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34 - 행복과 기쁨의 꽃 수선화
청초함 머금은 '사순절의 백합'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우스의 양을 치는 목동으로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양떼를 몰고 다니며 평화로운 날을 보냈다. 어느 날 나르시스가 수정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골짜기로 양떼를 몰고 지나다가 목이 말라 물을 먹으려고 시냇가에 엎드렸다. 그런데 물속에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소년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소년이 죽은 자리에 수선화가 피었다. 그래서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나르키소스)라는 소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꽃말도 '자기주의' 또는 '자기애'를 뜻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수선화를 찬양한 시를 지었을 정도로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선화는 주로 남부지방에서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있다. 이른 봄, 동절기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풀이 수선화다. 옛 선비들은 눈 내리는 이른 봄 눈밭에서 이 꽃을 보면서 글을 짓고 묵향에 젖었다고 한다. '수선'이라는 말은 자라는데 많은 물이 필요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또한 물에 사는 신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가을에 연한 녹색 싹이 나와, 비를 맞으면 갑자기 자라서, 1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이듬해 2월이나 길게는 4월까지 핀다. 풀잎은 가늘고 난초 잎같이 날렵하며 양파 모양의 뿌리줄기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꽃의 모양이, 은쟁반에 금잔을 올려놓은 듯하다고 해 금잔은대(金盞銀臺)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간 습한 땅에서 잘 자라며, 땅속줄기는 검은색으로 양파처럼 둥글고 잎은 난초잎같이 선형으로 자란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특히 스페인ㆍ포르투갈에 많으며, 북아프리카에도 분포한다. 꽃이 필 때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하다. 또한 수선화는 생즙을 내어 부스럼을 치료하고, 꽃으로 향유를 만들어 풍을 제거하며 발열, 백일해, 천식, 구토에도 이용한다. 제주도에 귀양 간 추사 김정희가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서울에서 귀하게 여겨 가꾸던 수선화가, 제주도에는 어느 곳에나 지천으로 나 있어서, 농부들이 김매기가 어려워 원수처럼 여긴다고 적고 있다. 성경에서 수선화는 아가서와 이사야서에 두차례 정도 등장한다. 수선화는 팔레스티나에 많이 자생하고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흔하고 잘 알려져 있는 꽃이다. 수선화는 '봄의 환희'라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나리꽃이랍니다"(아가 2,1). 사론은 평원, 황야를 뜻하는 단어로 이 세상을 뜻한다. 수선화는 이스라엘에 가장 흔하고 하찮은 꽃으로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을 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이사 35,2). 이스라엘의 귀향과 행복을 전할 때 수선화를 언급할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 중의 하나이다. 수선화는 부활 전 사순시기에 꽃이 피므로 사순절의 백합이라고도 부른다. 마호메트도 "2개의 빵을 가진 자는 1개를 수선화와 바꿔라. 빵은 육의 양식이요, 수선화는 영의 양식이다"고 설파했을 정도로 근동지방에서는 수선화의 청초하고 맑은 향기를 사랑했다. [평화신문, 2007년 1월 2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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