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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이방인을 상징한 돼지: 복이 아닌 불결함의 상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9 조회수4,228 추천수1

[성경 속의 동식물] 이방인을 상징한 돼지


'복'이 아닌 '불결함'의 상징

 

 

- 성경에서 돼지는 불결한 짐승이다. 모세의 율법은 돼지를 부정하게 여기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다인에게  돼지는 이방인의 상징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를 가려면 시장을 지나가야 했다. 시장에는 돼지머리를 진열해 놓고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그 앞을 지날때면 웃는 모습의 돼지머리를 구경하는 것이 큰 재미(?)였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웃는 돼지는 사람이 일부러 웃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요즘도 개업식이나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돼지가 일반적 제물로 정해진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적 이유에 있다고 한다. 비싸고 귀한 소보다 싸고 구하기 쉬운 돼지머리를 자주 사용한 것이다. 또한 돼지의 입에 지폐를 물리는 모습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복의 상징인 돼지는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동물이다. 엄청난 번식력 덕분에 돼지는 오래 전부터 인간과 무척 가까운 가축이다. 돼지는 많은 양의 고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영양가도 무척 높다. 그래서인지 돼지에 관한 속설도 비교적 많다. 사람들은 꿈에서 돼지를 보면 큰 재물이 들어올 길조로 생각했다. 돼지가 한번에 십여 마리씩 새끼를 낳기 때문에 이런 속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성경에서 돼지는 불결한 짐승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근동지방에서는 지금도 돼지를 식용으로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도 돼지고기를 금하는 규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돼지를 '부정하게' 여기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지 못하도록 규정한다(레위 11, 7; 신명 14, 8).

 

이처럼 돼지는 유다인들에게 먹으면 안되는 동물로 구분됐다. 그 이유는 고대 이방인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돼지를 길짐승으로 길렀으며 양식으로 중요하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돼지의 지저분한 습성과 먹는 음식물이 매우 불결하다는 점 때문에 식용을 금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중동처럼 덥고 건조한 지역의 경우 돼지고기가 부패하기 쉽고 이것을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 생활에서 돼지는 적합하지 않다.

 

성경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불결한 이방인 풍습의 대표적 예로 제시한다. 성경시대 후기에는 유다인들에게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이 이방인들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유다 종교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핍박 아래서 열심한 유다인들은 돼지고기를 삼가는 것을 하느님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삼았다. 즉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이 신앙의 차원이 된 것이다. 마카베오의 순교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2마카 6, 18-31). 또한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성전에 대한 신성 모독 중 하나였다(1마카 1, 47).

 

이처럼 유다인들은 돼지와 이방인의 불결함을 상징적으로 연관시켰다. 따라서 돼지는 개와 함께 후대에 가서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경멸적 용어들이 됐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 6). 여기서 개나 돼지는 이방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돼지도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돼지를 대량 사육하는 곳에 가면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돼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돼지는 지저분하다는 인식은 편견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돼지는 땀샘이 거의 없어서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돼지가 진흙탕을 뒹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땀을 흘리지 못하는 돼지가 체온을 식히려고 하는 동작이라고 한다.

 

[평화신문, 2006년 6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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