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 '교육을 잘 시키는 민족' 하면 누구나 이스라엘 민족을 떠올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역사상 최악의 조건, 수천년의 박해와 유랑생활에도 불구하고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지탱해온 배경에는 철저한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 열정을 보고 모슬렘 교도들은 유다인들에게 '책의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종교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중요하게 여겨 교육을 통해 전수해 주었는데,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교육은 비공식 과정을 거쳐 행해졌다. 물론 대부분의 교육은 집안에서 부모가 담당했다. 어린이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은 바로 부모 책임이었다. 부모가 바빠서 자녀교육을 게을리했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자녀들이 나이가 들어 결혼한 이후에도 부모의 교육 책임은 계속됐다 공식 학교나 교육과정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 부모들의 관심 초점은 자기 자녀들에게 살아 계신 하느님을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말은 '어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깊이 아는 것이 슬기다"라고 가르쳤다(잠언 9,10). 경건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지식을 계발해 나가도록 힘껏 도와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신앙고백문을 외웠고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첫열매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그 신앙고백문을 암송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쳤던 신앙고백문은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외우기 쉽게 단순하게 줄여놓은 것이었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감히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습을 본 따 새긴 우상을 모시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사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신명 26, 6-10).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자기 민족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배웠다. 이 계약에는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무와 책임이 들어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정해주신 지침들이 잘 나와 있는 것이 바로 율법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 중에서도 율법 교육은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다. 율법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본래 가르침이란 뜻으로 '길'을 의미한다. 즉 율법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율법의 뼈대를 이루었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하고 발달하면서 유다교의 율법도 613개 조항으로 세분화되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의 핵심과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 37-40 참조). 이스라엘 가정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지적 능력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더 중요시했다. 이스라엘의 소년들은 율법뿐 아니라 예절, 음악, 경제, 전쟁 등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들도 열심히 배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기에게 닥칠 어려움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면 교육을 통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확신과 능력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은 신앙을 중심으로 실제생활에 지침이 될 수 있는 지식과 지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신앙은 삶과 유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훌륭한 부모는 동시에 훌륭한 교사이어야 한다. 부모 노릇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가정의 부모는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준다고 본다. [평화신문, 2003년 3월 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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