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10) 인간(人間) 모세
관념 타파한 획기적 영도자 ‘모세’ - 모세가 장인의 양 떼를 몰고 시나이산으로 갔을 때, 하느님의 발현을 목격한다. 사진은 시나이산 전경. 파라오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 1,16) 이른바 산아제한 조치다. 이집트인들은 잡초처럼 생명력 질긴 유대인들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누구인가. 히브리 산파들은 파라오의 명령을 귓등으로 흘린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탈출 1,19) “지긋지긋한 히브리 여자들….” 결국 파라오는 최후 통첩을 내린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 1,22) 얼마 후 아므람의 아내 요케벳은 예쁜 남자아기를 낳는다. “이 아기는 죽일 수 없어!” 요케벳은 3개월 동안 아기를 숨겨 키운다. 하지만 우렁찬 아기 울음은 그마저도 힘들게 했다. 집에서 키우다가는 아기가 언제 끌려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왕골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나일강가 갈대숲에 놓는다(탈출 2,3). 여기서 ‘역청’(瀝靑)은 타르를 가열 증류할 때 남겨지는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물질로 아스팔트와 유사한,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것이었다. 바벨탑 및 노아의 방주를 만들 때도 사용된 것으로 보아(창세 11,3 6,14 참조) 역청은 당시 중요한 방수용 물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청과 송진을 함께 왕골상자에 발랐다는 것은 그만큼 아기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남달랐음을 의미한다. 그 정성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강변을 거닐던 이집트 공주가 아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한다. 공주는 예쁜 아기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결국 아기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공주의 손에 의해 궁중에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이 아기가 바로 ‘모세’다. 드라마 같은 모세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세는 어느날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욱’하는 성질 때문에 살해했고, 결국 도망자가 된다. 히브리인으로서 모세가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이 묵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피신하는데, 그 곳에서 사제 이트로의 딸 치로라와 결혼,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그렇게 한동안 평온하게 지내던 모세에게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그날도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호렙산(오늘날의 시나이산)에서 장인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 때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불꽃이 솟아오른다.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인류 역사안에서 이처럼 감동적인 장면도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참으로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 -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 나무에서 발현,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라고 당신 이름을 계시하신다(탈출 3,14 참조). 사진은 하느님이 발현하셨다고 전해지는 시나이산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떨기나무. 백성을 이끌어야 할 정치가 혹은 지도자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치명적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모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광개토대왕과 같은 정복자도, 세종대왕과 같은 지혜로운 영도자도 아니었다. 성경을 읽다보면 모세는 우물쭈물하고 결단력이 없는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고집이 세고,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약점을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한다. 탈출기 18장에는 동틀 무렵부터 해가 지기까지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판결을 내리는 모세의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는 반드시 작은 여러 사건들이 쌓여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때때로 위대한 인물의 카리스마 및 재능에 의해 거대한 도약을 이뤄낸다. 인류는 위대한 몇몇 철학자, 탐험가, 발명가, 시인 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의 편리함도, 높은 지적 수준의 향유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류의 비약적 도약을 가능케한 인물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모세다. 모세는 단순한 한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었다. 인류는 그에 의해서 “아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모세는 이 땅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다. 불의를 미워하고, 하느님의 법을 세우고자 했다. 우상 숭배 등 오랜 세월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관념을 극복,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적 진보를 이뤄냈다. 당시까지 인류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한 것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가거라”(탈출 4,12). 이에 소명받은 ‘인간’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집트로 돌아가는 그는 손에는 지팡이 하나가 들려있었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5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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