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읽기의 새로운 방법1 - 복음서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자주 질문한다.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여기서 ‘어떻게’는 방법의 문제이다. “복음서를 어떤 방법으로 읽을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복음서 읽기에 적합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복음서는 복음사가에 의해 쓰여진 하나의 글이다. 글을 읽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우선 읽으려는 글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한편의 시(詩)와 신문기사(新聞記事)를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시를 읽는 방법과 신문 기사를 읽는 방법이 다르다. 그 읽기의 차이는 시라는 글과 신문기사라는 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운율이 있는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글인데 반해 신문기사는 실제의 사실을 육하원칙에 맞게 기술하는 글이다. 따라서 시는 시로 읽어야 하고, 신문기사는 기사로 읽어야 한다. 시를 신문기사를 읽는 방법으로 읽어서는 안 되고 신문기사를 시처럼 읽어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이 글의 읽기 방법은 그 글의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쓰여진 글에는 글의 종류, 즉 문학 장르가 있다. 복음서는 하나의 문학 장르이다. 복음서라는 글의 종류는 어떤 특성을 가지는가? 문학 장르로서의 복음서가 가지는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루카 복음서 1장 1-4절의 본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본문은 루카 복음사가의 머리글인데, 여기에서 복음사가는 자신의 사료, 저술 방법, 헌정 대상, 저술 목적 등을 밝힌다. 특히 1절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표현들을 발견한다. :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란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이다. 즉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이다. 한마디로 말해 ‘예수 사건’이다. 그리고 복음사가는 자신보다 앞서 이 예수 사건을 이야기로 엮는 시도를 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용어를 발견한다. 바로 ‘이야기(그리스어로 디에게시스)’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보다 먼저 예수 사건을 이야기로 엮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뒤를 이어 자신도 그 일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 즉 ‘예수 사건을 이야기로 엮은 것’그것이 바로 복음서이다. 복음서라는 문학 장르의 특성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복음서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서 읽기의 새로운 방법을 위한 우리의 출발점이다. 복음서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복음서가 하나의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복음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낸 글이 아니다. 복음서는 실제로 일어난 예수님에 관한 역사를 담고 있다. 즉 예수 사건을 ‘이야기’라는 문학적 형식 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 사건이고, 복음서의 형식은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야기’형식이란 무엇일까? 복음서 안에서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들, 즉 사건들이 서술된다. 이 사건들의 이야기는 발단, 전개, 절정, 종결과 같은 줄거리 구성을 가진다. 일정한 줄거리로 짜인 이야기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있고, 이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야기에는 여러 배경들이 있고, 다양한 문학적인 기법들도 사용된다. 따라서 복음서를 저술한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사람의 이야기꾼이 된다. 복음서의 형식과 내용을 그릇과 그 안에 담긴 음식에 비교 할 수도 있다. 그릇은 음식을 보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2천여 년 전에 일어난 예수 사건이 잘 보관되고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은 ‘이야기’라는 그릇 덕분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이라는 음식을 ‘이야기’라는 그릇 안에 담아 놓은 글이다.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생명을 주는 영적인 영양분을 섭취하고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복음서 안에서 내용과 형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형식 없는 내용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음식을 담고 있는 그릇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그 내용을 더 잘 파악하고, 그래서 그 음식을 더 맛있게 더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복음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복음서의 모습은 작은 본문 단위들로 나뉘어져 있는 형태이다. 매일 미사 때에 읽는 복음서의 본문은 적당한 분량으로 그렇게 길지 않다. 우리가 매일 규칙적으로 복음서를 읽는다 해도 부분적으로 몇 단락씩을 읽는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복음서를 읽다보면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을 놓칠 수가 있다. 파인애플의 예를 들어보자. 통조림에 담긴 파인애플은 우리가 먹기에 편하도록 작게 잘려져 있다. 그런데 통조림 파인애플에만 익숙해진 사람은 파인애플의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복음서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각각의 복음서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복음서를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전체로, 통째로 읽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복음서의 전체를 파악하고, 그 다음으로 각 부분들을 읽어야 한다. 부분을 읽고 난 뒤에는 바로 앞과 뒤에는 어떤 본문이 있는지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부분이 전체 복음서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복음서 읽기의 방법은 숲과 나무에 비할 수도 있다. 나무 한그루를 자세히 보면서도 전체 숲의 전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숲 전체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고, 한그루 나무로부터 전체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서 읽기의 큰 원칙을 발견한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이제 우리는 복음서를 “하나의 이야기”로 읽으려 한다. 특히 오늘날 국내외 성서학계에서 주목받는 신문학 비평(New Literary Criticism) 중에서 서사 비평(Narrative Criticism)과 독자반응 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의 방법론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이론들의 핵심적인 내용을 잘 골라내고 우리의 실정에 맞게 소화하여 쉽게 풀어 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복음서의 이야기로서의 특성들을 찬찬히 살펴볼 것이다. 복음서 이야기의 등장인물, 줄거리, 배경, 이야기의 세계, 이야기꾼, 문학적 기법 등을 구체적인 복음서의 구절들과 함께 소개하려 한다. 복음서 이야기의 새로운 세계로, 그 읽기의 즐거움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월간 빛, 2009년 1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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