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구약] 출애굽기 : 해방의 길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등 이스라엘 성조들의 뒤를 이어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백성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출애굽기 첫 부분(1,1-15,21)은 해방자 모세와 박해자 파라오 사이의 갈등을, 둘째 부분(15,22-31,18)은 하느님과 해방된 백성 사이의 계약을, 마지막 부분(32-40장)은 깨어진 계약의 회복을 기술하고 있다. 교회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이 출애굽기를 오랫 동안 사순절에 봉독해 왔다. 출애굽기는 다음의 여덟 가지 대목으로 나눌 수 있다. 1. 모세의 출생(1,1-2,25) :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이 물고기처럼(창세 1,20; 48,16) 급속히 불어나는 유다인들의 독특한 생명력에서 드러난다. 파라오는 경악하게 되고 억압 정책을 편다. 첫 억압은 강제 노동이었고,두번째는 약간 유치한 “산아 제한”, 그 다음은 공개적인 집단 살해였다. 인간적으로 유다인들의 경우는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백성의 교만함을 없애기 위해 무력한 사람을 택하신다. 어머니와 누이, 파라오의 딸 등 여자들이 구원의 도구가 되고 있다. 드디어 해방자가 탄생하지만, 그가 누울 방이 없다(루가 2,7 참조). 조그만 상자 속에 넣어 물에 띄어놓은 것을 파라오의 딸이 건져낸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또 하나의 모세인 셈이다. “모세”(‘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처럼 건져지기 때문이다. 모세는 “메시아를 위해서 당하는 치욕을 에집트의 제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기에”(히브 11,24-26) 왕궁의 영광을 버린다. 여기서 그는 성부의 영광을 마다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필립 2,7) 구세주를 주목케 한다. 2. 모세를 부르심(3,1-7,13) : 백성의 독특한 운명을 드러내듯, 모세는 “낯선 고장의 식객”으로 살고 있을 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우리 구원의 모든 역사가 이 “위대한 징표” 안에 포함된다. 불은 야훼의 상징이고(신명 4,24) 별 쓸모없는 떨기(가시덤불)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야훼의 천사”는 구약 성서에서 자주 하느님의 아들로 나타나고, 떨기를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타는 불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강생을 예시한다. 성조들이 방랑하는 동안 “헬 셔터가” - 약속을 지키는 분임을 드러내는 - 라는 이름을 알려주셨던 하느님은 이제 모세에게 새 이름 “야훼”를 계시해줌으로써 새로운 활동을 지시한다. “야훼”(나는 곧 나다)는 구원 약속을 결코 파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절대적 충실성을 드러낸다. 모세는 예레미야처럼(예레 1,6) 그의 사명을 두려워한다. 스스로 임명되는 사도는 참 사도가 아니다. 그가 참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분의 능력도 얻게 된다(마르 16,17-18). 모세는 사도직의 상징으로서 “하느님의 지팡이”를 얻는다. 이는 분명히 사탄을 치고 인류를 치유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기시키고 있다. 에집트로 여행하는 모세에게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다(4,24-26). 모세가 “모든 정의를 이루는 일” 없이는 사명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마태 3,15). 사도는 전에 세워진 것을 파괴하고 처음부터 다시 세우려는 반란자가 아니다. 따라서 모세는 전통에 따라 아들에게 할례를 시킨다. 3. 에집트에 내린 재앙들(7,14-11,10) : 우리는 자주 질문한다. “어찌하여 하느님은 우리의 적들에게 그토록 많은 힘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파라오에 대한 하느님의 메시지가 그 답이다. “까닭이 있어 너를 남겨두리라. 그것은 너에게 나의 힘을 나타내어 이 땅 위에서 나의 이름을 두루 떨치려는 것이다”(9,16). 이 때문에 하느님은 파라오가 고집을 부리게 하셨고, 결국 “이것은 직접 신이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고백할 때까지 재앙을 내리신다. 그리스도는 이 고백을 인용하시면서 명백한 결론을 내리신다.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가 11,20). 4. 해방(12,1-15,21) : 에집트의 맏이들이 죽는 순간은 바로 “하느님의 맏이”인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순간이다. 해방 달은 “한 해의 첫 달”로 불렸다. 새 시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해방된 그 밤은 “야훼를 생각하며 새워야 하는”(12,42) 경축의 시간이다. 그리스도는 이 전야를 최후 만찬으로 기념하셨다. 성부의 “맏이”인 자신을 참 빠스카 양으로 봉헌하시면서, 그것을 미사로 대체하셨다. 병사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다리만은 꺾지 않았는데, 이로써 과월절 양은 뼈를 꺾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12,46). 홍해를 앞에 두고 파라오의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세는 분연히 일어서서 “두려워 말라”고 외친다. “야훼께서 싸워주실 터이니 모두들 진정하여라”(14,13-14). 진정한다는 것은 바로 신앙인들의 태도이다. 이사야도 강조한다 : “마음을 돌려 진정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다”(30,15). 해방의 첫 열매가 하느님 찬양으로 드러난다.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51,1). 모세가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백성들이 따라 불렀다. 바로 예배 의식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요한은 수정 바다 위에 서 있는 “이긴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거문고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묵시 15,3) 구원의 궁극 목적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다. 5. 