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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할례는 하느님 나라의 주민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5,013 추천수1

[성서의 풍습] 할례는 하느님 나라의 주민증?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유다교의 영향으로 개종의 전제 조건으로 할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신들이 세례를 받으려면 할례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유다인도 아닌데 왜 할례를 받아야 해…."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복음 전파에서 유다인의 율법이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은 유다교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을 결의했다.(사도 15장 참조) 그래서 교회는 사도회의의 결정 이후 이방인들에게 할례 없이 자유롭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

 

할례는 오늘날의 포경수술과 같은 것으로, 매우 오래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풍속이었다. 할례는 보통 성인식의 통과의식으로 시행되었다. 할례를 베푸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할례는 신들에게 바치는 피의 제물이라는 것, 고통을 견디는 수단, 결혼의 준비, 위생상의 이유, 혹은 생명을 준 신에게 남성을 보상하기 위해 바치는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할례가 본래는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의식이며, 결과적으로 종족의 공동생활에 들어오는 의식이었다. 이런 의미는 오늘날에도 할례를 행하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종족들에게 그대로 나타난다. 이 관습이 이스라엘에서도 처음에는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결혼생활을 위한 통과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할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종족이 가나안땅에 들어온 다음부터 시작한 풍속으로 보인다.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 표시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생후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할 것을 명령하고, 이것을 어기는 자는 계약을 깨는 사람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희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와 나의 계약의 징표이다."(창세기 17장 참조)  할례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하느님이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징표, 상징이었다. 이제 할례는 일종의 하느님의 자녀라는 증명서, 즉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이처럼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할례를 자랑했고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다.

 

할례를 집행할 때는 칼과 같이 날카로운 돌칼을 이용했다. 할례의 집행자는 아버지였으며(창세 21,4),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어머니가 아들의 할례를 행하였다.

 

출생 직후에 할례를 행하게 되면서 결혼 시작의 예식이라는 의미는 퇴색되었다. 할례의 의식은 이제 종족의 생활, 곧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서 같은 집단의 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표시하게 되었다(창세 34,14 이하; 출애 12,47 이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의 종교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 속에서 오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모세 오경의 율법들은 할례에 관하여 부수적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바빌론 유배 기간에 와서야 비로소 할례가 이방인들과 구별되고, 이스라엘과 야훼에게 소속된 자의 특징이 되었다.

 

할례는 신약의 세례성사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마음의 율법을 강조하셨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보다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요, 또한 하느님께서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징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삶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2년 11월 1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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