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인물] 바오로의 오른팔 데르디오(로마 16,22) "데르디오, 내가 일러준 대로 편지를 써주게나." 데르디오는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쓴 대필자였다. 사도 바오로는 데르디오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한 후 개인의 서명을 하여 편지의 권위성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래서 데르디오는 바오로의 오른손의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사도 바오로가 대필자를 사용한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다. 그런데 바오로는 거의 소경이 될 정도로 심한 안질을 앓았다고 한다. 갈라디아에서 바오로는 아주 심한 육체적 상태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병을 앓았던 것이 기회가 되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이 할 수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지 않았겠습니까?"(갈라 4,13-15 참조) 어떤 이유에서든지 직접 글을 쓸 수 없는 이들은 남의 손을 빌어야 한다. 그래도 받는 사람은 그 편지를 누가 썼든 상관없이 보낸 사람의 글로 이해한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수십 명의 인간 저자의 손을 통해 씌어진 문학 작품이다. 성서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대필한 것이다(2디모 3,16 참조). 물론 성서 저자들은 무조건 기계적으로 받아 쓴 것이 아니라 필자의 개성이 반영된 '유기적 영감'으로 저술하였다. 글을 쓴다는 건 성찰과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삶의 직업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과 논리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이 누군가에 이해 읽혀질 때 그 글은 이미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적 의미를 띠게 된다. 전신마비가 된 프랑스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장 도미니크라는 사람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잇는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려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95년 말 쓰러져 15개월 간의 투병 생활 중에 대필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내용은 병상에서 떠오른 가정과 직장생활에 관한 에세이 "잠수복과 나비"였다. 잠수복은 "꼼짝할 수 없는 육체", 나비는 "밖으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정신"을 의미한다. 책에는 "내 아들 테오필 녀석은 50cm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데, 나는 그 녀석의 숱 많은 머리를 한번 쓸어줄 수도, 목덜미를 만져볼 수도 없고… 그러나 걱정마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같은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쓴 방법은 간단했지만 엄청난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알파벳 표를 보고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이면 대필자가 이를 받아 적었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은 불과 반 페이지 정도였다. 자그마한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1년 3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꺼풀을 깜박거렸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보다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인간 의지가 빛나는 책이다. 그런데 대필자의 봉사와 헌신이 없었다면 이 소중한 책을 집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필자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데르디오는 육신적인 시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의 말을 받아 사목적인 편지를 쓸 수 있었다. 데르디오는 충실하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결국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협조자가 되었다. 데르디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봉사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열 배, 백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데르디오는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써주고 읽어 주는 것 이상의 능력과 은총의 선물을 갖고 있었다. 데르디오는 복음 선포의 보이지 않는 일꾼이었다. 편지를 대필하는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행위 일부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앞에서 드러나는 사람이 뒤에서 숨어서 봉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칭송을 받고 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뒤에서 일하는 숨은 봉사자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서로 시기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각자의 몫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묵묵하게 사도 바오로의 말을 한 글자씩 받아서 적었던 편지는 많은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신앙적인 위로와 행복을 전해주었다. 당장에는 결과가 없더라도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름도 없이 묵묵히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봉사의 몫에 최선을 다하는 데르디오 같은 이들이 많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평화신문, 2002년 5월 1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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