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47) 피 :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계약 맺어 처음 천주교가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에 전래됐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식인종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미사 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체성사를 오해한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피는 불안과 공포, 흥분의 상징이다. 고대인들은 피, 특히 사람 피는 건강에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7세기께 이란 지역 기마전사들인 스키타이족 전사들은 전투에서 적군의 피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효심 깊은 자식이 어버이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 피를 마시게 했다는 우리나라 민담도 전해진다. 구약성경에서는 단호하게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사람의 피는 고사하고 동물의 피를 먹는 것조차 금기시된다(창세 9,3-4). 이러한 금지가 율법에도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레위 7,27-28). 짐승의 피를 따로 마셔도 안되고 피가 든 살코기를 먹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사람의 피를 결코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명령도 중요한 율법이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창세 9,5). 남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물론 살인을 뜻한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다. 짐승의 피를 먹지 못하는 이유는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피는 먹어서는 안 된다. 피는 생명이고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신명 12,23).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다. 생물에 생명을 주고 또 거두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창세 3,19). 따라서 생명과 직결된 피를 먹지 않는 것은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먹는 행위는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행위이다(1사무 14,33). 성경에서 살인은 생명에 대한 하느님 주권을 침해하고 하느님 모상인 인간을 죽임으로써 하느님께 직접 도전하는 것이다(창세 9,6).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남의 피를 쏟아 죽이는 자에게 벌을 내리신다(시편 5,7). 월경과 출산도 본의는 아닐지라도 피를 흘렸기에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레위 12,1-8). 그러나 생명의 상징인 피는 인간에게 속죄와 정화와 해방, 생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피는 제단과 성소와 성전을 정화하고 속죄하는 데에 쓰였다(레위 16,15-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시며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7-28). 여기서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구원을 가져다 준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로마 3,2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로 맺어진 계약 대신에, 당신의 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다. 따라서 미사 때마다 신자들은 새 계약의 피를 마심으로써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5월 3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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