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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새번역 성경: 번역의 원칙과 과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3 조회수4,206 추천수0

새번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 번역의 원칙과 과정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는 1988년 7월 12일과 1989년 2월 28일에 성서학자 회의를 열고, 고 임승필 신부를 번역 전담 총무로 선임하여 성서 번역진을 구성한 뒤, 1989년 7월 4일에 열린 번역위원회 회의에서 번역의 원칙과 절차를 정하였다. 그 세부 원칙은 번역 작업과 병행하여 마련해 나갔으며, 이른바 “맹세 정식” 등 성서에 나오는 고정 표현들의 구체적인 번역은 여러 차례 수정을 하기도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우선 몇 가지 원칙과 과정만을 설명하고, 성서 이름(예: 출애굽기`-`탈출기)이나 주요 용어(예: 과월절`-`파스카)의 변경 등은 차츰 설명해 나갈 것이다.

 

 

대원칙

 

새 번역 성서는 ‘본문’에 충실한 교회 공용 번역본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곧 ‘새 번역’은 두 가지 목표를 지닌다. 첫째는 가능한 한 성서 ‘본문’에 충실한 번역이다. 둘째는 교회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번역본이다.

 

 

번역 대본

 

구약성서의 히브리말 부분은 『스튜트가르트 히브리말 성서』(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히브리말 본문을 출판하면서 판면 하단에 본문 비평의 각주를 덧붙인 성서)를 그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그리스어 부분은 『괴팅겐 칠십인역 성서』(Septuaginta:`Vetus Testamentum graece auctoritate Societatis Goettingensis editum)를 그 대본으로 삼았다.

 

신약성서는 세계성서공회가 발행한 『그리스말 신약성서』(Barbara Aland, Kurt Aland, J. Karavidopoulos, C.M. Martini, B.M. Metzger 편)를 그 번역 대본으로 이용하였다.

 

 

번역 과정

 

번역 위원은 각자 나누어 맡은 부분을 개별적으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 초안은 1차로 번역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했고, 2차로 우리말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하였다. 우리말 독회에는 번역자와 성서위원회의 번역 전담자들도 참여하였다.

 

번역과 관련된 제반 사항에 관한 결정권은 번역위원회가 가졌다. 따라서 번역 위원들의 독회는 자문 역할이 아니라 결정 역할을 하였다. 다만, 번역과 수정을 쉽게 하고자 위원회가 번역자에게 (명시적으로 또는 함축적으로) 일정한 결정권을 위임하기도 하였다. 번역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국어를 다듬는 우리말 위원회는 경우에 따라서 번역위원회를 대표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말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번역위원회에 수정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독회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번역 원칙들을 다듬고 수정하여 왔다. 그런 다음에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과정에서 책임 번역 위원이 한 번 더 교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성서의 책 하나하나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번역되는 대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이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번역을 그때그때 선보임과 동시에 번역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수렴하여 추후의 완본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신구약 성서 전체가 28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된 다음에 번역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을 전국적으로 수렴하여 최종 수정과 윤문 작업에 반영하였다. 시편, 욥기, 잠언 등은 그러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단행본의 개정판을 내기도 하였다. 그동안 새 번역 성서 단행본은 10여 년에 걸쳐 10만 부 이상이 배포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는 각 교구와 대신학교, 수도회, 성서 모임 등에 새 번역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11월 23일에 새 번역 성서 공청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성서위원회는 또한 합본위원회와 합본 실무반을 구성하여, 번역 원칙과 세부 사항들을 다시 검토하고 다듬은 뒤, 이를 신구약 성서 전체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합본 실무반에서 성서 전체를 다시 읽고 용어들을 일관성 있게 통일하고 문장을 다듬은 다음에 합본위원회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합본 위원들은 각자 나누어 맡은 성서를 다시 검토한 다음에 회의를 열어 이를 낱낱이 검토하고 수정하였다. 복음서의 경우에는 새 번역 성서 공청회가 끝난 다음에 이러한 과정을 한 번 더 거쳤다. 이러한 합본 작업 과정에서 또 우리말 전문가들에게 성서 전체를 통독하여 평가와 수정 의견을 제시하여 주도록 위촉하였다.

