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이스라엘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 성모자상, 15세기말, 목각, 루브르미술관, 프랑스 파리.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처럼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험은 없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 경험은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한편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유다인 여성들은 보통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녀,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유다인 여성에게 아들 출산은 사회적,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임신한다고 해서 유다인 여성에게 행복과 기쁨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겪는 진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성서시대 여인들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을 산모의 고통에 비유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녀들에게 "네 어머니를 공경하고 평생 존경하며 마음을 슬프게 하지마라. 네가 태중에 있었을 때 네 어머니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까 생각하라"(토비 4,3-4 참조)고 훈계했다. 특히 유다인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유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임산부들은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해지면 바로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다. 이스라엘 여성들에게 유산을 피하기 위한 민간 요법들이 많았다. 아기를 잉태한 임산부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없었고 음식을 까다롭게 가려 먹었다. 특히 녹색 채소나 짠 음식 그리고 기름진 음식 등은 임산부들이 금기시한 식품이었다. 중세시대 유다인들은 임신한 여성이 공동 묘지를 찾아가는 일을 금지시켰다. 공동묘지에는 나쁜 영혼이나 악마가 있기 때문에 임산부와 태아가 함께 위험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통 유다인 여성들은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기를 출산했다(창세 35,17 참조). 산모들이 두 개의 돌 위에 올라서서 몸을 웅크리면 산파가 그 사이에서 나오는 아기를 받았다. 보통 해산이 진행되는 동안 산파는 산모 앞에, 그리고 산모 뒤에는 친정 어머니나 자매가 손을 잡아주어 산모의 출산을 도왔다. 아기 아버지는 출산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면서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유다인들은 아이를 낳으면 먼저 탯줄을 잘라서 묶고 목욕을 시키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포대기에 싸주는 것이 관례였다(에제 16,4 참조). 탯줄을 잘라 묶는 것은 아기가 가족의 새로운 정식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딸을 원치 않아서 갓 태어난 여자 아기를 들에 내다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아기를 물로 목욕시키는 것은 위생적인 이유와 함께 악한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행하는 의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으로 피부를 문지르는 일이었다. 유다인들은 소금으로 아기의 피부를 문지르면 아기가 튼튼하고 총명해지며 온순한 성품을 갖게 되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마리아나 시리아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소금을 물에 풀어서 아이를 닦아준다. 그리고 포대기로 아기를 싸는 의식이 있다. 유다인 부모들은 포대기로 아기의 온몸을 단단히 감싸주어야 신체가 튼튼해지고 바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를 천을 이용해서 마치 미이라처럼 온몸을 단단하게 감싸주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 아기를 낳은 산모는 부정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출산한 여인은 일정 기간 유다인들의 공적 의식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정해진 기간이 지난 뒤에야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첫 아들일 때는 당연히 하느님 소유로 간주되었다(민수 18,7 참조). 이처럼 유다인들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도 철저하게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평화신문, 2004년 6월 2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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