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11) 탈출 그리고 파스카
파라오 강압에 정면으로 맞선 모세 - 시나이 반도에 있는 마라의 우물. 모세의 우물이라고도 불린다. 유대인들이 이집트 탈출에 성공한 후 마라에 도착했지만 정작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 물을 단물로 바꾸신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달라이 라마의 “제발 부탁합니다” 요청에 중국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모세는 파라오 람세스 2세에게 유대인들이 광야로 가서 제사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탈출 5,2). 모세는 이어지는 담판(탈출 7,10-13)에서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부터 모세는 모든 방법을 동원, 파라오와 정면으로 맞선다. 열 가지 재앙 이야기가 그것.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 소동이 일어나고, 모기와 등에가 들끓고, 가축병과 피부병이 만연하고, 우박이 쏟아지고, 한바탕 메뚜기 소동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둠으로 변한다(탈출 7,14-10,29). 하지만 파라오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에게서 썩 물러가라.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 너는 죽을 것이다.”(탈출 10,28) 하지만 모세가 누구인가. 만만하게 물러설 인물이 아니다. 최후통첩으로 맞선다. “말씀하신 대로, 저도 임금님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겠습니다.”(탈출 10,29)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 모든 맏아들의 죽음이었다. “이집트에 큰 곡성이 터졌다. 초상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탈출 12,30) 이집트 맏아들이 죽어나가던 그날 밤, 유대인 맏아들은 모두 무사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 지시대로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칠했고, 이 집들은 천사가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파라오는 결국 유대인들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린다(탈출 12,31 참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유대민족 최대 축제가 탄생한다. 과월절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어로 파스카(Pascha)로 발음되는 과월절 축제는 당초 고대 근동지방의 봄 축제였다. 모세는 이 기간을 이집트 탈출 기회로 삼았고, 결국 성공한 것이다. 당연히 파스카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절이 된 셈이다. 이 해방은 단순히 육체적 노예상태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숨막힐 것 같은 영적 감옥으로 부터의 탈출이었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의 탈출은 유일신 하느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영적 세계로의 탈출이었다. 이는 훗날 유대인 역사 속에서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탈출의 긴박함 속에서 유대인들은 먹을 때도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야 했다(탈출 12,11 참조). 이를 볼 때 당시 유대인들은 상당히 서두른 듯하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반죽으로 누룩 없는 과자를 구웠다. 반죽이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쫓겨 나오느라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 여행 양식도 장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탈출 12,39)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그 이듬해, 시나이 광야에서 첫 번째 파스카 축제를 지낸(민수 9,1-14) 이후 지금까지 파스카 축제 때 허리에 띠를 매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쥐고, ‘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 도시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파라오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상황. 유대인들은 부지런히 걸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빼고, 걸어서 행진하는 장정만도 60여 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탈출 12,37)인 만큼 이동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라오의 추격이 시작됐다. 정예부대가 이끄는 병거만 600여 대에 이를 정도로 대부대였다(탈출 14,7). 하지만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내려치자 갈대 바다가 갈라졌고, 유대인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 이집트 병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탈출 14,15-31). 완전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간 유대인들은 기쁨에 휩싸인다. 드디어 완벽한 해방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발 구르며 환호한다(탈출 15,1-21).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유대인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막막한 현실 앞에서 말을 잃게 된다. 물과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때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되지만) 유대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울면서 매달리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심지어는 분노를 터뜨리고 저주하고 위협까지 한다.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이집트를 나오지 않았을 거야. 돌아가잔 말이야, 돌아가!”(탈출 15,24 16,2-3 17,2 참조) 하지만 하느님은 늘 유대인들과 함께 하신다. 유대인들의 불평이 터져 나올 때 마다 물을 주고 먹을 것을 주신다(탈출 15,22-17,7 참조).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지금 갈대바다를 빠져나온 유대인들은 광야 위에 홀로 서 있다. 머리 위에선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우왕좌왕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있다. 뭔가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법’(法)이 필요했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19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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