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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24: 왕자들의 암투, 솔로몬의 등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4 조회수4,287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24) 왕자들의 암투, 솔로몬의 등장


다윗 왕국판 ‘왕자의 난’

 

 

솔로몬은 ‘무역은 아내가 성사시킨다’는 기치를 내걸고 주변 제후국들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에 나섰다. 사진의 언덕 위 숲이 솔로몬왕의 ‘스캔들의 궁전’ 이라고 불리는 옛터. 수많은 외국 여인들이 솔로몬의 사랑을 받아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을 보면, 조선왕조 초기에 왕자들이 벌인 왕위 다툼과 판박이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왕 뒤에는 항상 권력욕에 사로잡힌 말썽꾸러기 왕자들이 있다. 솔로몬은 그 ‘왕자의 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왕위에까지 오른다.

 

다윗 왕국판 ‘왕자의 난’의 씨앗은 맏아들 암논 왕자에 의해 뿌려진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암논 왕자가 이복 누이동생 타마르 공주를 성폭행하는 패륜을 저지르자(2사무 13,1-14), 타마르의 친오빠 압살롬 왕자가 형 암논을 죽인다(2사무 13,23-30). 이후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려 했지만 성공 직전에 실패하고 살해된다(2사무 15,1-18,17). 이후 넷째 아도니야 왕자도 왕권에 도전했지만 솔로몬의 어머니 밧 세바와 그 측근들의 발 빠른 움직임 덕분에 실패했고, 결국 솔로몬이 후계자로 지목된다(1열왕 1,5-53 참조).

 

이후 솔로몬은 무자비한 정적 제거 작업에 나섰다. 형 아도니야를 죽였고(1열왕 2,13-25), 사제 에브야타르를 귀양 보내는 한편 개국공신인 요압 장군도 살해했다(1열왕 2,26-35). 지금으로 말하면 왕이 되자마자 차기 대권주자와 군 장성, 고위 성직자를 모두 숙청한 것이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

 

솔로몬은 정적 제거 작업을 마치자마자 주변 정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솔로몬 당시 고대사회는 철기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작물 생산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광산 개발도 한층 탄력을 받았다. 세계는 부유해지고 있었고, 가나안 땅은 당시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집트에서 아시리아를 가려고 해도, 또 아시리아에서 이집트를 가려고 해도 모두 솔로몬의 땅을 통과해야 했다. 막대한 통행세가 솔로몬의 수중으로 흘러들어왔다.

 

솔로몬은 또 ‘무역은 아내가 성사시킨다’는 기치를 내걸고 주변 제후국들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에 본격 나선다. 성경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솔로몬 임금은 파라오의 딸뿐 아니라 모압 여자와 암몬 여자, 에돔 여자와 시돈 여자, 그리고 히타이트 여자 등 많은 외국 여자를 사랑하였다.”(1열왕 11,1)

 

이렇게 해서 맞아들인 왕비와 후궁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한다.

 

“솔로몬에게는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나 있었다.”(1열왕 11,3)

 

정략결혼의 결과는 일단 처음에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뒤에 가서는 이 여자들 때문에 솔로몬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솔로몬은 일단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항구에는 연일 조공과 무역 상품을 실어 나르는 배로 가득했다(1열왕 9,26-28). 이를 위해 솔로몬은 대규모 상선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돈이 쌓이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법이다. 솔로몬은 대대적인 토목 및 건축 사업도 함께 벌인다(1열왕 9,15-25).

 

권력 장악 초기에 보인 잔혹성과 달리, 정권 안정기의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었다. 솔로몬은 전쟁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굵직한 전쟁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치러냈기 때문에 솔로몬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면 됐다. 솔로몬은 전쟁터를 누비는 그런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었다. 솔로몬은 오히려 냉철한 지성을 지닌 호리호리한 학자형에 가깝다. 소위 꽃미남의 두뇌형 인간이다.

 

어느 날 솔로몬의 꿈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신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솔로몬이 대답했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1열왕 3,5-15 참조)

 

솔로몬은 지혜로웠다. 지혜를 청했기에 지혜를 포함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쇠도끼가 제 도끼입니다”라고 말해서 금도끼 은도끼를 모두 얻은 나무꾼처럼, 솔로몬은 ‘겸손히’ 지혜를 청함으로써 모든 것을 얻었다.

 

솔로몬의 꿈은 현실이 된다. 다윗의 힘과 감성에 의해 싹트게 된 유대민족 통일 왕국은 솔로몬의 지혜와 이성에 의해 만개하게 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강력한 중앙정부와 이웃나라가 함부로 넘보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은 오직 솔로몬 시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영토도 가장 넓었다. 유대인들이 마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영유할 수 있었던 시기도 솔로몬 시대가 유일하다.

 

바야흐로 유대인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참 얄궂다. 역사는 시기와 질투 가득한, 살아있는 생명체다. 한창 상승기류를 타는 민족이 있으면 어김없이 뒤에서 붙잡아 끌어내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대민족의 황금기도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솔로몬 몰락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톨릭신문, 2009년 8월 2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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