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신약] 종려나무와 가시관 승리의 종려나무 로마에서 성주간 예절에 참석하는 북부 유럽의 순례자들은 성지주일에 영원한 도시의 신자들이 손에 올리브나무 가지를 들고 성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로마 어디를 가든지, 심지어 옛 교회의 현관에서조차 종려나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성지주일에는 종려나무가 제단에 모습을 드러내리라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관습을 알고 난 뒤 눈에 띄는 복음서를 들어 펼쳐보면 거기에도 성지주일 이야기에서 요한 복음서 외에는 종려나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루가는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 다만 길 위에 벗어 펴놓았던 겉옷을 언급한다(루가 19,36). 마르코는 사람들이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 길에 깔았다고 묘사한다(마르 11,8). 마태오는 이 가지들을 나무에서 꺾어 와 길에 깐 것임을 보게 해준다(마태 21,8). 어쨌든 요한만이 명절을 지내러 온 사람들이 기쁨과 열정 속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갔다.”(12,13)고 언급한다. 따라서 오로지 네 번째 복음서에서만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하는 종려가지 행렬을 알 수 있다. 복음 이야기에 드물게 언급되는 종려나무는 성서 전체에서도 몇 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바로 성서의 고장에서도 종려나무는 희귀한 나무다. 여러 종류의 종려나무들 가운데 팔레스티나에서는 한 종류(Phoenix dactylifera)만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 나무는 성지(聖地)의 산악지방에서는 드물게 발견되고 거의 비옥한 골짜기에서만 발견된다. 예외로는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에브라임의 산악에서 발견된다고 언급된다. 이 예외적인 종려나무 아래서 여자 예언자 드보라는 자신의 재판업무를 수행했다(판관 4,5). 나아가 성서는 예리고 근처의 요르단 골짜기에 종려나무가 풍성했다고 기록한다. 이 때문에 그 도시는 ‘종려나무 도시’라는 이름을 얻었다(판관 1,16; 3,13). 또한 오늘날의 성지에서 종려나무는 주로 저지대, 해안 가까이 있는 평야, 요르단 골짜기 그리고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발견된다. 그 나무는 예루살렘 주변, 특히 힌놈 골짜기와 키드론 골짜기에서 쉽게 자라기 때문에 도시의 거주자들이 그 가지를 가지는 일은 쉬웠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장막축일 때 종려나무 가지는 기쁨의 상징이었다. 젊은이들과 노인들은 그 축제 때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시편 118편의 호산나를 노래하였다. 종려나무는 고상함과 우아함 그리고 왕성한 성장 때문에 이미지와 상징을 찾는 많은 성서 저자들한테 영감을 불어넣었다. 아가서에서는 신부를 종려나무처럼 아름답다고 묘사한다(7,7-8). 또한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진다(시편 91,13). 황금관과 종려나무 가지는 왕에게 영예를 돌리는 상징이다(1마카 13,37). 그리고 기원전 2세기에 마카베오 왕이 예루살렘을 해방시킨 후 도시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악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환호하였다(1마카 13,51). 같은 모양으로 요한은 성지주일에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묘사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 찬미받으소서!’”(요한 12,13). 그것은 승리자 예수께서 받으시게 될 존경에 대한 빠른 스케치와 같다.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옥좌와 어린양 앞에 서있었습니다”(묵시 7,9). 예루살렘에서 왕이신 그리스도께 드린 이 존경은 나중에 대사제들과 학자들에게는 그분을 거슬러 사형선고를 요구하는 동기가 된다. 왕을 자칭했다는 데 대한 이러한 고발에 대해서 빌라도는 분명히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그를 따르는 로마 군인들은 고발당한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 가시로 된 관을 왔다. 그림과 설교에서 이 가시관은 거의 육체적 고문의 도구로만 간주된다. 뾰족한 가시들이 예수의 머리를 뚫고 들어가 피를 흘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대홀(笏)과 군인의 망토와 함께 관은 차라리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조롱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부응하여 최근에는 관이,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날카로운 종려나무 잎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가정이 제안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마 황제들의 상은 종려나무 잎으로 된 관을 쓴 모습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가시가 없는 그러한 종려나무 관을 쓰셨다면, 그분의 고뇌는 다만 내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조롱은 그분에게 극도로 고통스러웠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며칠 전에 같은 종려나무가 그분한테 왕의 존경을 드리기 위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이(마태 27,29; 마르 5,17) 가시관에 대해 말하고 있고, 관 이외에, 아니 그보다도 가시에 강조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다시 말해 군인들은 왕권 인정에 대해 그리스도를 조롱하려 하였고, 동시에 그분을 고문하려 하였다. 그리고 종려나무가 사용되었다면, 이것은 길고도 예리한 가시들을 가지고 있었다. 성수의(聖囚衣)가 진정한 유해라면(Carreno Etxeandia J., La Sindone, ultimo reporter, Edizioni Paoline, 4'ed., 1978 참조),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이마와 머리가 아주 날카로운 가시들로 찔려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5년 6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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