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와 외경에 나오는 예수 탄생 이야기
탄생 때 천사와 함께 하늘 군대 나타나 하느님 찬미 - 로제르 반 데르 바이덴, '삼왕경배', 1455년작,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가톨릭교회는 해마다 12월 25일을 '예수 성탄 대축일'로 지낸다. 반면 정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사건이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이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 복음서와 외경에서는 예수 탄생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정리했다. "tu quis es(뚜 퀴스 에스)?" 유다인들이 예수께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하고 직접 물었듯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예수의 신원을 궁금해 한다. 오늘날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역사가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예수 탄생을 둘러싼 정확한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고 의견도 여러 가지다. 마태오(1,1-2,23)와 루카(1,26-2,40) 복음서, 2세기 말 이전 이집트에서 쓰인 '야고보 원복음'(표기 원야고보)은 역사적 인물이면서 주님이요, 하느님 아들인 예수 성탄 이야기를 유일하게 전해주고 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신 임마누엘 동정녀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지 6개월 되던 날 나자렛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임마누엘 예수를 잉태한다(루카 1,26-32; 마태 1,18-25). 예수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며, 그의 존칭인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다윗 가문의 일곱 처녀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새 휘장을 만드는 일에 선발돼 나자렛 집에서 짙은 자주색 실로 천을 짜고 있던 중 천사에게서 주님 탄생 예고를 들었다. 이때 마리아의 나이가 16살이었다(원 야고보§9). 마리아는 경건하고 올바른 부모 요아킴과 안나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돼 3살때부터 성전 안에서 자랐다. 마리아가 12살이 되자 사제회의는 약혼자를 뽑아 마리아를 성전 밖으로 내보냈다. 당시 유다 전통법은 생리하는 여인을 부정한 자로 규정했기에 성전에 봉헌된 소녀들은 모두 초경 시작 전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대사제 즈카리야는 마리아를 집으로 보내기 전 요셉을 마리아의 배필로 정해주었다. 자식도 있고 늙은 홀아비였던 요셉이 마리아의 약혼자가 된 것은 선발 과정 중 그의 지팡이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와 그의 머리에 앉는 이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프라 안젤리코, '주님 탄생 예고', 1430~1432년작,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 6개월이 지났을 때 다른 지방에서 건축일을 하다 돌아와 마리아의 몸이 무거운 것을 알게 됐다. 요셉은 자기 얼굴을 때리면서 "내가 무슨 면목으로 하느님을 대하겠는가? 누가 우리 집에서 이런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동정녀를 유혹해 더럽혔단 말인가?"라며 탄식했다. 그러면서 마리아에게 "그렇게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당신이 왜 이런 짓을 했소?"라며 나무랐다. 그러자 마리아는 "전 죄가 없어요.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해요. 맹세하지만 어떻게 해서 임신이 됐는지 저도 몰라요"라며 울며 호소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그 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동정녀를 보호했다(마태 1,18-23; 원야고보 §10 참조). 얼마 후 율법학자 안나스가 처녀인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이를 대사제에게 고발했고, 대사제는 마리아와 요셉을 재판장에 불러 간음 사실을 추궁하자 요셉이 대사제에게 무죄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판결'을 요구했다. 요셉은 대사제의 지시대로 독이 든 물을 마신 후 아무 탈 없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와 두 사람이 간음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원야고보 §11장). 베들레헴에서 탄생 마태오와 루카, 야고보 원복음 저자 모두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똑같이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 성탄 장소에 대해선 서로 다르게 기술한다. 마태오 복음은 베들레헴의 요셉과 마리아의 '집'에서 예수가 태어났으며, 동방 박사들이 그 집을 방문해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경배했다고 한다(마태 2,11). 루카는 요셉과 만삭인 마리아가 호적 등록을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가 해산 날이 차서 예수를 낳았는데 방이 없어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였다고 한다(루카 2,1-7). 야고보 원복음은 요셉이 나귀에 마리아를 태워 베들레헴에 도착했으나 마리아가 진통을 시작해 가까운 '동굴'에 데려놓고 히브리인 산파를 구하러 내려간 사이,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았다(§12)고 한다. 성탄절 구유를 장식할 때 집이나 마구간, 동굴을 만드는 까닭도 이런 연유에서다. 예수 성탄 때 이적도 있었다. 천사와 함께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며 하느님을 찬미했다(루카 2,14). 또 동정녀의 출산을 의심한 산파의 손이 굳어졌다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요셉의 청으로 뒤늦게 온 산파는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찬란한 광채가 비춰 눈을 뜰 수 없었고, 그 빛이 사라지자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산파는 살로메라는 다른 산파에게 "자연법칙에 반대되는 일이지만,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다. 살로메는 "이 일에 대한 특별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믿지 않겠다"고 대꾸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그의 손이 굳어져 버렸다.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살로메 옆에 서서 "당신 손을 뻗어 아기를 안아보시오. 그러면 회복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아기 예수를 만진 살로메는 즉시 치유됐다(원야고보 §12-14). 예수 성탄 목격자들 예수 탄생의 목격자로 루카는 '목동들'(루카 2,8-20)을, 마태오는 '동방의 박사들'(2,1-6), 야고보 원복음 저자는 '산파'와 '동방의 점성가들'(§14-15)을 등장시켰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이방인과 목동이 우물에 빠지면 건져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을 쓸모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멸시했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처럼 소외받고 천대받는 인물들을 예수 성탄의 목격자로 내세운 것은 하느님께서 소외된 자들을 아끼고 계시며, 이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구세주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성탄연도 마태오와 루카, 원야고보 복음 저자 모두 예수께서 "헤로데 왕 때에 탄생하셨다"고(마태 2,1-19; 루카 1,5이하 ;원야고보 §12) 기록하고 있다. 루카는 좀더 자세하게 퀴리노가 시리아를 통치하던 시절 로마 아우구스티노 황제의 명에 따라 첫 호적등록을 실시할 때 예수가 탄생했다(루카 2,1-7)고 전한다. 그런데 헤로데 왕은 기원전 4년에 예리코 여름별장에서 병사했고, 퀴리노는 서기 6년에 시리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즉 10년이라는 시차가 생긴다. 그래서 초대 교부 떼르뚤리아노는 루카가 기원전 6년에 호구조사를 실시한 시리아 황제의 특사 사투르니누스를 퀴리노와 혼동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마태오, 루카, 야고보 원복음이 전하듯이 예수께서 헤로데 왕 때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최근 성서학자들 사이에서도 떼르뚤리아노의 의견을 받아들여 예수께서 기원전 6~4년 사이에 탄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예수 탄생을 서기 원년으로 산정한 사람은 6세기 로마에서 살았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470~550) 수사였다. 당시에는 로마 건국 연호를 사용했는데, 엑시구스 수사가 서력(西曆)을 만들면서 로마 건국 754년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서기 1년으로 정했다. 하지만 헤로데 왕은 로마 건국 75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엑시구스 수사는 예수 탄생 연도를 최소한 4년 늦게 산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평화신문, 2007년 12월 2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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