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두번째 순례축제, 오순절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사도2,1-4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며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다. 때마침 오순절날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제자들 위에 내렸다. 구약의 예언과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성령강림은 오순절 축제날 이루어졌으며 이날이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오순절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사도 2장 참조).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과월절의 시작과 성령강림은 오순절과 일치했다. 따라서 과월절과 오순절은 그리스도교의 전례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고대 농업사회에는 추수한 첫 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유다인들도 그들이 거주했던 가나안의 관습의 영향으로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처음에는 추수감사절 날짜가 농작물 추수시기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과월절 첫날에서 일곱 주간이 지나고 추수절을 지냈다(신명16,9-13).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가나안 사람들처럼 보리수확을 시작하는 날이 아니라 밀수확이 끝나는 날짜로 바꾸었다. 그래서 보리 대신 새 밀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빵 두개를 봉헌하였다(레위 23,15-21). 맥추절의 본래 의미인 맏물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그대로 지킨 셈이다. 곡식의 첫 열매는 뒤에 거둘 수확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처럼 처음에 오순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이었고 첫 보릿단을 추수할 때 지냈던 가나안 농경민들의 맥추절(또는 추수절)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출애 23,16). 그런데 후대에 과월절을 기념하는 의미가 '누룩없는 빵의 축제'와 결합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첫 곡식을 바치는 축제를 과월절 때 보릿단을 바치고 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내게 되었다. 따라서 오순절은 그리스어로 '펜테코스테' 혹은 '50일째 날'이라 불리게 되었다(2마카 12,31-32 참조). 이처럼 오순절의 성격은 추수를 감사드리는 것이므로 누룩 없는 빵을 바치는 과월절과는 달리 일상의 식용으로 쓰는 누룩 있는 빵을 봉헌하며 추수의 감사를 의미했다. 오순절은 처음에는 가나안 농경민들의 축제였지만 맥추절이 후기 유다교 사상 안에서 노아와의 계약과 시나이산 계약,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사실과 연결되면서 종교 축제로 바뀌었던 것이다. 농업에서 유래한 의식이 이스라엘 구원의 의미 속에서 다시 해석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의식 속에서 거행된 오순절 축제는 시나이에서 받은 모세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는 축제가 되었다. 오순절 예절(레위 23,15-22)은 새로 구운 빵을 흔들어 바치고 성전에서 번제제물, 속죄제물, 감사제물을 봉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행렬하면서 성가를 부르고 시편을 노래했다. 끝으로 사제의 축복을 통해 야훼 하느님의 강복을 받았다. 흔드는 제물로 가져온 곡식단은 곡식에 처음 낫을 댄 것으로 보관됐다(신명 16,9). 이 곡식단의 일부는 제단에 놓여졌고 그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다. 숫양은 번제물로 바쳐졌으며 곡식단을 제물로 드리는 의식은 무교절 축제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오순절 축제 때는 일상 노동을 금지했고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성전에 나왔다(신명16,16). 이 축제는 가난한 자, 나그네, 레위인들이 초청돼 공동식사를 함으로써 끝맺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두번째로 중요한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러다 70년 성전 파괴 이후 성전에 모일 수 없게 된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지내면서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사실만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상적 축제를 지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들의 야훼 하느님 신앙과 연관시켰다.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처럼 일상의 삶을 하느님과 연관시켜 그 내용을 성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다인들의 축제는 신앙이란 어떤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다. [평화신문, 2003년 2월 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