여러 부족이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 강 동녘 땅의 남쪽에서 만나 조금씩 합쳐져 한 민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기원전 1200년대 후반에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왔고, 일부는 다른 곳에서 모여들었다. 이러한 과정이 정확하게 얼마 동안 걸렸는지를 단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성서를 따라 이 과정을 특정 장소들과 관련지을 수는 있다. 바로 이 곳들을 중심으로 민수기의 세 부분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곧, 시나이 산의 거룩한 곳(1-10장), 카데스 광야의 오아시스들(13-14장; 20장), 그리고 요르단 강 하류 계곡에 있는 모압 벌판이(21-36장) 그것이다. 

 

어떤 민족이 이러한 방식으로, 특히 상당히 고립된 장소에서 탄생하게 되면, 그 형성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웃 민족들의 문헌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집트의 문헌들과 고고학적 유물들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이라든가 광야 생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드러내 보여 주지는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 부족들의 움직임을 기원전 2000년대 내내 팔레스티나 쪽을 향해서 간 반유목민들의 이동이라는 전체적인 윤곽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원은 이 백성을 이루는 부족들의 기억 속에 지속적인 추억을 남겼다. 곧,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21장; 31장) 패배(20,21; 21,1), 여러 가지 사건(11,1-3; 25,1-6), 또 (14,23-24; 16,1; 32,6 등과 같은 곳에서 엿볼 수 있는) 부족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스라엘 부족들이 걸어간 여정(21,10-20; 33,1-49) 등이다. 이 여행 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동 지방의 유목민들이 실제로 다니던 길과 일치한다. 

 

이스라엘이 민족으로서 존재를 확고히 하기 시작하는 이 시기부터, 성서는 전체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데에 전념한다. 사막에서 머무른 것은 이스라엘에게, 이후 모든 세대에 가치가 있는 특권적인 종교 체험의 마당이었다. 그 때부터 이 시기는 때때로,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돌아가야 하는 하나의 이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성서에는 이 특별한 시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들어 있다. 곧,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약혼 시기라는 호세아의 해석(호세 2,16-25. 예레 2,2-3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교육 기간이라는 신명기의 해석(신명 8,2-6), 그리고 이스라엘이 자기 하느님께 계속해서 부정(不貞)을 저지른 시기라는 에제키엘의 해석(에제 20) 등이다. 구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전체적으로 이 주제만을 다루는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을 드러낸다. 첫째, 광야의 이스라엘은 한 곳에 지속적으로 정착하지 않고 여정을 계속하는 백성이었다. 둘째, 이스라엘은 외부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혼자 떨어져 사는 백성이었다. 끝으로, 이 백성은 아직도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형성 과정 중의 민족이었다.

 

 

3. 형성 과정 중의 민족

 

민수기는 탈출기의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일련의 설화들로 그 틀이 짜여져 있다. 그래서 탈출기에서처럼 민수기에서도 세 가지 전승을 구분해 낼 수 있다. 곧 사제계, 야훼계, 엘로힘계 전승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잘 혼합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민수기의 이야기는 중복 없이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전승은 무엇보다도 그 신학적 의도에 따라 서로 구분된다. 야훼계와 엘로힘계 전승의 관심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첫 세대의 역사를 설명함으로써, 이를 듣거나 읽는 이들이 자기들의 시대를 위한 교훈을 끌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사제계 전승은(몇몇 경우에서는 엘로힘계 전승도 마찬가지이지만) 자기가 내놓는 제도들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들의 기능을 설명함으로써, 그 제도들을 정당화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이 세 전승은 광야 횡단 중에 일어난 근본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한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은 가끔 극적인 위기를 동반함으로써, 이 시기는 결국 새롭게 초점을 맞추어 수정하기 위한 시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처음 두 위기는 탈출기에 나타난다(탈출 17; 32). 그리고 민수기에서는 적어도 아홉 개의 위기를 볼 수 있다. 곧, 11장에 둘, 12장에 하나, 13-14장에 하나, 16-17장에 둘 또는 셋, 20,2-13에 하나, 21,4-9에 하나, 25장에 하나 또는 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행진하기를 끊임없이 거부하고, 모험을 계속하기를 거절한다. 그러한 모험 앞에서 그들은 겁을 먹고 그것이 성공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지도자들의 권위와 결정은 물론 하느님의 계획까지도 부정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직접 나서시어 그 지도자들, 나아가 그 세대 전체를 백성 가운데에서 잘라내셔야 하기에까지 이른다. 곧, 한 세대 전체가 단죄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 계획의 실현이 한 세대만 늦추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마침내 주님께서 정해 주신 땅에 다다르게 된다.