 

 

성서 본문과 우리말의 문제

 

성서 본문에 충실한 번역과 교회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번역이라는 새 번역 성서의 두 가지 목표는 현실적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본문에 충실하다 보면 우리말이 매끄럽지 못하고, 부드럽고 좋은 우리말을 중시하다 보면, 공동 번역의 예에서 보듯이, 불완전한 번역이나 오역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서 본문에만 충실하고 우리말에서 멀어진다면, 또 한편으로 성서 본문에 충실하지 못한 채 우리말만 번지르르하게 다듬는다면, 새 번역의 의의를 찾지 못하는 난제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번역 위원들과 우리말 위원들, 합본 위원들과 실무진은 언제나 이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말이 아주 부드럽지는 못하다 하여도 성서 본문의 뜻을 제대로 옮기고, 아무리 본문에 짜 맞추어도 우리말이 되지 않을 때에는 최소한의 가감으로 의미를 살려 옮겼다. 물론 여러 사람의 끊임없는 손질을 거쳐야 반드시 번역문이 나아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과정을 모두 거치며 가능한 노력을 다하였기에, 이 두 가지 목표에 어느 정도는 가깝게 다가섰다고 자부한다.

 

단행본 일부에서 쓰였던 예스러운 표현들은 운문에서 “─ 소서.” “─리라.” 등 한두 가지만 예외적으로 남기고, 산문에서는 모두 요즘의 어법으로 고쳤다. 시편도 그렇게 수정하였다.

 

 

발행 계획

 

새 번역 성서는 주교회의에서 출판 승인을 얻는 대로, 우선 4·6배판과 국판으로 본문을 전단 조판하여 펴낼 계획이다. 그런 다음에 신자들이 쓰기에 편리한 여러 판형으로, 또 본문도 2단 조판하여 발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발행된 낱권 성서의 각주와 해제를 재정리하여 덧붙인 합본 각주 성서도 펴낼 계획이다.

 

 

세부 원칙들

 

1. 합본 성서에는 우선 성서의 편집과 관련하여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만 각주를 붙인다. 

2. 좋은 우리말을 찾아 쓰고, 되도록이면 줄임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줄임말은 채택한다. 또한 ‘때, 무렵’ 등의 시간을 나타내는 낱말의 경우, 바로 뒤에 쉼표를 찍으면 조사를 생략한다.

3. 맞춤법, 띄어쓰기, 구두점 등은 일반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를 따르며, 표제어 등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4. ‘낱말’, ‘임금’, ‘집안’처럼 좋은 우리말이 있을 경우에는 ‘단어’, ‘왕’, ‘가문’ 등과 같은 한자말을 피한다. 같은 원칙으로 ‘어(語)’ 대신 ‘말(言)’을 써서, 히브리말 / 그리스말 / 라틴말 등으로 표기한다.

5. 되도록 ‘월(月)’이 아니라 ‘달’을, ‘일(日)’이 아니라 ‘날’을 쓰고, 열흘날까지는 앞에 ‘초’를 붙여쓴다.

6. 3인칭 대명사 ‘그녀’는 쓰지 않으며, ‘그, 그 여자, 그 여인’으로 옮기거나 이름을 쓴다.

7. ‘─에 있어서’, ‘─에 대하여’, ‘─로 하여금’, ‘─에 의하여’, ‘─ 불구하고’ 등의 표현이 좋은 우리말 표현이라 할 수 없으므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격조사 등을 써서 다른 적절한 표현으로 바꾼다.

8. 백 아래 수는 우리말로, 그 이상은 한자말로 쓴다.

9. 반어적인 물음에는 문장 끝에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찍는다.

10. 종결 어미 ‘─이다’는 모음으로 끝나는 낱말 뒤에서도 되도록 ‘─다’로 줄여쓰지 않는다. 구어체에서는 쓸 수 있다.

