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44 -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들소 - 들소는 인간을 위해 구원의 뿔을 들어올리고 동정녀 마리아 태중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에 자주 비유된다. 들소는 소보다 체구가 크고 앞이마는 튀어나왔으며 어깨의 융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야생짐승인 들소는 아무리 사냥 솜씨가 좋은 포수라도 여간해서 포획하기 어렵다. 들소를 사냥하는 그림들이 유럽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와 중국의 중세 예술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이란의 전설에서 들소는 악마의 지배를 물리치는 힘센 동물로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는 동물의 뿔로 만든 술잔이 병마나 독으로부터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들소 뿔은 뱀의 독이 섞인 물을 정화시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들소를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중세기에 주교 지팡이의 손잡이에서 볼 수 있는 들소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중세시대 전설에는 순결한 처녀가 혼자 숲 속에 있을 때 들소가 다가와서 처녀의 무릎 위에서 잠을 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설의 영향을 받아 들소는 정결과 순결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유되었고 나중에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들소는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강대한 힘을 상징한다. 팔레스티나 지역에 들소가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 들소는 여러 번 등장한다. 시편에서는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할 때 나온다. "사자의 입에서, 들소들의 뿔에서 저를 살려 내소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시편 22,22). "당신께서는 저의 뿔을 들소의 뿔처럼 치켜들어 주시고 신선한 향유를 저에게 부어 주셨습니다"(시편 92,11). 또한 욥기에서도 들소가 힘센 존재로 비유된다. "들소가 너를 섬기려 하겠느냐? 네 구유 옆에서 밤을 지내겠느냐?"(욥기 39,9) "너는 밧줄로 들소를 고랑에다 맬 수 있느냐? 그것이 네 뒤를 따라 골짜기를 갈겠느냐?"(욥기 39,10) 따라서 들소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생존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들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느님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때 들소가 언급된다. "들소들도 함께 쓰러지고 황소들과 함께 힘센 소들도 쓰러진다. 그들의 땅은 피로 흠뻑 물들고 그들의 흙은 기름기로 덮인다"(이사 34,7).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실 때 하느님을 힘이 센 들소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은 그들에게 들소의 뿔 같은 분이시다"(민수 23,22).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요셉 지파를 축복하면서도 들소를 인용한다. "그는 맏이로 난 소, 그에게 영예가 있어라. 그의 뿔은 들소의 뿔. 그 뿔로 민족들을 땅 끝까지 모두 들이받으리라"(신명 33,17). 요셉 지파는 두려움을 모르는 강하고 용맹스런 지파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상 여호수아를 비롯해 드보라, 기드온 등 들소 같은 용사들이 요셉 지파에서 많이 나왔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하나의 뿔을 가진 들소를 세계를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강대한 힘으로 비유했다. 그는 "그리스도는 들소처럼 모든 나라들 위에 군림할 것이다"고 했다. 교회에서 들소는 인간을 위해 구원의 뿔을 들어올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에 자주 비유된다. 따라서 중세시대에 들소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평화신문, 2007년 4월 1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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