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이방인의 땅 사마리아 - ’사마리아 전경'.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란 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거나 본 경우, 자신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때 타인의 위험을 제거해 줄 의무가 있다는 법이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우리나라 법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미국 각 주와 프랑스, 러시아, 폴란드, 일본 등이 유사한 법률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형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 혹은 360프랑 이상 1만5000프랑 이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63조 2항). 이렇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 단순히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도와주지 않을 경우 공권력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이다. 현재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세계 각국이 점점 채택해나가고 있는 경향이라 한다. 물론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루가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루가 10 25-37참조) 연유된 이름이다. 성서에 보면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접촉은 물론 대화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남쪽 유다에서 북쪽 갈릴래아로 갈 때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두배나 되는 먼길을 돌아다녔다. 예수님은 더위에 지친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우물가를 찾으셨다(요한 4장 참조). 그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님이 먼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넸다. 이방인과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당시의 관습으로는 파격이었다. 그래서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왜 그토록 서로 적대적으로 상대했을까? 성서에서 이방인 지역이라 지칭하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도 본래는 유다 땅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지금의 이스라엘 전체를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 넓이의 땅이다.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 지방이 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잡고 있다. 본래는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솔로몬왕 시대 이후 사마리아는 북 왕국, 즉 이스라엘 왕국,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그때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고 가장 번영한 것은 기원전 8세기께였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점령당한다(B.C 722년께). 이때 이스라엘 12지파 중 10개 지파가 사라지게 된다. 앗시리아 군대에게 점령당한 뒤 사마리아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족이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 또한 앗시리아는 식민지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즉, 피를 섞이게 해서 민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무서운 정책이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종족간 피가 섞이게 된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게 되었고 원수지간처럼 지내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심지어 ’개 같은 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B.C 587년 남쪽 유다 왕국도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나중에 바빌로니아에서 본토로 귀환한 유다인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던 무렵부터 사마리아인과의 반목과 대립이 더 심해졌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참된 율법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즈루빠벨 성전 재건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과 계속 적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마리아인의 자손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소수이긴 하지만 유다인의 전통을 지켜온 고대 이스라엘인의 정통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오직 구약성서의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한다. 사마리아 오경에서는 절대적 유일신론을 더욱 강조하였고,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조상들의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인간적 약점들이 언급된 구절들을 의도적으로 고쳤다. [평화신문, 2003년 7월 2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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