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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모스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4,963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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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입문

 

 

1. 예언자와 그의 시대적 배경

 

구약성서에는 한 예언자의 언행만을 다루는 책들이 많다. 아모스는 이러한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시대적으로 첫째이다. 아모스 이전에도, 특히 사무엘서와 열왕기가 전하는 것처럼, 다른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아모스는 예언자들의 새로운 계통을 연 사람이다. 곧 통상 ‘저술 예언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펼친 활동의 직접적 반향이 그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성서의 책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들은, 예수님의 활동과 설교를 전해 주는 복음서들처럼, 대개는 예언자 자신이 아니라 그 제자들의 작품이다. 그러나 아모스서 7장, 8장, 9장에 나오는 아모스의 다섯 환시 이야기처럼, 특별히 예언자가 자신에 관해서 단수 일인칭으로 말하는 부분들은 그가 직접 기록하였을 수도 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들어올리다, 나르다’라는 동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아모스’는 ‘아모스야’라는 이름의 단축형일 가능성도 있다. ‘주님께서 날라 주셨다’라는 뜻을 지닌 ‘아모스야’는, 다른 많은 이름에서도 그러하듯이, 주님의 호의적인 개입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이름이다. 아모스는 자신을 “목양업자”로 소개한다(1,1; 7,14 참조). 그는 목축을 하기에 알맞은 언덕들로 이루어진 고장, 베들레헴 부근 드고아라는 시골에 살던 유다인이다. 그의 메시지를 밝혀 주는 목축과 관련된 많은 표상이 이러한 예언자의 출신을 확인해 준다.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의 2/4 분기에 활동한다. 이 시기는 1,1의 머리글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왕국의 여로보암 2세와(기원전 787-747년) 유다 왕국의 우찌야의(기원전 781-740년) 유명한 치세가 돋보이는 때이다. 그리고 그는 호세아 예언자보다 약 10년 정도 앞서 활동한다.

 

선택된 민족의 열두 지파 가운데에서 열 지파로 구성된 북왕국은 국제 정치적인 면에서 무엇보다도 인접한 시리아 왕국의 쇠퇴 덕분에 태평 시기를 누린다. 북왕국의 강력한 경쟁국이었던 시리아가 동쪽에서 몰아치는 아시리아 제국의 팽창 정책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여로보암 2세는 예전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살던 요르단 건너편 지역을 탈환한다(2열왕 14,25). 이러한 승리로 사람들은 새로운 영화를 꿈꾸게 된다(아모 6,13-14 참조). 왕국의 안녕은 이제 완전히 보장된 것으로 여겨진다(6,1-3). 그러나 사실은 치명적인 위협의 기운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 위에 감돌기 시작한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팔레스티나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외국과의 교역이 왕국에 번영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특별히 수도 사마리아에는 사치가 만연하고, 이른바 졸부들의 속물 근성이 확산된다(3,12; 6,4-7). 계약의 백성을 서로 결속시켜 주던 이전의 연대 의식은 변질되어,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착취가 자행된다. 게다가 그러한 착취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부정한 판결의 비호까지 받는다(2,6-7; 4,1; 5,7). 

 

종교적인 면에서는 온 백성이 자랑스러워하는 화려한 의식 속에 경신례가 거행된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러한 종교 의식에 특별히 준엄한 비판을 가한다(4,4-5; 5,4-5.21-27). 

 

아모스의 사명은 특수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다. 유다 왕국의 백성인 아모스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1,1과 7,15 참조).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현대에 비유할 때에, 아모스는 한 종파에서 다른 종파로 파견된 설교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북부로 간다는 것은 일치의 표지이다. 곧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시는 하느님께는 여전히 한 백성인 것이다. 아모스는 북왕국의 성소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베델, 곧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릴 때에 예루살렘 성소와 경쟁하기 위해서 세워진 베델 성소에서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4,4-5의 신탁이 특정 종교 의식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모스는 그것들이 거행되는 연중 대축제들 가운데 하나를 계기로 개입한다. 그의 신탁들은 사마리아에도 해당된다. 사실 어떤 신탁들은 바로 이 수도에서 선포되었을 수도 있다(예컨대 3,9-12나 6,1-7). 여하튼 나중에 등장하는 대예언자들과는 달리 아모스의 활동은 길어야 몇 달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아모스를 공공 질서의 교란자로 임금에게 고발하고 이어서 추방시킨 베델의 사제에 의해서 아모스의 활동이 중단된 것 같다(7,10-17). 이러한 예언 활동 금지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모스(또는 그의 제자단)가 자기의 환시들과 신탁들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 것을 백성 가운데 유포시켰을 수 있다. 아모스의 말씀은, 주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청중들 사이에서 전승됨으로써, 아모스의 말씀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새로운 상황에서 예언자의 메시지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몇몇 신탁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유다를 거슬러 선포한 신탁(2,4-5), 그리고 저작 시대에 대해서 계속 논란이 이는 마지막 약속(9,11-15)도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2. 아모스서의 언어와 메시지

 

