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27) 말 : 용맹, 군사적 힘, 또는 완고함 "암행어사 출두요!" 어린시절 영화 춘향전을 숨죽여 보던 기억이 난다. 암행어사가 돼 돌아온 이몽룡이 마패를 꺼내 보이고 이어서 뒤따르는 수많은 역졸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장면에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마패 앞면에는 한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말이 새겨져 있는데 그 숫자만큼 역마(驛馬)와 역졸(驛卒)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역참제도를 바탕으로 생긴 마패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고려 원종15년 때부터다. 말은 교통수단과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말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하더라도 쉬지 않고 며칠을 달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삼국 시대부터 지역 곳곳에 역참을 두게 됐다. 한국인에게 말은 '신성한 동물'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신성한 존재,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죽은 사람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와 희망의 상징, 위대한 인물들이 타는 동물로 인식했다. 말을 처음 가축으로 기른 민족은 BC 2000년 무렵 흑해 북부 우크라이나와 다뉴브강 유역에 살던 아리아계(系) 고대민족이었다. 말의 후각은 매우 예민해 '코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공포심이 많으나 부드럽게 다루면 온순하며, 기억력도 뛰어나 사람의 애정을 느끼고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말은 다른 동물에 비해 용맹성이 뛰어난다. 전쟁터에서 진격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나면 다른 동물은 겁에 질려 도망가지만 말은 북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용맹하게 달린다. 그래서 동양 풍속에서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였고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고구려 시조 주몽도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성경에서 말은 용맹함과 전쟁 혹은 재난을 상징한다. 옛날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선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말은 군사적 힘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병거를, 저들은 기마를 믿지만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네"(시편 20, 8).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느님은 어떤 인간적인 힘보다 우월하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탈출 14, 28). 또한 말은 완고함, 미련함의 상징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예레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지 않고 싸움터로 내닫는 말에 비유하며 백성의 완고함을 꼬집었다(예레 8, 6). 또한 백성들 풍기문란을 수말에 비유했다. "그들은 욕정이 가득한 살진 수말이 되어 저마다 제 이웃의 아내를 향해 힝힝거린다"(예레 5, 8). 죄인들과 우둔한 자들을 채찍을 맞아야 하는 말의 미련함에 비유하기도 했다. "말에게는 채찍, 나귀에게는 재갈, 우둔한 자의 등에는 매" (잠언 26, 3). 즈카르야서에서 말은 하느님에게 파견된 동물로 등장한다(즈카 1,7-13).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황금색으로 장식된 백마를 타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옛날 태양의 상징이었던 백마를 의식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무적의 태양'과 그 대리자에 적용한 것이다. 또한 중세기 성화와 조각에서 말이 그리스도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은 불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신문, 2008년 12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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