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인물] 용기있는 성녀, 데클라 사도 바오로가 지금의 터키의 코냐(Konya) 지방인 이코니움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 고장에 도착한 바오로 사도는 용감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시고 세례를 받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지방처럼 여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오로 설교를 호감을 갖고 받아들였다. 그들 중의 한 여인이 특별히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인격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녀의 이름은 데클라였고 젊고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는 약혼한 몸이었다. 데클라는 3일 동안 밤낮을 창문에 앉아 바오로의 설교를 들었다. "얘야, 정신 차려라. 무얼 좀 먹으려무나." 그래도 그녀는 전혀 먹을 것에 손대지 않고 기도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다시 동네에서 사도 바오로의 설교가 시작되면 창가로 나가 열심히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약혼자가 아무리 만류해도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데클라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데클라는 사도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했다. 그녀의 약혼자는 사도 바오로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생각해 질투와 격정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데클라가 저렇게 된 것은 다 저 바오로란 놈 때문이야.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나타나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는 거야. 그놈한테 미쳐서 내 약혼자가 실성을 해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야. 내 이놈을 그냥…." 데클라의 약혼자는 바오로 사도를 총독에게로 끌고 가 고발했다. "이놈은 마을을 현혹하고 처녀들을 유혹하였습니다. 이놈을 처벌해주십시오."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사도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데클라는 한밤중에 몰래 감옥으로 사도 바오로를 찾아가 설교를 들었다. 데클라의 집에서는 그녀가 한밤중에 없어진 것을 알고 소동이 일어났다. 데클라가 사도 바오로에게 찾아간 것을 알게 되어 데클라는 약혼자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사도 바오로와 데클라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바오로를 마을 밖으로 추방하고, 데클라는 화형에 처하라!" 그러나 데클라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곧바로 화형식이 있었다. 화형대에 불꽃이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땅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짙은 구름이 몰려와 폭우를 내렸다. 갑자기 내린 비와 바람 때문에 화형대는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까지도 물에 잠겼다. 화형대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불꽃은 꺼지고 그녀는 살아날 수 있었다. 데클라는 그 길로 마을 밖으로 추방된 사도 바오로 찾아가 머리털을 자르고 그의 선교 여행에 동반하기를 청하였다. 테클라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사도 바오로의 여정에 함께 하고 싶었다. "선생님, 저를 선생님의 선교 여행에 데려가 주십시오." "안됩니다. 내가 가는 선교의 여정은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한 여행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데클라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자신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듣고 그와 헤어진 후 그 마을에 더 머물면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데클라 성녀는 초대 교회 때부터 동정 순교자로서 보기 드문 명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갖가지 신화를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열성은 훗날 그녀를 순교자로 만들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불과 맹수들 손에 죽을 고비를 수 차례나 넘긴 데클라는 터키의 셀루시(Seloucie) 근처에 있는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찾아오는 환자를 돌보았다고 한다.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는 지금도 사도 바오로와 함께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설로만 내려오던 데클라의 동굴이 발견되기도 했다. 성녀 데클라의 이야기는 신약성서에는 없지만 170년경에 쓰여진 '바오로와 데클라의 행전'이라는 위경에 쓰여 있다. 이 행전은 바오로 사도와 고린토인들 사이의 서간문과 바오로 사도의 순교사와 함께 하나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3세기 그리스도교 정신의 진수를 담고 있는 문학적 작품이다. [평화신문, 2002년 6월 3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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