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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레바논의 삼목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056 추천수0

[성서의 풍속] 레바논의 삼목

 

 

"신부님! 구약성서에 보면 '레바논의 우람한 삼목을 베어 제쳤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미사가 끝나고 마당에 서 있는데 한 신자가 느닷없이 질문을 했다.

 

"레바논의 삼목이요? 금방 생각이 안 나는데 찾아보고 다음에 알려 드릴게요…."

 

무척 당황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레바논 삼목(杉木)은 레바논 국기에도 그려질 정도로 레바논을 대표하는 나무다. 레바논 삼목은 고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오로지 레바논 지역에서만 산출된다. 레바논 국가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레바논인이여,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나이든 이도 젊은이도 모두 일어서자. 바다와 산이 있는 오리엔탈의 보석 레바논. 레바논 삼목으로 상징되는 레바논이여, 영원하라."

 

레바논은 아랍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막도 석유도 없이 녹지가 많은 국토를 가진 나라다. 기후도 온난하여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이다. 또한 고대로부터 교역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며,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시대 등의 유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지중해 연안 평야에서 레바논 산맥에 걸쳐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기온이 높고 비가 적으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레바논은 지중해 동쪽 연안에 위치하며,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강수량이 많은 레바논 산맥의 해안쪽 사면은 송백류(松柏類)와 레바논 삼목(杉木) 등의 삼림으로 뒤덮여 있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강수량은 적어지고 기후는 건조하여 여름에는 상당한 고온을 이루나 겨울 추위는 혹독하여 고산지대에서는 오랫동안 적설을 볼 수 있고, 만년설도 보인다. 레바논은 '희다'는 뜻인데, 레바논 산맥의 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처음에는 파피루스 풀로 갈대 배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레바논 삼목(衫木)으로 큰 배도 만들어 바위산에 있는 돌을 이 배로 운반하여 많은 건물을 지었다. 나일강이 남북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하여 크고 작은 배가 강을 오르내리면서 많은 물건을 수송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가리켜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나일강의 가치는 대단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와 신전을 쌓고,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만들고, 훌륭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의 깊은 산골에서 시작하여 리비아 사막을 수천 킬로미터나 흘러내려 지중해에 이르는 나일강 덕택이었다. 그리고 나일강의 위대한 문명에 레바논 삼목(衫木)으로 만든 큰 배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레바논 삼목은 구약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팔레스티나 북서부 지중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레바논 산맥은 비가 많이 와서 송백류의 삼림으로 덮여 있었다. 특히 이 지역에 넓게 퍼져 있는 레바논 삼목은 키가 크고 향기가 짙고 벌레도 타지 않아서 예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레바논 삼목은 건물을 짓는 데 빼어난 재목으로 왕궁이나 성전, 지성소나 성궤를 만드는 데 쓰였다. 레바논 삼목은 어릴 때는 피라미드형의 형태이지만 늙으면서 가지가 굵어져서 윗부분의 끝이 수평으로 되므로 우산같은 형태로 변한다. 그리고 나무 진액에는 향기가 있고 방부 및 방충제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로마 귀족들은 이것을 시신 방부제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구약성서에서 레바논 삼목은 위엄과 장대함의 상징으로 하느님 영광을 상징하는 데 쓰였다. 그래서 레바논 삼목을 구원의 상징으로도 자주 표현했다.

 

"너는 특사를 보내어 주를 조소하며 말하였다. 내가 나의 병거를 타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노라고. 또 높은 산을 정복하였으며, 레바논의 막다른 봉우리까지 올랐노라고. 레바논의 우람한 삼목과 가장 훌륭한 잣나무를 내가 베어 제쳤노라고. 레바논의 평온한 안식처, 그 숲과 초원을 내가 다 밟았노라고. 내가 또 외국 땅에서 우물을 파 그 물을 마셔 보았으며, 나의 발바닥으로 에집트에 있는 모든 강의 물을 말렸노라고"(2열왕 19,23).

 

그런데 이처럼 어떤 나무도 모두 부러워하는 레바논 삼목이지만 그 키가 구름 위로까지 뻗어오르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져 마침내 흉포한 이방인들에게 잘려 쓰러지는 신세가 된다고 보았다. 에제키엘 예언자도 에집트 왕의 몰락을 비유로 예언할 때 레바논 삼목이 쓰러지는 것이라 표현했다. 레바논 삼목을 통해 아무리 크고 아름답고 훌륭한 인물이나 국가라도 겸손의 덕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간다는 비유를 보여준다.

 

[평화신문, 2003년 5월 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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