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서 외경 문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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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20 | 조회수7,627 | 추천수1 | |
파일첨부 성서_외경문학.hwp [1,818] | ||||
성서 외경 문학
1. 외경(外經)이란?
우리의 공동번역 성서에 [제 2경전]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아진 성서들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모 마리아의 부모를 요아킴과 안나라고 하여 7월 26일에 축일로 지내며, 또 성모 승천 대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는데 교회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어디에 근거해서 지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있는 [외경](Apocripha)문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경을 지칭하는 희랍어 [아포크리포스](Apokriphos)란 단어는 원래 [숨겨진] [알려지지 않은]이란 뜻으로 대중이 아닌 특수층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을 지칭했다. 이미 유대교 안에는 구약성서의 정경외에 다른 문헌들이 있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도 사도나 그 제자들의 이름을 붙여 권위를 부여한 많은 문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저자 역시 사도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Apokriphos]란 단어는 [허위]란 뜻으로 변하여 경멸조의 표현이 되었다. 그 후 교회는 사도적 기원을 두고 있으며,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서 전례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엄격히 검토하였고,4세기 말에 비로소 성서의 정경목록(正經目錄)을 확정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경목록에 들지 못한 신약성서 계통의 문헌들을 통칭하여 [외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용어상의 차이가 있는데 두 교회 모두 27권의 신약성서를 인정하지만 구약성서에서 우리가 [제 2경전]이라고 하는 7권을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외경]이라 하면서 성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외경문학의 발생동기
신약성서는 예수의 유년 및 청소년 시절, 마리아의 생애, 사도들의 전교행적에 관하여 충분히 전해주고 있지 않다. 사실 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에 관계된 이야기 다음 12살에 성전에서 설교하신 이야기만 언급되어 있고 갑자기 30세의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 나타나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면 복음서에 기술되어 있지 않은 공백기간에 예수님은 어떻게 생활하셨을까? 또 사도행전은 주로 베드로와 바오로의 선교 행적을 이야기 할 뿐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행적은 어떠했었는가? 초대 교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때로는 신자들의 성화와 교육을 위해 상상과 추리를 동원하여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각색된 것들이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유치한 우화의 성격을 갖는 것들도 있었다. 또 때로는 이단자들 편에서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사도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조작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2세기부터 4세기까지 수많은 외경문학들이 생겨났으며, 이때문에 교회는 신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정전(正典)을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외경 문헌들을 읽어보면 그 허위성과 유치함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토마 복음] 2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6살된 예수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개울가에서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며 놀고있었는데, 마침 안식일이었다. 동네 어른이 이를 보고 양아버지인 요셉에게 가서 "예수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장난을 하고있다"고 일러바치자 요셉이 와서 야단을 쳤다. 예수는 손바닥을 치면서 진흙 참새들을 보고 "날아가라"하고 말하자 참새들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3. 정전(正典)확정의 과정
외경문학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성서의 정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교회안에 확정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세기 중엽까지는 어떤 책이 신약성서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도들이 살아있던 초기에는 구약성서와 주님의 어록집 그리고 사도들의 구두 가르침이 권위를 갖고있었다. 그 후 주님의 단편적인 어록집들이 복음서로 집필되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서간 형식으로 기록되면서 교회 안에서 권위있게 읽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27권의 신약성서가 모두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 같은 권위로 읽혀진것은 아니다.
복음서 4권, 사도행전, 바오로의 13개 서간, 요한의 서간들은 모든 교회에서 처음부터 인정을 받은 반면, 히브리 서간, 요한 묵시록, 베드로 서간들, 야고보 서간, 유다 서간등은 지역교회마다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라, 어떤 교회에서는 [디다케]나 [헤르마스의 목자]같은 문헌도 성서처럼 읽혀지다가 4세기 말에야 27권의 신약성서가 동방,서방교회 안에서 확정되었다.
한편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의 정전성을 증언하는 중요한 문헌이 있는데 히에라뽈리스의 주교였던 빠삐아스가 남긴 [단편](斷片)이다. 빠삐아스는 스미르나의 뽈리까르뽀와 함께 요한 사도의 제자였는데, 130년 경에 5권으로 된 [주님의 말씀해설]을 함께 저술했지만 상실되었고 에우세비오의 [교회사]3권 39장에 일부만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빠삐아스의 단편]이라 불리운다.
