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1열왕 3,5-9) 다윗이 이스라엘 왕정을 확립한 임금이라면,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안정된 왕정 아래서 왕국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임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히브리말로 ‘평화로운, 안정된’이라는 뜻을 지닌 그의 이름에 걸맞다. 그는 선왕 다윗과는 달리 무사가 아니라 지략가였다. 정략적인 혼인과 무역,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왕국을 안정시키고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외국 여자들과의 무분별한 혼인은 우상숭배를 궁정 안으로 끌어들였고, 지나친 세금 부과와 강제노역은 백성의 원성을 샀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복을 약속받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통치는 그분의 분노를 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구약성서 새번역) 5 기브온에서 주님께서는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인 제 아버지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 앞에서 진실과 정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큰 자애를 내리시어 오늘 이렇게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런데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하오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다스리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의 눈에 들었다. 솔로몬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불의한 방법으로 맞아들여 얻은 아들이다. 솔로몬의 왕위 계승은 결코 평탄치가 않았다. 그에게 왕위가 돌아가기 전에 두 형이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다. 먼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고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려다 요압의 창에 찔려 죽었다. 압살롬의 반역은 솔로몬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아도니야가 다윗이 군대의 수장 자리에서 면직시킨 요압과 사제 에비아달과 작당하여 말년에 허약해진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였을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아들을 다윗의 후계자로 앉히려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사제 사독과 다윗에게 신임을 받던 예언자 나단, 그리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바쎄바 주변에 모여 다윗에게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도록 하였다. 다윗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솔로몬은 자신의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다. 형 아도니야를 죽이고 에비아달의 사제직을 박탈한 다음 고향 아나돗으로 쫓아보냈으며 부나야를 시켜 요압을 살해하였다. 솔로몬은 자가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지자(1열왕 2,46). 주변 정세로 눈을 돌렸다. 그는 에집트 임금 파라오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당시 중동의 패권 다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에집트 임금 파라오와 혼인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커다란 특전이었다. 솔로몬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라오의 딸에게 별궁을 지어주고 다른 아내들에 비해 특별대우를 하였다. 그때에는 아직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으므로 임금과 백성은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바쳤다. 산당들 가운데 기브온의 산당이 매우 컸다. 솔로몬은 이곳에 가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올바로 다스리기 위하여 그분께 도움을 청하였다. 하느님께서는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솔로몬은 먼저 선왕 다윗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큰 자비에 감사를 드리며 다윗의 공덕을 기렸다. 그는 다윗이 하느님께 큰 자비를 얻게 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였다. 그것은 다윗이 하느님 앞에서 진실과 정의와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1열왕 3,6).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보다 앞서 나가지도 않고 하느님보다 뒤떨어지지도 않고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순종하면서 걷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진실과 정의를 실천하며 언제나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세오경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걸은 사람으로는 365세(1년의 주기로 완벽한 수를 누렸다는 뜻)를 살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 하느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을 꼽을 수 있다. 이어 솔로몬은 자신이 다윗의 공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아직 어린아이라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 위대한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하여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백성의 말을 듣고 헤아릴 줄 아는 마음과,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였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딱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의 말을 귀담아듣는 마음과 사리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보다 더 귀중한 덕이 무엇이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장수나 부나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과 지혜를 청한 것에 감복하셨다. 장수와 부와 원수들의 목숨은 솔로몬 개인을 위한 것이지만, 분별력과 지혜는 백성 전체를 위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솔로몬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그가 청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주셨다. 아울러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었듯이 내 길을 걸으며 내 규정과 내 계명을 지키면 네 수명도 늘려주리라.” 하고 약속하셨다. 과연 솔로몬은 그가 태어났을 때 주님의 분부로 나단 예언자가 붙여준 이름, 여디디야처럼 ‘주님의 사랑받는 이’가 되었다. 그런데 하느님께 사랑을 받던 솔로몬이 어쩌다가 주님에게서 돌아서서 그분의 진노를 사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하느님께 받은 지혜와 분별력을 이용하여 백성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데에 힘을 쏟지 않고, 그분께서 덤으로 얹어주신 부와 권력과 명예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가 저지른 실정을 나열하자면, 우선 그의 궁정 생활이 지나치게 호화로웠다는 것이다. 궁정 식구들의 하루치 식사를 준비하려면 고운 밀가루 5천 리터, 밀 1만 리터, 집에서 기른 살진 소 10마리, 목장에서 기른 살진 소 20마리, 양 100마리, 그밖에도 사슴, 영양, 닭들이 필요하였다. 무역이나 상업만으로 이런 과대한 지출을 다 충당할 수 없었으므로 솔로몬은 백성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야 했다. 그는 왕국을 12구역으로 나누어 세금을 징수하고, 각 구역마다 지방장관을 두어 돌아가며 일년에 한 달씩 궁정의 음식을 조달하게 하였다. 이 밖에도 지방장관은 솔로몬의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재정과 물품도 조달해야 했다. 심지어 병거마 1,400마리와 기마 12,000마리를 먹이기 위한 보리와 밀짚까지 공급해야 했다. 둘째. 솔로몬은 엄청난 규모의 건축 계획을 무려하게 추진하였다. 주님을 위한 성전과 자기 왕궁과 부인들의 별궁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띠로 임금 히람과 거래하였다. 그는 히람에게서 좋은 레바논 목재와 건축 기술을 얻어내는 대가로 갈릴래아의 성읍 스무 개를 넘겨주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또 산에 가서 돌을 떠내고 그것을 운반하는 강제 노역에 수많은 양민들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솔로몬의 편파적인 세금 부과와 강제 노역이었다. 솔로몬은 자기 부족인 유다 지파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강제 노역에서도 이 지파를 제외시켰는데, 나머지 북쪽 지파들이 이 사실을 곧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들의 불만과 분노는 결국 솔로몬이 죽은 뒤에 왕국의 분열로 발전하게 된다. 셋째, 솔로몬은 외국 여자들을 이스라엘 궁정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우상숭배를 허용하였다. 솔로몬에게는 부인이 700명, 소실이 300명이나 있었다(1열왕 11,3). 외국 여자들과의 정략적인 결혼은 정치적 안정과 무역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지만,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외국 여자들은 이방 신들을 솔로몬의 궁정에 들여왔고 그가 당연히 이 신들을 섬기는 장소와 여건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지자 솔로몬은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을 저버리고 외국 부인들과 함께 우상숭배에 빠졌다. 암몬 신 몰록을 숭배할 산당을 짓고 예루살렘 동쪽 ‘멸망의 산’에 모압 신 그모스를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또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곰을 섬겼다. 솔로몬이 지은 산당들은 나중에 요시야 임금이 모두 파괴하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졌던 솔로몬의 왕국은 그가 죽은 뒤 오래지 않아 남북으로 두 동강나고 지파간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가 하느님께 청하여 얻은 지혜와 분별력은 결코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아무리 현명한 임금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살지 않으면 그분의 분노를 사고 백성을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경향잡지, 1998년 9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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