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31 - 하느님의 재앙인 개구리 - The Bible(마테우스 메리안), 개구리떼 소동. 개구리하면 학창시절에 읽었던 염상섭의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먼저 생각난다. 소설에는 주인공이 중학시절 해부한 개구리의 형상을 회상하는데 그 장면이 내게는 꽤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 즐겨 읽던 전래동화에 비오는 날이면 어머니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불효자 개구리 이야기도 있다. 평소 어머니 말에 무조건 반대로 행동하는 아들 개구리에게 엄마 개구리는 자신이 죽은 후 개울가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양지바른 곳에 묻히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들 개구리는 그동안의 불효를 후회하며 유언을 그대로 따랐고 비오는 날이면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슬피 운다는 것이다. 평안도에서는 개구리를 '멕장구'라고 부른다. 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것을 멱을 감는다고 하는데, 개구리가 헤엄치는 모습이 멱을 감으면서 물장구치는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꼬리가 없는 양서류인 개구리는 눈이 돌출되어 있고 몸은 굵고 짤막하며 발에는 물갈퀴가 있다. 뒷다리는 멀리 뛰거나 물속을 헤엄치기 편하도록 잘 발달돼있다. 개구리는 뛰어난 위장술로 천적을 피해 몸을 보호한다. 일부 종은 몸 색깔이 주위 환경 색과 비슷하며, 어떤 종은 몸의 색을 바꿀 수 있다. 또 어떤 종은 배 부분이 밝은 색상을 하고 있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번들거려 적을 혼란하게 한다. 개구리의 성장은 알→올챙이→개구리의 변태 과정을 거친다. 올챙이 모습은 개구리와는 많이 다르다. 머리와 몸통이 둥글고 세 쌍의 겉아가미와 긴 꼬리로 수중생활을 한다. 개구리는 양서류 중에서 가장 진화된 형질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생활형을 나타내며 지리적 분포도 넓다. 개구리는 비교적 온순한 동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떤 종은 매우 공격적임이 알려졌다. 황소개구리나 녹색개구리의 수컷은 번식기에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기위해 다른 수컷이 침입하면 발로 차거나 몸으로 밀어붙이며 때로는 물기도 한다. 개구리에 관한 속담도 많다. 자기 형편이 나아지자 지난 날 어려웠을 때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하고, 견문이 좁은 사람을 가리켜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한다. 근동 지방에서 개구리는 다산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 말기에는 재생을 상징하기도 했다. 나일강 유역 이집트에서는 개구리를 숭배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구리를 악한 세력으로 보았다. 성경에서 개구리에 관한 인상적 구절은 당연 모세와 파라오가 대적할 때 하느님께서 둘째 재앙으로 내리신 개구리 소동이다. 파라오가 백성을 내보내 하느님께 예배하게 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하느님께서 개구리로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요한 묵시록에도 비슷한 부분이 등장한다.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해 돋는 쪽의 임금들을 위한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16, 12-13). 더러운 영을 개구리에 비유했다. 시편에도 개구리는 하느님의 징벌로 표현된다. "강을 피로 바꾸시니 저들이 그 시내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였다. 등에 떼를 보내시어 저들을 뜯어 먹게 하시고 개구리 떼를 보내시어 저들을 망하게 하셨다"(시편 78, 44-45). 시골 논둑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개구리가 이제는 환경 파괴로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좀 더 빠르게 편하게 살기위해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징벌은 아닐까? [평화신문, 2007년 1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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