 

민수기의 이야기 전체가 이 목표를 향해서 집중된다. 몇몇 시도가 실패로 끝나지만(14,39-45; 20,14-21),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의 주검이 광야를 뒤덮어도(14,29; 26,65), 이 민족은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을 계속한다(33장). 여기에서 요르단 강 동녘의 점령이(21,21-35) 가나안 땅에 성공적으로 들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의 전주곡이 된다.

 

 

4. 모세

 

이 기나긴 여정은 모세라는 지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모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세 전승이 일치한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중요성을 드러낸다. 엘로힘계 전승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야훼계 전승도) 모세에 대해서 특히 생생하고 풍부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전승이 묘사하는 모세는 약점을 보이기도 하고(16,15; 20,10-12 참조) 실망하기도 하는 사람으로서(11,11-15 참조)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주된 특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힘들고 보답 없는 사명에 대한 철저한 성실성일 것이다. 보답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에게 반항까지 하는 백성을 위해서, 그는 여러 번 주님께 기도하여 그들을 구한다(12,13; 14,13-19; 16,22; 17,10-13). 그는 주님과 특별한 친교 안에서 살아가는, 기도하는 사람이다(12,6-8). 바로 이 점이 그를 모든 예언자 위에 있게 하고, 그를 예언자의 원형으로 내세우게 하는 것이다. 

 

사제계 본문들이 그리는 그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모세는 단순히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비인격적인 대변인일 따름이다. 어떤 규정에 대해서 말할 때, 특히 그것이 후대의 것일 경우, 모세의 이름은 결국 그 규정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인장의 구실만을 한다. 사제계 본문들은 더 나아가서 모세 옆에 그의 형이면서 대사제인 아론을 세운다. 아론의 직무는 흔히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를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릴 때에 그 옆에 서 있는 것으로 그치기도 한다. 사제계 본문들이 때때로 문법적인 수정도 거치지 않고(9,7과 20,10과 그 곳의 각주들 참조) 모세 이름 곁에 아론의 이름을 그냥 덧붙인다는 사실은, 이 본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곧 모세가 죽은 뒤에 확정된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론의 아들로서 대사제인 엘르아잘이 하느님의 계시를 독점적으로 받으며, 백성에 대해서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닌다는 사실이다(27,21).

 

 

5.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제계 전승의 전망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사제계 본문들의 특징이다. 이 본문들의 의도는 하느님 백성의 제도들을 서술하는 것이며, 이는 그 신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제도들은, 여러 규정과 인구 조사(1; 4; 26장), 여정 중의 출발과(10,13-32) 정지 명령(2장), 모든 요소가 일치하여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서술 안에 들어 있다. 사제계 본문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제도가 이미 시나이 산을 출발하기 전에 만들어졌음을 전제한다. 반면에 야훼계와 엘로힘계 전승에서는 거의 모든 제도가 앞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써, 사제계 전승에서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는 이 제도적인 틀 안에서만 가능하며, 그 밖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제도들을 정당화하는 신학은 특히 풍부하여, 여기에서 그 몇 가지 요소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제계 전승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수행하는 민족도, 국제 정치적 생존에 얽매인 국가도 아니다. 다만 주님에 대한 경신례에 헌신하는 공동체일 따름이다. 

 

둘째, 이러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결정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규정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통치되는 백성이다. 

 

셋째, 이스라엘은 적어도 가나안 땅에 입주할 때까지는 여정 중의 백성이다. 그래서 사제계의 어떠한 본문에도, 본디 유목민 생활을 위해 구상된 성소가 한 곳에 정착되리라고 예상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거룩한 곳도, 한 곳에 고정된 어떤 성소도, 주님의 현존을 독점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현존하기로 약속하신 유일한 곳은, 당신 백성의 한가운데, 곧 어떤 곳에 임시로 설치된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 또는 여정 중에 있는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잡은 천막 안 거처이다. 

