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11 - 가난한 이들의 식량, 쥐엄나무 열매
탕자의 허기진 배를 채운 식량 - 가난한 이들의 식량으로 사용된 쥐엄나무 열매는 루카복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언급된다. 작은 아들은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며 정신을 차렸다는 대목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쥐엄나무는 이스라엘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성경에서 쥐엄나무가 언급되는 것은 단 한번, 공동번역성서의 루카복음 15장 '잃었던 아들' 비유에서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새로 번역한 성경은 이 쥐엄나무 열매를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라고 표현했다(루카 15, 16). 아버지 유산을 미리 챙겨 타지로 떠난 작은 아들은 가진 돈을 다 탕진하고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 유다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 주검을 만지지도 않는 관습(레위 11,7-8)이 있었다. 따라서 돼지를 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먹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설명한다. 쥐엄나무는 파종해서 결실해 수확할 수 있을 때까지 20년 이상이 걸린다. 이 나무는 해안평야와 주변의 산기슭 언덕, 그리고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산지 등에서 널리 자란다. 쥐엄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주엽나무와 콩꼬투리의 생김새가 비슷해 동일한 식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다. 쥐엄나무 열매는 콩꼬투리처럼 납작하고,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익으면 갈색으로 변한다. 콩꼬투리 속에 동글납작한 완두콩처럼 생긴 씨가 들어있다. 쥐엄나무의 씨는 무게가 균일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무게를 다는 저울추로도 쓰였다고 한다. 콩꼬투리는 익어도 벌어지지 않고, 마르면 그대로 떨어진다. 말린 것은 가루로 빻아서 엿을 만들거나 알코올 원료로 쓰인다. 쥐엄나무 열매는 소, 말, 돼지, 닭 등 가축들의 훌륭한 사료가 된다. 옛날에는 쥐엄나무 열매를 가난한 사람들 식량으로 사용했다. 아직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쥐엄나무를 식량으로 사용한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다(마르 1, 6)는 이야기에 나오는 메뚜기가 사실은 이 쥐엄나무 열매라는 주장이 있다. 두 단어의 히브리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히브리어로 메뚜기는 '하가빔'(hagavim)이고 쥐엄나무는 '하로빔'(haruvim)이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쥐엄나무 열매를 '세례자 요한의 빵'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한편 유대 광야에는 사람이 식량으로 사용할 만큼 메뚜기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사람이 먹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약 시대에는 적의 포위로 성안 사람들이 굶주릴 때 비상식량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탈무드에 보면 랍비 시몬 바르요하이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해 그의 아들과 갈릴래아 동굴에 숨어있는 동안 쥐엄나무 열매로 12년 동안 지냈다고 한다. 쥐엄나무는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예루살렘 거리 가로수도 쥐엄나무가 많다. 쥐엄나무가 고대시대부터 이스라엘에서 흔한데도 구약성경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루카복음에서 아버지 집을 떠난 작은 아들은 세상의 쾌락에 빠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면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것 같은 어려움이 영적으로는 오히려 유익할 때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 간절하게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6년 8월 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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