아모스는 시골 출신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문맹도 아니고 교양 없는 사람도 아니며, 거기에다 촌스러운 사람도 아니다. 그는 조국과 주변 민족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을 숙고한다. 그는 사마리아를 파괴시키게 될(기원전 721년 또는 기원전 722년) 북쪽의 세력 곧 아시리아의 존재를 예감한다. 그는 또 하늘과 땅에서 비롯되는 위협에도 민감하였다. 그러한 위협 속에서 주님의 활동을 보았던 것이다. 아모스를 언어의 표현 양식을 무시하는 설교가로 여긴다면,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지혜 문학의 섬세한 표현뿐 아니라(3,3-8; 5,19; 6,12) 전례의 폭넓고 장엄한 표현도 잘 사용하고(1,3-2,16; 4,6-13; 5,4-6.14-15), 서정적 어조의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며(4,1-2; 9,1-4), 언어 유희와 풍자도 구사한다(3,12; 5,5; 6,13; 8,1). 그의 언어는 무엇보다도 간결함이 인상적이다. 자기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에, 아모스는 번개처럼 빠르고 지진처럼(그의 활동은 지진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1,1) 환상을 깨뜨리는 몇 개의 낱말로 충분하다. 아모스의 이러한 문학적 재능은 큰 힘과 중요성을 지닌 주제에 담겨 있음으로써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이 주제는 바로 하느님의 호소와 성실성에도 계속해서 참회하지 않는 이스라엘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예언서의 마지막 세 장, 곧 7-9장의 주요 대상인 다섯 환시를 통하여 아모스에게 나타나신다. 전통을 중시하고 둘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모스에게, 이 환시들은 설교하라는 하느님의 자극이 된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개에 나서서 두 번에 걸쳐 용서를 받아 낸 아모스는, 이제 더 이상 용서가 베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7,8), 그리고 야곱 집안이 멸망하는데,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9,8) 하느님에게서 알게 된다. 이러한 계시가, 한편으로는 그를 신중하게 만들어 침묵하게도 하지만(5,13), 그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3,8). 

 

아모스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위대성, 모든 민족에게 퍼져 나가는 그분의 권능과 정의, 그러면서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그 주제로 한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 특별히 경신례를 규정짓는 율법의 조항들,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밝히는 율법의 조항들을 상기시킨다. 아모스는 장엄하고 강렬한 어조로 부자들과 권력자들, 판관들과 사제들에게, 장차 복음서가 아래와 같이 표현하게 될 내용을 선포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아모스는 또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경신례가 어떠한 것인지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인들의 경신례는 저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이러한 경신례가 겸손과 정의로써 표현되기를 하느님께서는 바라시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아모스는 다시 신약성서와 이어진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합니까?”(1고린 4,7) 

 

아모스의 하느님께서는 불굴의 사랑으로써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악한 세상의 힘이 사람들을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도록 결정을 내리실 수 있는 분으로서, 사실 또 몇 번에 걸쳐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악의 무게가, 또 하느님 없이 살거나 당신의 법 밖에서 사는 죄인들의 요구가 당신을 압도하지 못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영성적으로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이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죄악과 교만이 죄인에게로 모든 벌을 끌어오리라고 선포하기도 하신다. 그러면서도 또한 죄와 오만이 가득 찬 곳에 용서와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기도 하신다. 인간의 기도가 하느님을 감동하게 하고 그분께서 당신의 결정을 번복하시게 할 정도로 큰 효력을 지닐 수 있음을, 아모스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예언자의 이러한 중개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위하여 하신 기도에서 완성된다(요한 17장). 

 

그렇다고 아모스의 하느님께서 이중의 모습, 곧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말은 아니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벌을 내리시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똑같은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분의 벌 자체가 예외 없는 정의의 엄격하고 차가운 논리를 넘어선다. 그분의 벌은 상처 받거나 배신당한 사랑의 표현, 징벌 너머로 그 마지막 외침 속에 아직도 회개를 호소하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모스보다 몇 년 뒤에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는 호세아는, 하느님의 이 극적인 사랑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내게 된다. 

 

그래서 아모스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내포한다. 

 

먼저 위협으로 가득 찬 계시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너무 늦게 찾음으로써 결국에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 갈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8,11). 

 

다음으로, 희망을 향한 계시(5,15; 9,8), 다른 예언자들이 이어 받게 되는 계시이다. 곧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용서를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이다.

 

 

3. 아모스서의 구분

 

머리글(1,1)과 짧은 서론(1,2)에, 이스라엘 주변의 일곱 국가와 이스라엘 자체를 질타하는 일련의 신탁들로 이루어진 첫째 부분이 이어진다(1,3-2,16). 이 신탁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이 더욱 폭넓게 전개된다. 

 

둘째 부분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다(3-6장). 일반적으로 짧을뿐더러 일정한 순서 없이 모아진 이 말씀들에서는 특별히, 참회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관한 연설(4,6-13), 베델의 경신례를 지적하는 말씀(4,4-5; 5,4-5.21-27), 사회적 불의와(3,9-11; 4,1-3) 교만과 잘못된 안전 의식을 단죄하는 말씀(3,1-2.12; 5,18-20; 6,1-7.13-14), 임박한 심판의 묘사(3,13-15; 5,1-3.13.16; 6,8-11), 주님께 돌아가라는 호소(5,4-6.14-15) 등이 돋보인다. 

 

셋째 부분(7-9장)에는 다섯 가지 환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다. 그 가운데에서 앞의 네 환시는 둘씩 짝을 이룬다. 곧 메뚜기 떼(7,1-3)와 불(7,4-6), 그리고 다림줄(7,7-8)과 여름 과일 바구니(8,1-2)이다. 마지막으로 성전의 진동에 관한 다섯째 환시가 나온다(9,1-4). 이 환시들을 중심으로 아모스의 추방 이야기와 같은(7,10-17) 몇몇 신탁이 더해진다(7,9; 8,3-14; 9,7-10). 아모스 예언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신탁으로(9,5-11) 끝나는데, 이 신탁을 아모스가 직접 선포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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