 

넷째, 하느님의 이러한 항구적인 현존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그들에게 무서움을 불러일으킨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 한가운데에 머물러 계시는데, 죄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순간마다 죽음의 위험에서 어떻게 무사할 수 있는가(17,28)?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제도가 바로 그 위험을 막아 준다. 특별히 선택된 이 사람들이 백성과 하느님의 현존 사이에서 보호막 구실을 한다(1,53; 17,11). 이들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분노가 공동체를 짓누르게 만드는 죄에 대한 용서를 얻어 낼 수 있다(8,19; 17,12). 이 두 가지가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기능으로서, 이것들 없이는 공동체가 살아남지 못한다(16,3-8; 18,8-19).

 

 

6. 다른 전승들에 나타난 하느님의 백성

 

야훼계와 엘로힘계 전승에 속하는 본문들 안에서 이루어진 종합적인 신학을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는, 사제계 전승이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충하고, 이 백성의 전체적인 역사를 설명해 주는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가 발견된다.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에서 무엇보다도 남쪽 지파의 전통들을 따르는 야훼계 본문들은, 역사의 인간적인 면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창세기에서처럼 이 본문들은 하느님께 복받은 이 백성의 운명이 지니는 보편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22장과 24장). 이것들은 다윗 왕조의 도입을 준비하기도 하는데(25,7.17.19), 이 왕조가 바로 이스라엘의 기원 역사를 마무리하는 제도인 것이다. 

 

다른 두 전승보다 훨씬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엘로힘계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에 대한 깊은 의식, 온갖 분리주의적인 경향에 대한 단죄(16,12-34; 32),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언 제도에 대한 첫 윤곽을 지적할 수 있다.

 

 

7. 민수기의 현시성

 

이렇게 민수기는 거룩한 백성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이 민족이 역사의 무대에 오른 그 첫 단계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로 민수기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이상적으로 그린 모습에서 새 계약의 하느님 백성도 항상 하나의 표본을 보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낸 그 제도들을 맹목적으로 모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들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항구적인 원칙이 있는데, 하느님 백성의 삶은 바로 이 원칙들에 따라 영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여정 중에 있는 백성이고 예언자들의 백성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통치되고 주님을 위한 경신례에 헌신하는 공동체임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민수기를 계속 필요로 한다. 

 

형성 과정 중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일으킨 반항과 반역의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 백성은 자기들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 시편과 예언자가 광야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상기시킨다(시편 78,17-40; 81,12-17; 95,8; 106,14-33; 에제 16; 20; 23; 미가 6,3-5 등). 그리고 같은 뜻에서 바오로 사도도 고린토의 신자들에게 탈출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1고린 10,11. 이 밖에 히브 3,7-4,13; 유다 5.11 등도 참조). 물론 오늘날의 교회가 민수기의 이야기들 속에서 자기 역사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위기는 일정한 법규들과 관련된 것들로서, 이 법규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모여든 신앙인들의 모든 공동체에게도 분명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들에 대한 민수기의 숙고는 교회가 이제 나름대로 겪어야 하는 위기들에 더욱 잘 대응해 나아가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사제계 본문들이 말하는 제도들의 체제는 백성의 죄에 대한 예리한 의식에 그 바탕을 둔다. 백성의 반항은 이러한 죄의 상태를 드러내 보여 준다. 그러나 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실이며 만성적인 악이다. 민수기가 전하는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죄인들로 이루어진 이 백성을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당신의 복을 온 인류에게 전하고 당신께서 직접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신 백성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구성원들의 죄스러운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자기의 성화(聖化)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늘 새롭게 상기해야 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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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히브리 말 본문의 첫 낱말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다. 그래서 민수기의 경우에는 「(그리고) 말씀하셨다」가 제목이 된다. 그러나 현대의 히브리 말 성서에서는 이 첫 낱말이 아니라, 위와같이 그 넷째 낱말을 제목으로 쓴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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