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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산은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260 추천수1

[성서의 풍속] 산은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

 

 

- '에덴동상', 1827년, 유화, 토마스 콜(1815~1865), 보스톤 미술관, 미국.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예전에 사람들과 산행을 하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약 두 시간 가량 악천후의 산속을 헤맸는데 공포와 무서움의 시간이었다. 드디어 길을 찾아 감격을 맛보았던 것은 참으로 귀중한 체험이었다. 왜 산이 일상적 삶에서 벗어난 곳,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의미하는지를 잠시나마 깨달았다. 

 

산은 언제나 올려다보아야 한다. 따라서 산은 사람들에게 평지의 보통 생활공간과 전혀 다른 세계로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산은 성스러운 공간이다. 또 한편으로 산은 낯설고 위험도 따르기에 무서움과 불가사의의 세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산을 신에게 속하는 세계로 보았다. 산이 종교와 결부되는 현상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또 산을 무서운 공간으로 생각해서 중세 유럽에서는 산을 요정이나 마녀가 사는 거처로 생각하기도 했다. 산이 죽은 자가 가는 세계라는 인식은 한국 등 아시아 각지에도 널리 퍼져 있다. 

 

유럽에서는 영웅은 죽는 것이 아니고 산에 일시적으로 숨었다가 자기 민족이 위급할 때 다시 살아나 자기 민족을 구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은 산을 신의 세계로 보는 신앙과 죽은 자의 세계로 보는 생각이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산은 숭배 대상이었다. 그래서 산신이 마을의 평화와 안녕과 농사도 주관한다고 믿었다. 

 

성서를 읽다 보면 산이 많이 등장한다. 성서에서 산은 인간이 하느님과 만나서 대화하고 기도하는 장소였다. 구약성서에서 산은 여러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의심 없이'산들의 하느님','계곡의 하느님'(1열왕 20,27 ; 28)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산이 아무리 경탄할 대상이라도 단순한 피조물이므로 신격화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편은 "산들이 생기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 30,2 참조)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산은 박해받는 의인이 찾는 장소였다(시편11,1 ; 마태 24,16 참조). 

 

그러나 산에서 인간을 도와주는 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예레 3,23 참조).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힘의 상징에 불과한 피조물인 산을 신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구약성서에서 산은 무엇보다 계시의 장소였다. 특히 시나이에 있는 호렙산은 모세가 소명을 받은 거룩한 땅이며(출애 3,15), 하느님께서 율법을 선포하신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산은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였다(출애 24,12-18참조). 그래서 예언자들은 산꼭대기에서 쉬며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산은 예배 장소로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었다. 하느님께 제사를 거행한 곳은 항상 지면보다 약간 높은 장소였다(출애 24,4-5 참조). 이처럼 산은 신앙인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신 수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올라가야 하는 상징으로 표현된다(시편 43,3 참조). 

 

신약성서에도 예수님의 중요한 생애마다 여러 산들이 등장한다. 모든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산에 가기를 좋아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산은 복잡한 세상을 피하기 위한 휴식처였다(요한 6,15).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천명되신 장소는 갈릴래아의 산들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산에서 백성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가르치셨다(마태 5,1). 그리고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며, 사람들에게 기적의 빵을 나누시고(마태 15,23 이하) 천상의 모습으로 거룩히 변모하신 곳도 산이었다(마태 17,1-2참조). 

 

구약의 예언들도 모두 '거룩한 산'에서 이루어졌다(2베드 1,16-18 참조). 그런데 성서에서 가르치는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외적인 장소로서 중요할뿐 아니라 그분과 인격적 만남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성서에서 산은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거룩한 장소가 된다.

 

[평화신문, 2004년 5월 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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