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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레위기: 온 마음을 바쳐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3,71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레위기 : 온 마음을 바쳐라

 

 

구약성서 중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 레위기이다. 그리스도인들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사와 정결에 관한 법칙과 규정들이 어마어마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사 규정을 다루고 있는 7장까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마태 9,13). 마찬가지로 정결 규정이 들어 있는 11-15장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뒤로 나오지 않느냐?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6-18). 세 번째 부분은 성화법(17-26장)으로서 우선은 거룩한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율법이다. 이 내용 역시 우리들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오리게네스는 레위기에 관한 주석에서 한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율법은 신성한 것이므로 단순한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그 이상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땅과 하늘, 육체와 영혼, 몸과 정신 등 가시적인 요소와 비가시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성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즉 몸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문자와,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 같은 그 문자의 의미와, 사도의 말대로(히브 8,5 참조) 천상의 어떤 것들을 문자가 포함하고 있는 경우 그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사람을 몸 정신 영혼으로 구분한 오리게네스는 성서도 문자적 도덕적 신비적으로 구분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방법이 성서의 역사적 사실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오리게네스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에 대해 소홀히 할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성서의 문자에 그다지 정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을 대할 때 상상력을 마음대로 남용하지 않도록 자제시켰던 것이었다.

 

그러나 독단이나 상상력의 남용을 피한다는 이유에서 영적으로 올바른 성서 해석을 포기 할 수는 없다. 레위기의 경우에는 문자 이상의 뜻을 찾는다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오리게네스는 그 방법을 제시한다. 성서를 두 가지 영적 개념 즉 교훈과 신비로 구별한 것이다. 전자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 이해한 것이고, 후자는 “천상의 것들”(하늘 성전, 히브 8,5 참조)이 문자 안에 계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예루살렘은 글자 그대로는 다윗이 나라의 수도로 선택한 땅의 도시이며, 교훈적 의미로는 충실한 영혼을 상징하고, 신비적 의미로는 하늘의 예루살렘 즉 싸워 승리한 교회를 가리킨다. 레위기는 이처럼 교훈적이면서도 그만큼 신비적인 관점에서 영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레위기의 전반부(1-16장)는 풍부한 신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사와 정결 의식은 분명히 영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표현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후반부(17-27장)는 인간 삶의 전영역을 성화시키는 법으로 가르침과 규정을 덧붙여 십계명을 반복함으로써 교훈적 의미를 얻게 해준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은 상징과 중개라는 명확한 두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사에 쓰이는 동물은 바로 봉헌자 자신을 대신하며, 사제의 중개 없이는 제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중개와 상징은 사제이자 동시에 제물이셨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다. 레위 예식을 이처럼 신비적으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성서의 문자 자체에 암시된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마음까지도 완전하게 바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예언자들이 이전에 이미 깨닫게 된 진리였다. 레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외면의 깨끗함만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밑바탕에는 먼저 하느님 앞에 합당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지중 또는 부주의하여 범했던 과실도 속죄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방대한 제사 규정이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이나 곡식의 예물을 당신께서 아니 원하신다”(시편 40,6)는 경고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바로 제사 봉헌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영적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가 유명한 성전 설교를 통해 외친 내용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너희 조상들에게 내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라고 한 번이라도 시킨 일이 있더냐?… 잘 되려거든 내가 명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뿐이다”(7,22-23). 즉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8) 그러므로 제사는 형식과 더불어 하느님께 대하여 완전한 마음의 봉헌까지도 요구되었던 것이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의 참의미는 이처럼 단순히 제사를 드리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교도의 미신 행위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 쏟아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율법의 근본 정신이기도 하다.

 

레위기는 제사에 어울리는 세 종류의 동물을 거명한다. 첫째 일하는 동물인 소가 등장하고, 이는 하느님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봉헌자를 상정한다. 그 다음은 양과 염소로서, 어린 양은 순종하며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봉헌자를 상징하며, 힘세고 거칠은 수양은 수소와 마찬가지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제들과 통치자들을 위한 제사에 사용되었다(9,2-3). 셋째는 날카로운 발톱이 없는 날짐승들로서 보호 수단도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정한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의 봉헌 방법에서는 고통의 개념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제는 목을 부러뜨려서… 몸통을 찢어놓으면… 야훼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이다”(1,15-17). 이 제사에서만 사제가 직접 제물을 죽인다. 하느님께서 직접 불쌍한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물을 죽이는 이유는 피를 얻기 위해서이다. “생물의 목숨은 그 피에 있는 것이다”(17,11). 사제가 생명인 피를 제단에 바치는데, 그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번제에서는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제물 전부와 함께 제단 주위에 뿌렸다. 속죄제에서는 제단의 뿔들 위에 제물의 피를 부었다. 제단의 뿔들은 하느님의 힘과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사는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하고, 거기에 피를 바르는 것은 그분께 대한 변치 않는 신뢰를 의미한다. 속죄제와 면죄제는 제물 중 가장 좋은 부분인 기름기만 바치고 나머지는 사제가 가졌다.

 

레위기의 모든 제사들은 속죄의 날(16장) 예식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오직 일년에 하루 이 날만은 대사제가 지성소 업구의 휘장을 통과하여 그 안에 들어가는 특전을 받았던 것이다. 이 날 염소 두 마리를 특이하게 바치는데, 하나는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봉헌하고,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 씌워 광야로 끌고 나간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이 마지막으로 뜻하는 바는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통하여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레위기의 근본 정신은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상징과 중개로 구분되는 제사가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죄인이 감히 자신의 타락한 삶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오롯이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깨끗이 되고 자신의 삶을 거듭 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제물보다는 그 사람을 먼저 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위기에 담긴 근본 정신은 오늘에도 계속된다. (Pathwavs in Scripture에서 강동성 편역)

 

[경향잡지, 1988년 4월호, 다마수스 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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