광야에서의 시련(15,22-18,27) :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맏아들로서 걸음마를 배우는 유년 시절을 보낸다. 광야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친다. 물을 달게 하는 나무,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에서 터져나오는 물 등을 두고 바오로는 말한다. “이 모든 일들이 기록에 남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1고린 10,11). 이는 모두 예언적인 것들이다. 만나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하늘의 빵”(요한 6,32-40)이고, 바위는 그리스도이며, 거기서 나오는 물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성령이다(요한 7,37-39). 쓴 물을 달게 한 나무와 모세가 바위를 치던 나무(지팡이)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상징을 볼 수 있다. 6. 계약(19,1-24,18) : 홍해를 건넌 지 50일 후에 율법이 주어지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거룩한 내 백성”(19,6)이 됨으로써 계약이 성립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50일 후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세워졌다. 계약 체결에는 네 단계의 엄숙한 행동이 따른다. 먼저 준비 기간으로서 3일이 요구되었다(19,3-15). 다음, 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멀찍이 서 있고, 모세와 아론만이 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는다. 십계명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사랑이 존재하고, 지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되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그 다음에는 희생 제사가 따른다. 제물의 피 절반이 제단에, 나머지 절반이 백성들에게 뿌려지는 것은 친교를 나타낸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모세는 자신의 희생을 치른다. 그 후 모세와 아론과 장로들은 하느님 면전에서 거룩한 음식을 들도록 초대받는다(24,9-11). 이 네 단계 - 준비, 율법의 선포, 희생 제물 봉헌, 식사 - 는 미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입당과 독서, 봉헌과 영성체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감당할 수 없어 공포에 떨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알렐루야로 영접한다. 7. 성막과 사제들(25-31장; 35-40장) :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거주하실, 전우주를 본딴 “만남의 장막”을 만들라고 하신다. 번제단은 성막 문간 앞에 두었는데, 이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했던”(히브 13,12) 그리스도의 봉헌을 주목케 한다. 제단과 성막 사이의 놋대야는 그리스도의 힘으로 정화되게 하는 세례성사를 예시한다. 지성소는 “하늘의 한가운데”를 상징한다. 세상 빛을 못 들어오게 하는 지성소 입구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마태 27,51) 찢어지면서 그리스도는 돌아가셨다. 인간의 힘 - 이라면 아래에서부터 찢어졌을 것이다 - 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내려온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옥좌”(히브 4,16)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접근을 허락하고 있다. 사제 임직식의 경우, 대야에서 씻고 기름부음 받는 것(29,4.7)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 직후 성령을 받으시는 것에 주목케 한다. 그리스도인의 세례 및 견진성사를 구약의 이 성직 수임식의 배경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이 성사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사제직의 수임식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례자들이 받는 흰옷은 마음의 순결과 죄악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할 뿐 아니라 그들 사제직의 존엄성을 드러낸다. 8. 깨어진 계약(32-34장) : 모세가 산에서 나타나지 않자 백성들은 안절부절해진다. 눈에 보이고 그리하여 “의지할 수 있는” 신으로 수송아지 신상을 만든다(32,1-6). 그래서 계약은 깨졌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고, 모세는 중재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신 그분께, 선택된 백성에게 끝없는 사랑을 약속하셨던 하느님이신 바로 그분께 호소한다. 모세는 성공하고 새 증거판을 받는다. 다시 계약을 맺으면서 모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 “나는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34,6-7). 이것은 백성들이 하느님의 질책을 받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서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토로한 모세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다. 이같은 사랑에서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고, 바오로는 동족을 위해서라면 저주를 받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은 하느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갔다고 기록한다. 세찬 바람과 성령의 불혀가 사도들을 덮을 때 그리스도의 빠스카도 끝나고 교회가 탄생되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성전”(1고린 3,16)이 된다. 바오로가 쓰는 그리스 말 “성전”은 “지성소”의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증거궤의 표지는 이루어졌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지성소인 것이다!” (Pathways in Scripture에서 강동성 편역) [경향잡지, 1988년 3월호, 다마수스 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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