마르코는 주님을 따라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사람은 아니었지만,베드로 사도의 통역자로서 기회있을 때마다 베드로로부터 전해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순서대로 잘 정리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신 오류는 범하지 않고 정확하게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마태오는 주님의 말씀들을 히브리어로 모아 정리하였고, 이 말씀들에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 증언에 의하면 마태오 복음서는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는데 빠삐아스 시대에는 희랍어로 번역되어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복음 외경
우리는 성서 외경문학이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신약성서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으로 분류되듯이 외경문학도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복음서 외경들의 이름만 열거하더라도 매우 많다. {히브리인들의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에비온인들의 복음}, {베드로의 복음}, {니고데모의 복음}, {야고보의 원(元) 복음}, {토마 복음}, {예수의 유년기 아랍어 복음}, {목수 요셉의 이야기}, {필립보 복음}, {마티아 복음}, {바르나바 복음}, 그리고 이단 계통의 복음서로서 {안드레아 복음}, {유다 이스가리옷 복음}, {타대오 복음} 그리고 영지주의 주창자들의 이름을 직접 사용한 복음으로서 {바실리데 복음}, {체린토 복음}, {발렌티노 복음}, {아펠레 복음} 등이 있다. 영지주의를 포함한 이단 계통의 복음서들은 자기들의 이단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외 다른 복음서들은 4개의 정전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들, 특히 예수의 어린시절과 부활후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복음서들의 특징을 다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운 일이므로 여기에 몇가지 흥미있는 부분들을 소개하겠다.
2세기에 저술된 {야고버 원(元) 복음}은 마리아의 유년시절,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예수의 탄생 및 소년시절 등을 전해주는 복음이다. 24장으로 구성된 이 복음은 원래 세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이 하나로 편집된 것이다. 제1부(1-16장)는 마리아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마리아가 두살때에 이미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였다고 하며, 또한 마리아의 부모 안나와 요아킴에 대해서도 전한다. 제2부(7-21장)는 {요셉의 비밀}이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조배에 대해, 제3부(22-24장)는 무죄한 어린이들과 즈가리아의 순교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 복음의 저자는 유대인계 그리스도인으로 성모 마리아의 평생동정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 복음}은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소년 예수가 행한 여러가지 기적들을 우화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의 양(養) 아버지 요셉의 생애와 죽음에 관해 전하는 {목수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수께서 요셉의 임종을 도우시면서 그의 공덕을 치하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에 교회는 요셉 성인을 임종자의 주보로 정하고 있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부활 후의 행적들에 관한 외경 복음들도 많다. {베드로 복음}은 예수의 수난 죽음 장례 및 부활 후의 여러가지 기적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27장으로 되어 있는 {니고데모 복음}도 예수의 재판 십자가 처형 장례 그리고 죽으신 후에 {고성소에 내려가심}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제1-11장은 로마총독 빌라도와 연관시켜 서술하고 있으므로 {빌라도 행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본시오 빌라도가 끌라우디오 황제에게 예수의 처형소식에 관해 보고한 편지가 흥미롭다. 예수에 대한 사형선고는 순전히 유다인들의 종교적인 이유였으며 처형 후에 유다인들의 요청에 따라 예수의 무덤을 병사들로 하여금 단단히 지키도록 지시하였지만 삼일째 되는 날 예수가 부활하였으며, 유다인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병사들에게 돈을 주어 입을 막으려 했지만 소문이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끝으로 {마리아 승천(昇天)기}라는 문헌이 있는데 아마도 예수의 유년기 복음에 속해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들이 마리아의 임종이 임박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예루살렘에 모인 가운데 마리아는 임종을 맞이했는데, 죽은 지 3일만에 천사들에 의해 하늘에 올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문헌은 성모신심 특히 성모승천 대축일의 바탕이 되었고 교황 비오12세는 1950년 11월 1일에 성모승천을 신앙신조로 선포하였다.
5. 서간의 외경
사도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 외경은 다른 부류만큼 다양하지 않다. 신약성서 정전에 이미 사도 바오로의 대부분의 서간들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유다 사도들의 서간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서간 외경으로는 바오로 사도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들이 많은데 {라오디케이아 서간}, {알렉산드리아 서간}, {고린토 3서} 그리고 바오로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에게 보낸 6편의 {세네카 서간}이 있지만 모두 후대에 쓰여진 것이다. 한편 우리의 주목을 끄는 서간 외경은 {바르나바 서간}과 {사도들의 서간}이다.
