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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예수의 권능을 드러낸 오순절 사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8 조회수2,878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예수의 권능을 드러낸 오순절 사건

 

 

베드로의 오순절 담화

 

언어의 기적을 통해 사도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군중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사도들의 우두머리로서 앞으로 나아가 열렬한 담화로 주위에 있던 이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이 설명은 베드로의 오순절 담화로 알려져 있다. 그 담화는 교회와 입교하지 않은 사람들의 첫 만남이요, 교회가 밖으로 한 첫 번째 표명이다. 따라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담화의 서두에서 베드로는 그의 청중에게 아주 일반적인 방법으로 - “유다인과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사도 2,14), “이스라엘 사람들이여”(2,22) - 말한다. 접촉을 해나가면서 한층 친밀한 용어 - “형제들이여”(2,29) - 를 사용한다.

 

그는 또한 셈족의 표현으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2,14).

 

즉 이 담화에서 명백한 것은 누구나 여전히 놀라워하는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흠뻑 취했군….”이라는 말은 아직도 입에서 입으로 떠들썩한 빈정거림 속에 전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베드로의 확언은 즉각적이고 단호하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오전 아홉시이니까요”(사도 2,15).

 

다른 서론없이 청중은 바로 문제의 핵심에 이른다. 또한 베드로가 다윗의 무덤을 담화에 끌어들일 때도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생생하게 있었던 일을 암시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조상 다윗에 관해서 명백히 말씀드려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이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2,29).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변호하여 말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 그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 담화를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젊은 교회, 말하자면 참으로 갓 태어난 교회이다.

 

더욱이 눈에 띄는 것은 베드로가 그의 논거에 구약성서의 인용문을 풍부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즉 청중에게 성서 안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고 이 때문에 성서적 논거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술에 취했다는 고발을 구약성서의 인용으로 논박한다. 그것으로 그는 오순절 축제의 감동적인 현상들이 여러 세기 전에 요엘이 선포한 예언이 완성된 것이라고 선언한다.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현시를 보며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실상 나의 남종들과 나의 여종들에게도 마지막 날들에 나의 영을 쏟으리니 그들은 예언을 하리라”(사도 2,17-18). 인용은 상당히 길다. 아마도 더 잘 느끼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사도 2,21).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실 수 없고 부활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시편의 옛 본문에서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거기서 시편 저자는 무덤에서 시체를 볼 수 없고 하느님께서 그를 죽은 이들의 나라에 버려두지 않으시리라는 신뢰를 설명한다(사도 2,27). 논거 중에 베드로는 시편의 이 본문이 다윗의 입에서 나왔고, 다윗은 죽어 이미 10세기 전에 예루살렘에 묻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베드로의 말에 따르면, 다윗의 말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의 예수에 관한 예언으로 입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추론이다. 이 결론이 유효하기 위해서 목격한 열두 명의 증인을 제시한다. 그들은 모두 부활 뒤에 예수를 보았다.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되살리셨으며 우리는 모두 그 증인들입니다”(사도 2,32).

 

긴 추론의 최종점은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결국 하느님의 영광으로 들어올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도 시편(110,1)의 인용으로 입증된다. 따라서 주위에 있던 이들이 아직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오순절 사건은 영광을 받으신 예수의 권능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주위에 있던 이들은 이러한 권능의 표명에 대한 목격자들을 감지했고, 따라서 그러한 논거에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듣고는 마음이 찔려 다른 사도들을 향하여 ‘형제들이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고 말했다”(사도 2,37). 그 결과 그들의 말을 잘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날에 믿는 사람들이 삼천 명 가량 늘어났다”(2,41).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이고 확신을 주지 못하는 추론의 방법은 아직도 구약의 정서 속에 있는 청중들에게 크나큰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그들은 다윗의 무덤에 관해서나 바로 전에 표명된 성령의 권능에 관해서나 사실 자체에 대한 목격 증인들 때문에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업적에 사로잡혔고 그로인해 기적적인 오순절 사건을 확장시키는 사람들이 되었다. 따라서 어쩌면 우리에게는 별로 인상을 주지 못하는 베드로의 첫 번째 담화는 예루살렘의 오순절 순례자들에게 참으로 생생하고 현실적인 것이다.

 

우리에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 담화 뒤에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대량으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다양한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상당히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담화 자체에 대한 진정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적인 말씀의 효력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게 되고, 이른바 “교회가 태어난 날”에 그 첫 번째 담화에 대한 경탄과 존경이 우리 안에 커간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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