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이스라엘’의 여러 뜻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갈라 6,16) 현재 거의 2백 개에 달하는 국가 이름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것은, 아마도 1948년 팔레스티나 땅에 세워진 이스라엘일 것이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이름은 우선 20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43년에 마카베오 형제들이 중심이 되어, 힘든 투쟁 끝에 조그만 독립국가를 일으키는데(1마카 13,41-42 참조), 옛 전통을 이어받아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멸망하고 만다. 성서를 따라가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 왕조에서 다시 1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창세기 32장 29절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구약성서 전체에서는 2천 5백 번 남짓 쓰인다. 신약성서에도, 그 마지막 책인 묵시록 22장 12절까지 거의 70번 나온다. 이러한 사용 분포와 횟수를 생각하면 이스라엘이 평범한 이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주님의 이름인 예수가 신약성서에서 l천 번 이하로 쓰이면서도 우리에게는 가장 존귀한 이름이다. 그 밖의 이름들 가운데서는 이 이스라엘이 가장 자주 쓰이면서, 또 가장 중요한 이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본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사악의 아들인 야곱의 별명이다. 야곱은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아직도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형 에사오를 만나기 전에, 긴장된 마음으로 혼자 밤을 지낸다(창세 32,23 이하). 그런데 그는 어떤 신비한 존재와 함께 밤새 씨름을 한 끝에 그분, 곧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는다. 그리고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는 말씀과 함께 새 이름을 받는다. (창세기 35장 10절에는 또 다른 전통에 속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가 32장 29절의 이 풀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어원에 따라 학문적으로 설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구약성서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통속적인 이름 풀이다. 이 이름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리로서는, ‘엘’은 (이보다 훨씬 자주 쓰이는 ‘엘로힘’과 함께) ‘하느님’을 뜻하고, ‘이스라’는 동사 또는 형용사인데, 그 뜻은 여러 가지가 제시된다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후 이스라엘은 드물기는 하지만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 쓰인다(창세 37,3; 43,6; 48,13 등). 더 나아가서는 야곱의 가정 또는 가족들까지 가리키기도 한다(창세 34,7; 47,27). 야곱-이스라엘은 열두 아들을 낳는데, 이들의 이름에 따라 열두 지파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을 전체적으로 부를 때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쓰인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흔한 표현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다. 히브리 말에서는 ‘아들’이 ‘자손, 후손’들도 뜻하기 때문에, 앞의 말을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또는, 이스라엘인들)’이라고 옮긴다. 그래서 다윗이 가나안 땅에 이룬 통일 왕국 시대까지, 야곱에게서 나온 민족을 가리킬 때, 이 조상의 이름인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라는 명칭이 쓰이게 된다. 모세의 인도에 따라 에집트를 탈출하고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다음,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자리잡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백성의 이름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민족만이 아니라, 선택된 민족이 사는 땅을 특별히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1사무 13,19; 마태 2,20 등). 그리고 이스라엘은 또 다윗이 세운 왕국의 이름도 된다. 그런데 같은 이스라엘 땅을, 특히 지리와 지질학 그리고 고고학과 정치와 관련해서는 팔레스티나 땅이라 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인들이 들어오기 전의 원주민들과 관련해서는 가나안 땅이라 하기도 한다. 이 왕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뒤에는, 남부왕국은 유다 지파가 주축을 이루기 때문에, 나라와 국민과 영토를 유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북부왕국은 에브라임 지파가 중심이 되어 이 이름이 쓰이기도 하지만(호세 5,5 등), 나라와 국민과 영토를 가리키는 데는 주로 이스라엘이 쓰인다. 그러다가 기원전 721년 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이 명칭의 사용도 중단된다. 반면에 유다는 587년에 국가가 망한 뒤에도, 계속 그 주민과 땅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다. 요한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유다인’이 바로 이들의 후손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선택, 그리고 시나이산에서 맺은 계약과 깊이 관련되기 때문에, 그것은 선택된 백성이 살아있는 한 계속 쓰인다. 그래서 유다인들에게 말할 경우에도, 이런 배경을 강조할 때는 이스라엘이 쓰인다(이사 4,2 등). 그리고 선택된 민족의 왕국이 완전히 멸망한 뒤에는, 더 이상 혈통과 국가가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신앙으로 하나된 공동체를 뜻한다(이사 49,3. 5; 에즈 1,3; 2,2 등). 결국 이스라엘은 민족이나 나라와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 이름은 신약성서에 와서, 유다인 곧 ‘옛’ 이스라엘과 나뉘는 고통스런 과정을 거친 뒤, 그리스도인들 곧 하느님의 새 백성까지도 가리키게 된다(갈라 6,16 등).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 이스라엘’이다. 그렇다고 ‘옛 이스라엘’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 신앙의 선배이며 선조이다. 그들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고, 그들의 신앙 역사는 우리의 신앙 역사이다. 우리는 거의 4000년에 이르는 이스라엘이라는 길고 큰 흐름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 임승필 요셉 신부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로서 성서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새해부터 임승필 신부님이 독자 여러분을 성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우리와는 문화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오해나 이해하기 힘든 점 또는 궁금한 사항들을 짧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겁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성서 안의 궁금한 점을 엽서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인용하는 성서구절은 ‘구약성서 새번역’입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 [경향잡지, 1997년 1월호, 임승필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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