{바르나바 서간}은 바오로의 선교 동반자였던 바르나바의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1세기 전후의 작품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도 교부}의 문헌으로 취급되고 있다. 서간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호교론적 신학 논술이다. 21항으로 구성된 이 서간은 제1부(1-17장)에서 참다운 영지(gnosis)를 강조하면서 구약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와 연관시켜 영적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제2부(18-21)에서는 윤리적인 실천을 권고하고 있는데 두가지 길 즉,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말하는 {디다케}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한편 {사도들의 서간}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승천에 관해 서술하고 있어 서간이라기 보다 묵시록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사실 예수의 말씀들 중에는 세상의 종말과 육신의 부활 공심판 종말의 표징 단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서간에 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관한 대목은 당시의 교회 관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줄 뿐만 아니라 전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6. 사도행전의 외경
사도행전 외경도 복음 외경과 비슷한 요소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성서에 명기되지 않은 사도들의 생애 행적 전교 특히,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야화(野話)적인 성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외경들은 열교(裂敎)적 기원 즉 자기들의 종파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된 것들이 많지만, 후일에 이 작품들은 정통교회의 작가들에 의해서 신자들의 교육과 신심을 위해 수정 내지 보완되었기 때문에 이단과 정통의 성격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작업은 초대교회가 지녔던 사도들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외경들 중에 어떤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록으로 학문적 입증자료가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도들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 이러한 외경문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도행전 외경들도 다양하다. 사도 베드로에 관한 것으로 {베드로의 행전} { 두가지 형태의 {베드로의 순교록}이 있으며, 사도 바오로에 관한 것으로는 {바오로행전} {바오로와 데끌라 행전} {바오로의 순교록}이 있고 {베드로와 바오로 행전} {요한 행전} {안드레아 행전} 여러가지 형태의 {안드레아 순교록} {토마 행전} {타대오 행전} 등이 있다. 단편만 전해오는 것으로는 {마태오 행전} {필립보 행전} {바르톨로메오 행전}이 있다. 그리고 사도들의 제자 내지 선교 동반자였던 {바르나바 행전} {디모테오 행전} {마르코 행전}도 있다.
열거한 행전들중에 몇가지 흥미있는 내용을 소개하겠다. 180-19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 행전}은 41장으로된 방대한 작품으로써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선교하던 과정에 마술사 시몬(사도행전 8,18-25 참조)과 대결하여 그의 허위와 가면을 폭로하는 이야기, 유명한 {쿼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Domine, quo vadis)이야기, 그리고 베드로가 순교할 때에 감히 주님처럼 바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으니 거꾸로 달려 죽게 해달라고 자청한 이야기 등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오로에 관한 행전 중에서 {바오로와 데끌라 행전}은 전기체적 소설 형식을 띠고 있는데, 이꼬니움 출신의 소녀 데끌라는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서 약혼을 파기하고 바오로를 따라 나선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그의 약혼자 타미리스가 총독에 고발하여 데끌라는 화형의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으로 벗어난 다음 바오로를 만나 서원을 발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성실한 삶을 마쳤다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문헌에서는 인물의 신체적인 묘사가 없는 것이 상례인데 제3장에 묘사되어 있는 바오로에 관한 묘사는 후대에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암시적인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작은 키에 대머리, 다리는 약간 구부러졌으나 건장한 모습이다. 곧은 눈썹에 오똑한 코, 한마디로 품위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사람같고 때로는 천사같은 그런 모습이다} {바오로의 순교록}에서는 바오로가 동쯕을 향해서 손을 펴들고 기도하고 있을 때에 포졸들이 그의 목을 베니 붉은 피가 아니라 우유빛의 액체가 군인들의 옷에 튀었으며 이를 본 군인들은 놀랍고 이상한 마음으로 바오로의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고 전한다. {토마 행전}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는 인도에까지 가서 전교하였으며 인도의 왕 군다포루스를 개종시킨 후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타대오 행전}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에데싸의 왕 압가르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고질적인 병을 치유해 달라는 편지를 예수께 보냈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곳에 가지는 못하고 후에 적당한 기회에 제자 한사람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부활하신 후에 사도 토마스가 성신의 영감을 받아 타대오를 그곳에 보내 왕의 병을 고쳐주었으며 그래서 에데싸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7. 묵시록의 외경
묵시록 외경으로는 [베드로 묵시록} {바오로 묵시록} {토마 묵시록} 성서정전에 들어있는 것과는 다른 {요한 묵시록} [동정녀 묵시록} 등이 있다. 이 외경류의 묵시록은 엄격한 의미에서 묵시록으로 분류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묵시와 환시들을 다루고 있다. 이 묵시록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베드로 묵시록}인데, 125년과 15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한때는 신약성서의 정전목록에 들기도 하였다. 이 묵시록에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혹독한 형벌에 대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특별히 지옥의 형벌에 관해서는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나는 다른쪽에 소름끼치도록 슬픈 모습을 보았다. 벌받는 곳이었다. 벌받는 이들과 그들을 고문하는 천사들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곳의 공기조차 검은 빛이었다. 그들중에 어떤 이들은 혀에 매달려 있었은데 이들은 의로움의 길을 저주했던 자들이며 그들 아래에 있는 뜨거운 화염이 그들을 괴롭혔다} 이와같이 벌받는 자들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들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묵시록은 중세의 문학 특히 단테의 {신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바오로의 환시}라고도 불리우는 {바오로 묵시록}은 {베드로 묵시록}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사람마다 호수(護守) 천사가 있는데, 이들은 사람들이 낮에 행한 모든 일을 자정에 하느님께 가서 보고드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선한 이는 천국문을 지키는 미카엘 대천사에게 인도되고, 악한 이는 지옥문을 지키는 사탄 즉 탈타루스에게 인도된다고 한다.
[이형우 신부님, 대구 대신학원 강의록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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