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동식물] 62 - 느리지만 근면한 달팽이
그 느림과 여유를 배우자 '달팽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선형 껍질, 느리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근면성, 그리고 프랑스의 고급 달팽이 요리 등이다. 달팽이는 육상 또는 민물에 사는 복족류(腹足類)를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정확한 의미의 분류학적 용어는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달팽이 종류는 2만여 종이 넘는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달팽이의 모습과 달리 민달팽이과 종들은 껍질이 완전히 퇴화돼 외투막이 몸 전체를 덮고 있다. 습기를 좋아하는 달팽이는 낙엽 밑이나 나무의 뿌리 근처, 바위 틈, 풀밭 등에서 산다. 건조한 곳에서는 체내 수분이 방출돼 말라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껍데기 속에 몸을 숨기고 쉬다가 밤이 되면 움직인다.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를 보면 미끈미끈한 액체가 있다. 평평하고 넓은 근육성 발에서 점액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점액은 달팽이 몸의 습기를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존재다. 점액 때문에 달팽이는 면도날 위도 기어갈 수 있다고 한다. 열대지방에는 껍데기 빛깔이 아름다운 달팽이가 많은데 그 중에서 쿠바에 서식하는 오색달팽이가 유명하다. 수많은 달팽이 무리 중에는 식용달팽이도 있다. 유럽에서는 중세 가톨릭 수도원에서 달팽이 식용을 허락한 뒤부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달팽이 요리가 유행했다. 프랑스의 에스카르고(escargot)라는 달팽이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달팽이를 먹으면 세포가 젊어져 노화 방지나 강장 효과가 있고 폐렴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에 달팽이가 기어가면 기다리던 일이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말을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 핀잔을 듣고 겁먹은 표정을 가리켜 '달팽이 눈이 되었다'는 속담도 있다. 누가 입을 꼭 다물고 말이 없을 때 '달팽이 뚜껑 덮는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달팽이는 팔레스타인 등 석회암지대에 많이 서식한다. 껍질의 성장을 위해서는 칼슘이 많이 필요하기에 토양에 칼슘성분이 많은 지역을 좋아한다. 광야에는 지면의 색깔을 바꿔 놓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서 현재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데에도 달팽이를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달팽이가 기어다닌 곳에 남는 끈적끈적한 흔적이 달팽이의 몸이 녹아 내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팽이는 기어다닐수록 몸이 점점 줄어들어 드디어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는 악인들의 파멸을 소원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흘러내리는 물처럼 그들은 사라지고 그들이 화살을 당긴다 해도 무디어지게 하소서. 녹아내리는 달팽이처럼, 햇빛을 못 보는, 유산된 태아처럼 되게 하소서" (시편 58,8-9). 오랫동안 햇볕을 쬐면 껍질 속에서 말라 죽게되기에 녹아내린다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달팽이는 느리게 이동하는 동물이다. 모두들 빠르고 정신없는 삶을 사는 요즘 달팽이처럼 느리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평화신문, 2007년 9월 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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