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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학] 신약성서에서 언급되는 금속: 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4,903 추천수0

신약성서에서 언급되는 금속 : 은

 

 

은은 솔로몬의 통치 동안(기원전 약 950년) 팔레스타인에서 풍부하였다. 이때에 은은 아라비아와 다르시스(Tarshish)부터 들어 왔다. 다르시스는 스페인 또는 지중해 연안에 있었을 것이다. 은은 아마도 가열되거나 납을 가하여 회취법에 의하여 정제되었다.

 

은은 신약성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을 훈계하였고 잃었던 은전(銀錢)의 비유(比喩)로 언급하였다(루가 15,8-10). 유다는 탐욕스런 본성을 노출하여(요한 12,6) 은 삼십 세겔로 배신하였다((마태 26,15; 27,3-5). 은 삼십 세겔은 노예 값에 해당한다(출애 21,32).

 

은의 주요한 용도는 화폐였다(루가 15,8; 요한 2,15). "어떤 여자에게 은전(드라크마) 열 닢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닢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고 집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 까지 샅샅이 다 뒤져 볼 것이다."(루가 15,8)

 

은전(drachma)은 그리스의 화폐 단위로 중량은 약 3.8g이다. 팔레스타인이 그리스의 통치하에(기원전 331년)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리스의 금화, 은화, 동화가 통용되었다. 은화로는 1드라크마, 4드라크마가 사용되었다. 한 드라크마는 오늘날의 일반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반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결혼 지참금 형식(Jeremias)으로 드라크마 열 닢을 줄에 꿰어 주는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곤 하였다. 이 열 드라크마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장신구의 역할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여인은 부지런히 그것을 찾았을 것이다. 유다인들의 가옥 구조는 대개 창문이 없거나 있어도 환기만을 위한 조그만 창문이 하나 정도 있을 뿐이어서 그 안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마태 20,2). 데나리온(denarius)은 신약성서 시대에 사용되었던 로마제국 화폐 주조소에서 발행한 은화이며 중량 3.88g이었다. 은화의 표면에 로마 황제(또는 황제 가족의 일부)의 초상과 이름이 주조되었다(마태 22,20; 마르 12,16; 루가 20,24). 데나리온 은화는 그리스(헬라)의 은화 드라크마와 거의 동액이었으나 사용 면에서는 이를 압도했다(마태 20,2; 22,19; 마르 6,37). 그 당시 한 데나리온은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이었다.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마태 22,19). 이 세금은 로마 황제가 발행하는 은화로 바쳐야 했다. 고대사회에서 화폐는 왕권의 상징으로 어떤 왕이 왕위에 오르면 즉시 자기 자신의 화폐를 발행했다. Denarius of Caesar August는 기원전 43년에서 기원후 14년까지 발행되었다. 한 면에는 지극히 높은 사제의 복장을 갖춘 Julius Caesar의 화상과 이름, CAESAR, DICT(ator) PERPET(uus), ("Caesar permanent dictator")이 쓰여 있고, 다른 면에는 Venus의 상이 새겨져 있다. 이 은화에는 로마 제국에서 최초로 생존자의 초상이 들어 있었다. 이 데나리온 은화가 당시 가장 널리 유통되던 화폐였고, 거기에는 재임 중인 황제의 이름과 칭호가 찍혀 있어서 황제의 재산임을 나타냈다. 세금은 매년 일인당 한 데나리온을 내야 했다.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마태 22,19-20). 이 데나리온은 August의 양자였던 Tiberius(14-37년) 황제의 초상과 이름이 주조된 은화였다. 이 은화의 한 면에는 황제의 월계관을 쓰고 있는 황제 티베리우스의 두상(頭像)과 TI(berius) CAESAR DIVI AUG(usti)AUG(ustus) ("Tiberrius Augustus the son of Augustus")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다른 면에는 Pontifex Maximus(지극히 높은 司祭)라는 라틴어 글과 평화를 나타내는 홀과 감람나무 가지를 각각 왼손과 오른손에 쥐고서 앉아 있는 황제의 어머니, Livia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 이런 이방인의 우상 숭배적인 화폐가 유다인들에게 얼마나 큰 혐오감을 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 22,21). 카이사르는 최초의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기원전 100-44년)의 성(姓)이었으나, 나중에는 '황제'의 공식 직함 명칭이 되었다. 예수의 질문은 너무 당연하게 보여서 바리사이인들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그런즉 예수는 바리사이인의 입에서 나온 같은 말로 대답한다. 데나리온의 화상과 글이 카이사르의 것이면, 그 주화는 카이사르의 것이다. 그들 모두가 가지고 다니던 데나리온 주화는 로마 황제의 주화였고,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있음을 분명히 증거 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그들의 입으로 그 주화가 황제의 소유임을 말하게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하느님의 뜻으로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다면 로마에 세금을 바칠 뿐만 아니라, 그 법을 준수하고 합당한 요구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임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이 요구하는 십일조와 성전세(聖殿稅)와 봉헌물들일 것이다.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요한 2,15). 돈을 바꾸는 것은, 이방에 살던 유다인들이 가지고 온 로마 돈을 성전에 바치기 위하여 유대의 세겔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출애 30,13). 왜냐하면 성전세로 바치는 돈은 황제의 화상이 새겨져 있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낚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그 속에 한 스타테르짜리 은전이 들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꺼내서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 내어라"(마태 17,27). 한글 공동번역에서는 스타테르로 번역이 되었으나 한글개역 성경, RSV, ASV에서는 shekel로 표기하였다. 세겔은 금속의 무게를 다는 표준적 단위의 하나였으며(창세 24,22; 출애 30,23), 시대에 따라 그 수치가 달랐다. 매매는 은을 세겔 단위로 달아 이루어졌다(창세 23,16). 무게의 단위로는 성소에서 사용되는 '세겔'과 왕궁에서 사용되는 '세겔' 및 일반인의 '세겔'이 있었던 것 같다(2사무 14,26). 왕궁에서 사용되는 것은 성소에서 사용되는 세겔보다 무게가 덜 나갔고, 일반인의 세겔은 왕궁의 세겔보다 덜 나갔다고 한다. 성소에서 사용되는 세겔은 20게라(gerah)(출애 30,14; 에제 45,12)였다. 금 세겔(1역대 21,25), 은 세겔 (1사무 9,8), 청동 세겔(1사무 17,5), 철 세겔 (2사무 17,7)이 있었다. 이것이 주화(鑄貨)로 주조되었을 때, 후에 유대의 도량형계에 따라 금 6세겔은 은 50세겔의 가치에 상당하였다.

