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19) 왕의 등장, 최초의 왕 사울
“우리에겐 임금이 꼭 필요합니다” -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있다’(1사무 10,1), 목판화, 「그림으로 본 성서」, 라이프치히, 1860년 경. 노회한 사무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미간에 패인 굵은 주름이 고통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평생 유대민족을 이끌어 온 지도자인 그를 사람들은 예언자로, 사제로, 판관으로 존경해 왔다. 그러던 백성들이 최근 돌변했다. 외적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왕(王)을 모시게 해달라는 것이다(1사무 8,6 참조). ‘왕? 왕이 왜 필요하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나를 배신하다니…. 평생 헌신해온 보답이 고작 이런 것이란 말이냐. 왕은 안 돼, 절대 안 돼!’ 흔들리는 지파 동맹 체제를 바로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판관직을 요엘과 아비야,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선 그는 최근까지도 예언자 겸 제사장으로 유대민족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백성들은 두 아들을 미덥지 않아 했다. 더 이상 판관에 의한 지도체제가 아닌 왕정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무엘은 왕정제도 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사무엘은 지파 지도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왕정제도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밝히기 시작했다. 왕정제도로 인한 예상되는 폐해는 직업 군인의 등장, 가혹한 조세부과, 강제 노역 등 수없이 많았다(1사무 8,11-18 참조). 하지만 백성들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1사무 8,19). 사무엘은 더 이상 반대만 계속할 수 없었다. 주님께서도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임금을 세워 주어라”(1사무 8,22)고 하셨다. 사무엘은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엘은 미츠파의 총회(1사무 10,17-27 참조)를 주관, 뛰어난 전투 지휘 능력을 갖춘 사울을 왕으로 선출했다. 사울이 유대민족의 사상 첫 번째 왕으로 간택된 것이다. 사울은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1사무 9,2 참조).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1사무 10,1). 하지만 유대인들 중에는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도 있었다. “하필이면 사울이냐”는 것이었다. 이는 사울이 벤야민 지파였기 때문이다. 지파 동맹 중에서도 벤야민은 가장 작은 지파로 분류되었다. 게다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는 한때 동족을 대상으로 반란 전쟁을 일으킨 전력이 있었다(판관 19,1-2125 참조). 민족을 위기에 빠트린 벤야민의 기브아에서 탄생한 사울이 이제는 지파들을 권력으로 억압할 수 있는 왕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선 북쪽 지역 지파들의 우려가 특히 컸다. 일부 역사가들은 사무엘이 왕의 권한 약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벤야민 지파에서 초대 왕을 선출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지기반이 약한 허수아비 왕을 내세우고, 자신은 섭정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사무엘이 등 떠밀려 왕정 수립에 동의하고, 또한 왕을 세운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울을 견제하는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사울은 사무엘을 비롯한 백성들의 우려를 깨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모압, 암몬, 에돔, 초바 임금들 및 필리스티아인, 아말렉과 싸워 연전연승했다(1사무 14,47-48 참조). 대 암몬 전쟁 직후 길갈에서 공식적 즉위가 다시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1사무 11,14-15 참조). 하지만 사무엘과 사울의 삐걱거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사무엘 상권 15장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전리품을 챙긴 사울을 다그치는 늙은 예언자 사무엘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드디어 사무엘은 완전히 등을 돌렸고, 사울은 애걸하며 매달린다. 사울이 얼마나 매달리며 애원했는지, 돌아서는 사무엘의 옷자락까지 찢어질 정도였다(1사무 15,23-27 참조). 불쌍한 사울…. 사울은 점차 고립의 늪에 빠진다. 왕다운 의지와 판단력도 잃어간다. 강박관념에 의한 일종의 정신착란 증세 혹은 조울증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혔다”(1사무 16,14). 가중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압력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왕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유대 지도자들의 보이지 않는 도전도 힘들었을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판관이자 예언자로서 왕의 배후에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던 사무엘이 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한동안은 사무엘과 손잡을 필요가 있었다. “안되겠어. 왕을 바꿔야겠어.” 사무엘은 사울의 대안을 모색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이 다윗이다(1사무 16,6-13 참조). 하지만 초창기의 다윗은 오히려 사울의 총애를 얻는다. 특히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했다. 요나탄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고, 군복과 심지어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도 주었다(1사무 18,2-5 참조). 다윗 입장에서는 왕과 왕자로부터 대단한 은혜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훗날 사울과 원수가 된다. [가톨릭신문, 2009년 6월 21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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