11. 예언자나 임금이 백성 전체에게 말할 때에는 ‘여러분은 ─ 하십시오.’ 꼴로, 백성 일부나 신하들에게는 ‘여러분은 ─ 하시오.’ 꼴로 쓴다. 또 예언자가 임금에게 말할 때에는 ‘임금님께서는 ─ 하십시오.’ 꼴로 쓰고, 임금들끼리는 ‘나는 임금님을 ─ 합니다.’ 로 쓴다. 단, 모세와 파라오 같은 신적 인물의 경우나 독전사에서는 해라체를 쓴다.

12. 운문에서도 현대적 어미를 쓴다. 단, ‘─ 소서’는 쓸 수 있다.

13.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예수’에는 ‘ ─ 님’을 붙여 쓴다.

14. 외국말 고유명사와 외래어 표기의 원칙은 따로 정한다. 다만, 주교회의에서 확정한 용어와 공동 번역 등 현대 성서 번역에서 널리 쓰이는 관용은 존중한다. 

15. 외국말 고유명사는 고딕체로 표기한다. 그리스말과 히브리말을 음역한 것도 고딕체로 쓴다.

16. 히브리말 도량형 단위는 음역하여 옮긴다. 

17. 외국말 고유명사 표기와 히브리말 도량형을 각주 등에서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환산할 때에는 로쿰 방식(Loccumer Richtlinien)을 따른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아도나이’, ‘야훼’라고 하실 때에 ‘주님’으로 옮기고, 높임말은 쓰지 않는다.

19.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쓰인 ‘아도나이’는 임금일 경우에는 ‘임금님’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나리, 주인님, 어르신네’ 등으로 옮긴다.

20. 원문의 지명에 강이나 산 등의 낱말이 없는 경우에는 대개 없는 대로 쓴다. 

21. 절은 있는데 내용이 없을 경우, 괄호 안에 절 표시를 한다(마르 11,26 등).

22. 야훼를 옮긴 ‘주, 주님, 하느님’은 굵은 글씨로, ‘기름부음 받은 이’와 ‘사람의 아들’은 고딕체로 표기한다.

 

 

번역에 참여한 분들(성직자 수도자는 직함 생략)

 

지금까지 성서 새 번역 작업에 참여한 분들은 다음과 같다. 성서 번역의 초안을 위원 개인이 마련하기는 하였지만, 여러 위원들이 독회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수정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성서의 단행본 출판에 따라 10여 년 동안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였기에, 새 번역 성서는 한국교회의 공동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 이병호 주교, 권혁주 주교

 

번역 전담자: 임승필 신부(총무), 정태현 신부

 

번역 위원: 김건태 신부, 김민수 신부, 김영남 신부, 김학무 신부, 민병섭 신부, 박광호 신부, 범선배 신부, 신교선 신부, 심용섭 신부, 안병철 신부, 이기락 신부, 이영헌 신부, 이창욱 신부, 정영한 신부, 정학근 신부, 황봉철 신부.

 

우리말 위원: 강대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구자명(소설가), 민병숙(외화 번역가), 배봉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신애경(성서위원회), 유혜숙(성서위원회), 이광호(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이승화(한글학회), 이안구(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일본 교토대학교 박사과정), 이우식(성서와 함께), 이해인 수녀(시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정양완(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최용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합본 위원: 이기락 신부(총무), 김영남 신부, 신교선 신부, 정학근 신부, 홍승모 신부.

 

합본 실무반: 강대인, 배봉한, 신애경, 심은영.

 

통독 위촉: 심재기(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이안구(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일본 교토대학교 박사과정)

 

성서 새 번역을 논의한 1988년과 1989년의 성서학자 회의들에는 정양모 신부, 김병학 신부, 서인석 신부, 백민관 신부가 참석하여 매우 유익한 의견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위에 적은 번역 위원들과 우리말 위원들은 처음에 번역 임무를 분담하여 작업하다가 개인 사정 등으로 번역 전담자에게 분담 과제를 넘겼거나 독회에만 참석한 분들도 있고, 마지막 독회 때까지 참여하지 못한 분들도 있다. 어떻든 1980년 말과 199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있던 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을 모시고 성서 번역 작업을 해왔다.

 

[사목, 2005년 2월호, 강대인(새번역 성서 합본 실무반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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