 

"그들이 가파르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바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7,24 ). 여기서 성전세는 '반 세겔(half-shekel)'이란 그리스어로 'didrachmas'로서 '두 드라크마'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 드라크마는 그리스인 하루 품삯을 나타내는 은화의 명칭이다. 유다인에게도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으로 1/4세겔로 취급되었다. 한편 이 '반 세겔'은 유다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다음 시나이 산(Sinai mountain)에서 인구 조사를 한 직후에 만 20세 이상의 모든 유다인 남자들이 내었던 생명의 속전(贖錢), 즉 이집트에서 건져주신 생명의 대가로 야훼 하느님께 바쳤던 양과 같은 것이다(출애 30,11-16). 이 돈은 성막 건물을 제작하는 비용으로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구 조사가 있었을 때에 특별한 목적으로 거두어 드려지는 것이어서, 정기적인 성전세의 개념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로 있을 때는 막대한 왕의 수입 중에서 일부가 성전 재정을 위해 보조되었으나,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상황에서는 재정난으로 성전의 효과적 운영이 심히 어려웠다. 페르시아의 왕들이 종교적 유화책의 일부로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위해 공적 기금이 사용되도록 허락되었지만(즈가 6,8-10), 그러한 기금은 언제 중단될지 몰랐고, 더욱이 성전 운영이 이방의 재원(財源)에 의존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따라서 비록 백성들의 생활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성전세를 1/3 세겔씩 납부하기로 자원하여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성전행사를 위하여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씩 바칠 것"(느헤 10,33). 아마 후대에 가서는 1/3 세겔은 반 세겔로 인상되었던 것 같다(마태 17,24).

 

예수 당시에도 매년 유월절 전인 봄에(아달월(月) 15일) 모세 당시의 환율에 의해서 계산하여 부과했다. 따라서 당시에 성전세는 '성소에서 통용되는 반 세겔'(sanctuary  half-shekel)을 바꾸려는 환전상(換錢商)으로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이 환전상들은 그 수수료로 인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여하튼 이 반 세겔은 로마에 바치는 공공의 세금이라기보다 당시 주로 성소의 유지비용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여기에서 '반 세겔 받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국세를 거두는 세리(稅吏)(마태 9,10)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성전을 위해 거두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은은 또한 우상(묵시 9,20)을 만든 데 사용되었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가 은으로 여신 아르데미스의 신당 모형들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큰 돈벌이를 시켜 주고 있었는데"(사도 19,24). 아르데미스(Artemis) 여신은 서아시아 지역에서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이었다. 아마도 이 신상은 원래 아마도 운석(隕石)이었는데 그 모습이 풍만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르데미스 여신은 에페소(Ephesus)의 수호신으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디아나(Diana)와 동일시되었다. 가장 유명한 신전은 에페소에 있었던 것으로, 그 장대함은 에페소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사도 19,27. 35),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였다. 바울(Paul)이 전도할 당시 에페소에는 이 신전 모형과 여신상을 만들어 참배객들에게 파는 것을 업으로 삼던 은장이들이 많았다(사도 19,24-25). '은 신전'은 그 신전의 작은 모형으로서 부적(符籍)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바오로의 선교로 말미암아 신상과 모형의 제작 판매가 어려워지자, 데메드리오가 주동이 되어 동업자를 선동하여 바오로의 복음전도를 방해하였다(사도 19,27-41). 이 아르데미스 신전은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침입해 온 고트인에 의해서 약탈퇴고 파괴되었다.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 T. Watt가 에페소에 관한 기록들을 읽고 발굴을 시작하여, 11년의 고생을 하다가 지하 7미터에서 큰 신전을 발굴해 냈다. 그러나 아직도 은으로 제작된 신전의 모형들은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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