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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702 추천수0

[성서의 인물]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

 

 

12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있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인간의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다. 따라서 유다인 사회에서 병자들은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온갖 불이익과 냉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유다인 사회 안에서 병자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소외감을 견디며 사는 것이 더 힘겨웠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아온 여인은 심신이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그녀는 혈색이 창백하고 몸은 바짝 말라 겉보기에도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또한 그녀의 심리적 고통도 극도에 달해 그녀의 삶은 불평과 신경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의 병치레로 인해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일부러 피할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12년 동안 백방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를 찾아 다녔었다. 하혈병에 좋다는 약도 모두 써보려고 노력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마술사를 찾아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결국 모두 허사였다. 병은 낫기는 커녕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모아두었던 가산마저 모두 탕진하여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 따르면 하혈병을 앓는 여성은 모두 부정한 여인이며 하혈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앉았던 침상이나 앉은 자리도 부정하고, 심지어 그와 접촉하는 모든 이도 부정하게 된다고 보았다(레위기 15,19-30 참조).

 

그런데 어느 날 하혈병으로 고생을 한 그녀는 예수님의 일행이 근처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이미 그 분은 여러 곳에서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셨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하혈병을 앓고 있던 여인은 용기를 내어 시내로 나갔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자신의 병이 나아야 된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에 도착해보니 정말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는 아주 혼잡한 상황이었다.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무리가 에워싸고 있어서 허약한 여인의 몸으로 그 많은 군중의 벽을 뚫고 들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은 부정한 여인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다가가 접촉하는 것은 율법을 거스르는 행동이 되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예수님께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십사 하고 말씀을 드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몰래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옷깃이라도 손을 대보려고 결심했다.

 

그녀가 예수님께 다가서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여자가 남자의 옷에 닿기만 해도 수치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 풍속을 아는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의 옷깃을 만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같은 믿음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몰래 예수님의 뒤에 와서 옷자락에 손을 댔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에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출혈이 갑자기 멈추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 기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뒤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했다.

 

"아니 선생님, 이렇게 사람들이 에워싸고 밀어대고 있는데 무슨 옷자락입니까?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과 부딪히고 있는데요…"

 

"아니야, 분명히 나에게 기적의 힘이 빠져나갔어. 누군가가 내 옷에 손을 댄 것이 틀림없음이야."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그 여인은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와 그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벌벌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제가 선생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신 후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왜 그대가 내 옷을 만졌는지 말해보시오."

 

그녀는 그간의 자신의 상황을 설명을 드리고 병이 낫게 된 경위를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정녕 그대는 내 옷깃을 만져도 전능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단 말이냐? 대단한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칭찬하신 후 말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녀는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육체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넘치는 위로를 받았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그녀의 믿음으로 결국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어디 한 군데도 기댈 곳이 없고 청할 곳이 없었던 참으로 가난했던 그녀.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절실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갔던 것이다. 과연 기적은 믿음의 열매이다.

 

"주님, 우리도 하혈병을 앓았던 그 여인의 믿음을 본받도록 저희의 믿음을 도와주십시오."

 

[평화신문, 2001년 12월 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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