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십계명 십계명은 열 개의 말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많은 사람의 삶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계명이다. 이천수백 년 전부터 시작하여 앞으로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존속하는 한 십계명은 계속해서 그 중요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십계명은 구약성서가 쓰인 히브리 말로는 그냥 ‘열 말씀’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리스 말을 거쳐 라틴 말에서는 ‘데칼로구스(decalogus)’로 옮겨지는데, 이 명칭이 서양에서는 기원후 2세기의 교부 이레네오 성인 때부터 십계명을 일컫는 데에 사용되기 시작한다(영어에서는 그리스 말과 라틴 말에서 내려오는 Decalogue나 ‘십계명’과 같은 뜻을 지닌 Ten Commandments를 사용한다.). 두 곳에 나오는 십계명 십계명은 성서의 두 군데에 약간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곧 출애굽기 20,2-17과 신명기 5,6-21이다. 게다가 이 두 단락이나 그 앞뒤로 ‘이것이 십계명이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지도 않다. 사실 ‘열 말씀’이라는 히브리 말 명칭은 이 두 단락과 직접 연관이 없는 탈출기 34,28; 신명기 4,13; 10,4에 나온다.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열 말씀’이 십계명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 두 단락 사이의 관계이다. 출애굽기 20,2-17과 신명기 5,6-21이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세부 사항에서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안식일 준수 계명이 출애굽기(20,8)에는 ‘안식일을 기억하다’로 되어있는데, 신명기(5,12)에는 ‘안식일을 지키다’로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한 대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 두 군데에서 다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과 짐승이 열거되는데, 신명기(5,14)에는 “너의 소와 나귀”가 더 들어있다. - 출애굽기(20,11)에서는 하느님의 창조와 휴식이, 신명기(5,15)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겪어야 했던 종살이가 안식일 준수의 근거로 제시된다. - 신명기(5,16)에는 부모 공경의 계명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하는 대로”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고, 계명 준수에 따른 약속에도 ‘잘되다’라는 말이 더 들어있다. - 출애굽기(20,16)에서는 “거짓 증언”이, 신명기(5,20)에서는 “허위 증언”이 금지된다. - 탐욕 금지 조항은 양쪽이 다 두 문장으로 되어있다(출애 20,17; 신명 5,21). 출애굽기에서는 두 문장에서 ‘탐내다’라는 한 동사가 쓰이는데, 신명기에서는 ‘탐내다’와 함께 ‘욕심 내다’가 쓰인다. 또 출애굽기에서는 탐내지 말아야 하는 첫 대상이 이웃의 집이고, 그 다음이 아내를 비롯한 이웃의 재산이다. 신명기에서는 첫 대상이 이웃의 아내이다. 집은 둘째 문장에서 다른 재산들과 함께 열거된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한 칠십인역의 출애굽기 20,17에서는, ‘탐내다’ 한 동사를 쓰면서도 신명기처럼 이웃의 아내가 먼저 나온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십계명은 둘 다 지금은 없어진 ‘원본’에서 유래한다. “거짓 증언”의 금령 등에서 볼 수 있듯이(출애 20,16과 신명 5,20), 현재의 십계명에서는 출애굽기의 본문이 우선시된다. 그렇다고 신명기의 본문이 부차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첨가된 설명문이 신명기에 더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출애굽기보다 더 오래된 십계명 본문이 거기에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개의 십계명 십계명은 출애굽기 20,2-17과 신명기 5,6-21에 나오지만 두 군데에 다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다. ‘열 말씀’이라는 히브리 말 명칭이 분명히 하듯 계명이 열 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나누어보면 열 개만이 아니라 열한 개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열두 개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성서 본문을 어떻게 열 개의 계명으로 구분해 내느냐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계명들이 나온다. 머리말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① 너에게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된다. ② 너는 어떠한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된다. ③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된다. ④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⑥ 살인해서는 안된다. ⑦ 간음해서는 안된다. ⑧ 도둑질해서는 안된다. ⑨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 ⑩ 이웃의 아내를 탐내서는 안된다. ⑪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된다. 기원전 2-1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어떤 파피루스에 십계명이 나오는데, 그 본문이 히브리 말 성서와도 그리스 말 성서와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구약성서 시대가 끝날 때까지도 십계명의 표준 본문이 없었음을 뜻한다. 성서의 저자들과 전승가들은 십계명을 통일시키지 않았다. 십계명의 본문들이 서로 다른 모습 그대로 경전으로 확정되어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열 계명으로 나누는 데에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 때부터 일부에서 ①과 ②를 첫째 계명으로, 그리고 ⑩과 ⑪을 각각 아홉째와 열째 계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된다. 그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비롯한 많은 교부들이 이 의견에 동조하여, 마침내 서방의 라틴 교회, 그리고 나중에는 루터 교회에서도 이 분류법을 따른다. 유다교의 탈무드, 유명한 유다인 학자 필로, 또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라든가 예로니모 성인, 특히 아우구스티노 이전의 그리스 교부들은 대부분 ①과 ②를 첫째와 둘째 계명으로, 그리고 ⑩과 ⑪을 열째 계명으로 분류하였다. 이 분류 방식이 동방 교회와 칼뱅교(칼빈교)에서 채택된다. 다른 한편, 성서 시대 이후의 유다교에서는 우리가 위에서 ‘머리말’이라는 이름을 붙인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를 첫째 계명으로, ①과 ②를 둘째 계명으로, ⑩과 ⑪을 열째 계명으로 구분한다. 우리 나라 천주교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의 전통에 따라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본문을 간략한 형태로,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에게 효도하여라.”라는 계명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나라 전통에 맞는 용어를 써서 십계명을 정리한다.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는 전반적으로 칼뱅교의 분류법을 따르는데, 각 계명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본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이 사용하는 「개역 한글판 성경전서」에 따라 예컨대 첫째 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셋째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가 된다. 우리 나라 가톨릭 교회의 십계명과 개신교에서 더러 편의상 사용하는 축약형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가톨릭 교회 ①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②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③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④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⑤ 사람을 죽이지 마라 ⑥ 간음하지 마라 ⑦ 도둑질을 하지 마라 ⑧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⑨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⑩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개신교 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너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라 ③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⑤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적질하지 말라 ⑨ 거짓 증언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가르침으로서의 십계명 성서의 십계명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말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다.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외에는, 신구약 전체에 걸쳐 십계명이 순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곳이 하나도 없다. 성서의 저자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님과 바오로도 십계명을 자유로운 형태와 순서로 인용한다(레위 19,3-4.11-13; 예레 7,9; 호세 4,2; 시편 15,3-6; 24,4; 마태 19,18-19; 마르 10,19; 루가 18,20; 로마 13,9; 야고 2,11). 중요한 것은 십계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신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어떤 법적인 규범이 아니다. 십계명은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우리말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 해야 한다’나 ‘너는 … 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어 자유를 주신 다음, 당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침을 내려주신다. 당신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십계명은 이렇게 자유의 하느님이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에게 내리시는 가르침이다. 인간은 해방의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그분이 주신 자유를 이웃도 누리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기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웃과 평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그러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는 십계명의 말마디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마태 5,21-26.27-30.33-37 참조). 십계명은 결국 사랑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는 계명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계명만이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의 가르침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둘이며 동시에 하나인 계명으로 총괄하신다(마태 22,34-40). [경향잡지, 2001년 9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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