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2) 문명의 시작
“하느님 약속 믿고 문명 떠나 미지의 땅으로” - 유대민족의 조상,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진은 수메르 문명 건축 양식을 잘 드러내는 지구라트. 1억5000만년 VS 350만년. 공룡이 이 땅에 존재했던 시간과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온 시간을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 350만년이라는 인류 존재 시계로 볼 때 공룡이 존재한 시간 1억5000만년은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앞으로 1억4650만년을, 아니 100만년을 더 존재할 수 있을까. 많은 환경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은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앨빈 토플러 (Alvin Toffler)는 “인류 미래는 앞으로 1만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고,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세계 3차 대전은 어떻게 전개될지 예언할 수 없지만, 세계 4차 대전은 예언할 수 있다. 아마 그 때는 돌도끼를 들고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껏 이룩한 성취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류는 하느님 창조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 짧은 350만년 동안 공룡이 상상도 못하던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그럼 인류는 언제부터 이 땅에 존재했을까. 30여 년 전만 해도 세계사 교과서는 ‘아담 창조 시기’(인류 조상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약 200만년 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1974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하다드 사막에서 ‘루시’(Lucy)가 발견되면서 그 기원은 350만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갔다. 루시는 신장 1m 가량의 20세 전후 여성으로 직립 보행을 했으며, 뇌 용적은 작고(400ml) 약 350만년 전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됐다. 루시라는 이름은 발견된 날 밤 조사대의 캠프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비틀즈 곡명에 유래한다고 한다. 창세기에서는 아담(남성)이 먼저지만, 고고학에선 최초 인류가 하와(여성)인 셈이다. 루시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 오세아니아까지 퍼져 나간다. 하지만 문명의 첫 불씨가 당겨진 곳은 아프리카도, 유럽도, 오세아니아도 아니었다. 350만년의 끝자락에 문자를 쓸 줄 아는 인간이 살았던 곳은 아시아의 서쪽 끝, 유럽의 동쪽 끝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지금의 이라크, 이란이 위치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살던 인간들이 일을 냈다. 문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학자들마다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곳에서 인류 최초 문명이 탄생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3500~3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문명을 세운 이들이 수메르인(Sumerians)들이다. 이들은 당시 세계의 중심 도시, 우르(Ur)를 건설한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은 이들이라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다. 우르라는 도시는 창세기, 역대기 상권, 느헤미야기 등에 총 5회 나타난다. 우르는 하느님이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면서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끌어 낸 이다”(창세 15, 7)라고 말한 그 우르이며, 동시에 아브람의 고향이기도 하다(창세 11, 31; 느헤 9, 7 참조). 따라서 아브람, 유대민족의 조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우르의 문화(수메르 문명)를 들어다 볼 필요가 있다. 우르 사람들은 인류 최초의 문자, 설형문자(cuneiform, cuneus는 라틴어로 쐐기라는 듯)를 사용했다. 아브람도 아마 이 문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곱셈과 나눗셈법은 물론이고, 심지어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숫자 체계와 도량형법은 60을 단위로 사용하는 12진법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 12진법을 시계를 통해 사용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기하학 분야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원을 360도로 표현했다. 이들은 또 물시계와 태음력을 고안해 냈으며, 다리 건설에 필수적인 아치와 볼트도 만들어 사용했다. 지붕을 둥글게 만드는 돔도 수메르 인들이 처음으로 사용한 건축기법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수메르 건축물로 지구라트(ziggurat)가 있다. 높은 땅 위에 계단이 딸린 탑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올린 피라미드 형 건축물인데, 지금까지도 우르 지역에 남아있어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많은 이들이 이 지구라트를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이밖에도 이름과 개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문학 「길가메시 서사시」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어떻게 인류가 이렇게 갑작스레, 폭발적으로 지적 능력을 향상시켰는지는 아직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 세상사가 그렇듯 수메르 문명도 1500년을 넘기지 못한다. 수차례 북방민족(셈족)의 습격을 받고 다시 일어섰지만, 결국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에 무너졌고, 이들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수메르인들의 종교다. 놀라운 사실은 수메르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을 아브람의 종교가 수메르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아브람이 믿었던 하느님과 당시 수메르인들이 믿었던 신은 성격이 전혀 달랐다. 수메르 인들의 종교는 농업과 전쟁 등을 위한, 현세적인 종교였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의 종교에선 영적 내용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수메르 인들은 ‘위안’‘삶의 의미’‘영혼의 고양’‘최고신과의 합일’ 등과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들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열정을 지닌 존재였다. 수메르 문명이 바빌로니아에게 무너진 것은 대략 기원전 2000년경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브람 가족은 우르를 떠난다. 우르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집단 이주는 어쩌면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침공에서 촉발되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기원전 2000년경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은 당시 인류 최초 문명을 접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유대민족의 조상, 믿음의 조상은 인류 최초의 문명세계에서 살았고, 그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은 ‘하느님 약속’ 하나만 믿고, 그 문명을 등진다. 문명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간다. 가라는 곳으로 간다.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4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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