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유다인들의 손님 접대 풍습 - 세 천사를 접대하는 아브라함, 1954~66년, 마르크 샤갈(1887~1985), 유화, 국립성서미술관, 니스, 프랑스.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아버지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특히 식사 때를 맞춰 찾아온 손님들은 한결같이 "저는 이미 식사를 했습니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은 여러 차례 식사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그러면 손님들은 대개 "먹었는데…"하면서 못 이기는 체 결국 수저를 들고 함께 식사를 하셨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 손님은 밥을 안먹은 게 분명한데 말은 왜 반대로 할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 형식주의 때문인지 명분과 체면을 중히 여긴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체면에 관해서는 중국인도 만만치 않다. 중국인들에게는 특히 상대방 체면을 다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문화적 잠재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부탁을 해도 앞에서는 잘 거절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중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에게 선물을 주거나 식사 초대를 하면 처음에는 반드시 거절한다. 한번에 응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두서너번 권해야 하는 것이 관례이다. 태국인에게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는 음식을 조금 남겨야 한다. 접시를 다 비우면 초대자가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인원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미덕이다. 중국에서 식사 초대를 받아 음식을 먹을 때에는 굳이 음식을 다 비울 필요는 없다. 중국인은 손님이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자신이 음식을 충분히 준비한 것으로 간주해서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국의 식사 초대 문화는 각양각색이다. 유다인들의 손님 접대 풍습은 특별하다. 손님을 위해서라면 한밤중이라도 이웃집에 빵을 빌리러 가는 게 당시 풍습이었다(루가 11,1-8 참조). 한밤중이라도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마땅한 의무였다. 유다인들에게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 평화롭게 지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평화를 약속하는 의식이 있고 난 뒤에는 항상 식사가 이어졌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잘못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만들어 초대한 것은 화해를 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요한 21,12-13 참조). 유다인들은 손님들과 회식을 할 때면 두번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 예의였다. 잔치가 있기 얼마 전에 집주인은 종을 보내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냈다. 하지만 처음 초대를 받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예의를 갖추느라 거절했다. 종들은 다시 그런 사람들에게 참석을 강력히 권했다(루가 7,36 ; 사도 16,15). 주인은 당일 또 다시 종들을 보내 잔치 준비가 모두 끝났음을 알린다. 손님들이 회식 장소에 도착하면 종들은 손님의 신을 벗기고 물을 가져다가 발을 닦아주었다(요한 13,3-5 참조). 또 손님 머리에 올리브기름과 여러 향을 섞어 만든 기름을 발라주고 마실 물을 가져왔다. 이 물 한 잔 역시 유다인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마실 물을 대접하는 것은 우정을 알리고 평화롭게 맞이하겠다는 뜻이었다. 유다인들 회식 풍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좌석 배치였다. 먼저 주인의 동생, 아들이나 종은 손님을 회식 방으로 안내했다. 자리 배치는 손님 신분에 따라서 앉게 했다. 그리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우정과 평화를 나누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미사 성제를 설정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주님 식탁에 함께 앉는 성만찬이야말로 하느님과 이웃과 나누는 평화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04년 7월 2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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