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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바꾹(하바쿡)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3,685 추천수0
파일첨부 하바꾹입문.hwp [683]  

하바꾹 입문

 

 

1. 하바꾹서

 

(1) 본문

 

모두 세 장으로 이루어진 하바꾹서의 히브리 말 본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그래서 고대 번역본들은 가끔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늘 흥미로운 독해를 제시한다. 유다 광야의 여러 동굴에서 발견된 ‘쿰란 공동체’의 수사본들(일명, 사해수사본) 가운데에는, 하바 1 - 2장의 본문이 거의 다 들어 있으면서 기존의 본문을 확인해 주고 때로는 보충해 주는 ‘하바꾹 주해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주해서는 기원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주해서가 단연코 하바꾹서 히브리 말 원문의 가장 오래된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하바꾹서를 봉독하는 것은 여러 목소리를 지닌 본문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예언자 자신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목소리는 여러 고대 번역본에 의해서 이루어진 변형들, 그리고 이 자그마한 예언서가 불러일으킨 다른 반향들 위에서 들려 오기도 한다.

 

(2) 구조

 

머리글(1,1)에 이어서, 예언자가 자기 하느님께 올리는 탄원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1,2-4와 1,12-17). 이 탄원에 따라 하느님의 응답도 두 번 주어진다. 첫 번째 응답(1,5-11)은 정복군, 곧 갈대아 군대의 거침없는 행군에 관한 환시이다. 역시 “환시”라는 제목을 단(2,2) 두 번째 대답(2,2-19)은,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라는 명령에서 엿볼 수 있듯이(2,2), 이 예언서의 핵심이 되는 신탁으로(2,2-4)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불행하여라”라는 말과 함께 어떤 적에게 쏟아 붓는 다섯 연(聯)의 ‘불행 선언’이 이어진다(2,6遁-19). 두 개의 연결문도 있는데, 첫째 연결문은 예언자를 파수꾼으로 소개하고(2,1), 둘째 연결문은 이제 이 예언자가 다섯 번에 걸쳐 질책하게 되는 적을 소개한다(2,5-6?). 그리고 또 다른 연결절(2,20)이 3장의 시편을 예고하는데, 이 시편은 하느님의 개입을 서술하고 그분에 대한 찬미로 끝을 맺는다.

 

 

2. 예언의 배경

 

(1) 역사

 

갈대아인들에 대한 언급은(1,6) 하바꾹의 예언을, 이 신바빌론인들이 아시리아 제국을 와해시키고 근동 지배에 성공하는 기원전 7세기 말로 자리잡게 한다. 하바꾹 예언자는 기원전 660년에서 기원전 610년까지 이어진 갈대아 군대의 원정, 유다의 점령, 그리고 예루살렘의 포위와 유배 등(2열왕 23-25), 유다 왕국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고 해설한다.

 

그러나 하바꾹 예언서의 편집과 저작을 둘러싼 상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주석가들의 견해가 갈라진다.

 

* 이 책의 각 부분은 갈대아 군대가 수행한 정복의 각 단계에 해당되고, 그럼으로써 이 책의 저작도 그것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러한 순차적 저작은 크든 작든 중요성을 지닌다.

 

* 1-2장의 대화 형식과 3장의 찬미가 형식은, 이 시가들이 지닌 전례적 성격을 가리키는 표지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경신례 거행의 핵심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가들이 사후(事後)에 전례 형식을 취하게 된 예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예언으로 제시된 본래의 전례적 창작인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어떻게 풀리든, 하바꾹서의 이러한 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는, 본문의 배후에서 알아볼 수 있는 사건들의 그 순간, 그리고 그 사건들에 이어지는 불안한 시기에 1-2장의 대화와 3장의 시편을 이끌어 간 집단적 격정의 감정을 함께 느끼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2) 예언자

 

하바꾹 예언자에 대한 연구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형편이다. “하바꾹”이라는 그의 이름은 가끔 정원의 식물 이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히브리 말 성서의 다른 경전들은 물론, 하바꾹서 자체도 그의 생애나 인물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하바꾹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이 예언서가 널리 퍼진 다음에는, 하바꾹이 이를테면 전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 관한 제2경전의 장면에서는(다니 14,33-39)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3) 거만한 사람(2,5)

 

하바꾹의 설교는 이중의 상황을 그 대상으로 하였을 수 있다. 그가 갈대아인들이라는 외적, 특히 무자비하고 탐욕스럽게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 나아가는 그들의 군주를 주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동시에 2장에 들어 있는 질타에서는 또 다른 인물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 인물은 바로 유다의 임금인데, 틀림없이 여호야킴일 것이다. 그가 바로 자기의 왕국 내부에서, 적어도 예언자의 시각에서는, 갈대아인들이나 마찬가지로 불의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2,6-12를 예레 22,13-19와 비교할 때에 그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3. 메시지와 그 해석

 

국내적, 국제적 상황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바탕까지 문제시되자,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극적인 사건들이 전개된다. 하바꾹의 예언은, 그러한 가운데에서 당혹감에 빠졌으면서도, 이제 역사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시는 하느님을 거슬러 바로 그 하느님께 탄원하는 충실한 이들의 증언이 된다. 이 탄원에 응답이 주어지는데, 거기에 핵심 낱말로서 “성실함”이 나온다(2,4). 신앙인의 삶에 근거가 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 “성실함”에, 비록 겉모습은 그렇지 않게 보여도 분명히 실재하는 하느님의 성실함에 관한 환시가 주어진다. 본문의 각주들에서 강조되는 것처럼, 3장의 시편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를테면 당신께서 그러하시다는 것을 이미 과거에 입증하셨음을 상기시키는 표현들로 짜여져 있다. 이제 바로 그 하느님께서 오신다(3,3). 여기에서부터 확고한 결론이 나온다. 곧 ‘주님께서는 나의 주님, 바로 그분께서 나의 힘이시다.’라는 것이다.

 

역사가 흐르면서, 사람들은 어려운 시대에 바로 이러한 신앙의 시각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하바꾹서의 도움을 받는다. 쿰란 공동체는 이 예언서를 자기들이 겪은 혼란스러운 사건들을 비추어 주는 결정적 조명으로 해석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에 대한 신도들의 신분을 정의할 때, 이 예언서에서 도움을 받는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하바 2,4를 인용하면서(로마 1,17; 갈라 3,11; 히브 10,38), 이 예언서의 핵심 용어인 “성실함”의 의미를 확장시켜 “믿음”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한다. 이러한 강조는 하바꾹서의 이 절을 인용하는 교부들의 저술 대부분에서도 발견된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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